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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린이를 살리는 길

Joyfule 2005. 5. 6. 12:36

다시 어린이를 살리는 길
어린이날은 돌아왔는데, 어린이는 점점 귀해진다. 
할아버지 할머니 되기가 그렇게 어렵단다. 젊은이들의 결혼이 점점 늦어지고, 
아니 결혼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축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설령 결혼한다고 해도 아이 가지는 일을 늦추거나 
애초에 단념하는 이들 또한 증가추세인 모양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주변만 살펴도 과년한 미혼과 아이없는 젊은 부부들이 수두룩하다.
우리 또래 또는 조금 웃 선배들이 지하철에서 어쩌다 ‘할아버지, 이리 앉으세요’ 하는 
양보에 화들짝 놀랜 경험을 웃으며 얘기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정말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에 반해 노인은 흔하다. 
일찍이 물러나 노인 아닌 노인 신세로 노는 젊은 노인들도 문제지만,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장수노인들은 더욱 딱하다. 
한국근현대사의 간난을 온몸으로 통과하여 풍요사회를 맞이했는데 정작 자신들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떨어진 우리 부모세대는 그 아이러니, 최대의 희생자가 아닐 수 없다.
<어린이는 귀하고 노인은 흔하고>
이 세태 속에서 요즘 소아과가 몰락하고 정형외과는 흥청거린다. 
잘 나가던 소아과가 어린이가 귀해지면서, 정형외과는 노인들의 사랑방으로 변신하면서, 
두 의원의 역전이 이루어졌다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이 문제들로 앓는다. 속으로만 끙끙거릴 뿐 대책이 없다.
해결의 실마리는 젊은이들, 특히 똑똑한 젊은 여성들이 건강하게 짝을 짓고 
편안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출산과 양육의 사회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이 문제에 관해 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마련중이라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전업주부 노릇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여성들이 자기 능력을 개발하여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일은 좋은 것이거니와, 
이는 이미 막을 수 없는 대세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들이 그 때문에 주눅드는 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아니된다.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직장여성은 또 직장여성대로 
그녀들의 선택을 존중해서 돕는 것이 중요하다.
전업주부문제는 따로 더 얘기할 게 많지만 우선 직장여성의 경우를 살펴볼 때 
지금 상황에선 그들에게 결혼을 종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양성평등 가정이라고 해도 결혼은 여성에게 다른 부담을 얹게 된다. 
결혼하면 허덕거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아이까지 출산하면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예전처럼 친정에 가서 편안하게 몸 풀고 출산 이후를 
안정적으로 조리하는 일은 애초에 바랄 수 없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손주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을 
이제는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산모의 우울증과 출산기피현상>
얼마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출산원의 실태도 충격적이지만, 산모들이 아이 낳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최근 우리가 실감하고 있는 터인데, 
우리 미래의 꽃인 어린이가 축복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 돼버렸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 최대의 엽기다.
돌이켜 보면 어린이와 어린이날의 탄생은 거룩한 것이었다.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은 1921년 어린이란 말을 창안하고 1923년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이로써 조선의 가난하고 불쌍한 어린이가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유단위의 하나로 설정되었으니 어린이는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꽃으로 들어올려진 것이다.
소파가 이처럼 선구적으로 어린이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그가 손병희(孫秉熙)의 사위, 즉 동학(東學)의 전통과 연계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동학은 여성과 아동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동학의 2세교주 최시형(崔時亨)이 숨어다닐 때의 일화다. 
신도집의 남편이 처를 때리자 해월(海月)은 말한다. 
“왜 한울님을 때리십니까?” 
신도집의 처가 아이를 때리자, 해월은 또 말한다.
 “왜 한울님을 때리십니까?”
한울님이 사람 바깥,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사람 안에 있다고 보는 동학사상에서 여성과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치는 것과 같다는 이 위대한 말씀에서 
한국의 여성운동과 어린이운동은 태어난 것이다. 
이 사상을 식민지의 엄혹한 조건에서 희망의 싹으로 다듬고 발전시킨 분이 바로 소파선생이다.
<출산과 어린이가 축복이 되게 하는 대책을>
어린이가 귀해진, 그래서 어린이를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는 투자처로만 생각하여 
오히려 어린이를 망치는, 그래서 젊은 여성들의 출산기피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횡행하는 세태를 염려하며 
조선의 어린이를 구원한 해월과 소파를 추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도 함께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획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지혜를 모을 때가 아닐 수 없다. 
겉만 번지르한 하루반짝 행사보다 현상을 점검하고 개량하는 
단계적인 개선책을 내놓는 것이 진정 어린이날을 기리는 어른의 책무일 것이다.
글쓴이 / 최원식
·인하대 문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서울대 국문학박사
민족문학사학회 공동대표
저서 : 한국의 민족문학론
한국 근대소설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