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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생의 낙이 무엇인가?

Joyfule 2018. 7. 1. 08:18

 
     당신은 인생의 낙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은, “인생 뭐 있나?”하는 자조 섞인 말투이다. 그 말속에는 사는 게 힘들며 즐거움이 없다는 뜻이 녹아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일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술이나 담배는 기본이며, 인터넷 게임으로 밤을 새우는 이들이 허다하고, 여행이나 낚시, 바둑이나 등산 등의 취미생활에 몰두하며, 도박이나 음란의 쾌락으로 인생을 망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필자가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의 인생의 낙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크리스천이라고 인생이 재미없기는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세상에 적당히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간다. 교회예배가 끝나고 비전센터라고 불리는 교회커피숍에 둘러앉아 하는 말들을 들어보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는 대화는 거의 없다.

대부분 TV드라마나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혹은 교회주변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화가 전부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크리스천이라도 인생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크리스천은 세상 사람보다 더 인생이 재미없다. 세상 사람이야 대놓고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일에 몰두하며 살 수 있지만, 크리스천들은 교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거나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인생이 즐겁지 않는 크리스천에 대해 얘기를 늘어놓고 싶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쾌락이라는 한자어는 기쁘고 즐겁다는 의미이다. 육체의 쾌락도 궁극적으로는 마음으로부터 느껴지는 즐거움이 아닌가?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즐기려는 육체의 쾌락도 영혼과 마음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구절을 읽어보자. 하나님도 이런 쾌락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이 아닌가? 그렇다. 주 안에 있으면 기쁨이 샘솟고,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고 선포하고 계시다.

말하자면 크리스천들은 세상 사람이 알 수 없는 놀라운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셈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영혼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계신가? 우리네 교인들은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안에 들어오셔서 거주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주안에 있는 셈이고, 주의 영이 계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렇다면 교인들은 죄다 기쁘고 평안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그러한 삶을 누리고 계신가? 솔직히 말해서 그런 교인들은 거의 없다. 그런 말은 성경에나 있는 말씀일 뿐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예배가 마치자마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세상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거나, 그런 교우가 없는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TV리모컨을 돌리거나 인터넷을 돌아다니거나 게임에 빠진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 아는가? 당신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며, 주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르침과 교단교리가 어떻든지 간에, 당신의 영혼과 삶의 상태를 날카롭게 살펴보라. 아니면 아닌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 아닌 데도 맞는다고 우기니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암 환자인데도, 다량의 진통제를 주사하여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나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속이는 가족들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기쁨과 평안과 자유로운 영혼을 누리게 되느냐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주의 영이 계시거나, 주안에 있으면 그런 영혼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그러므로 당신에게 성령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간절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시라. 이런 기도가 바로 영성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도훈련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정도로 해서는 안 된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한 기도,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기도의 강도로 해야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였다. 이렇게 기도하여야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 증거로서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영성학교에서 이런 상태가 되면 졸업을 시킨다. 그러나 성령이 갓 임재 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미혹의 영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미혹시켜 성령으로부터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할 때 기쁜 마음이 들어차고 있다면, 드디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힘이 공급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안심하고 만족하며 느슨해지기 일쑤이다. 기도의 힘이 바로 기도할 때 주시는 마음의 기쁨과 평안함이다. 그러므로 이 상태에서 만족하지 말고,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쁨이 강도가 커진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기도하지 않을 때에서 이런 마음의 상태가 유지된다. 이 상태가 바로 성령이 내주하는 상태이며, 이런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을 들였다고 볼 수 있으며,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의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런 기도에 대해 무지하고,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참선과 초월명상과 같은 느낌이나 감정을 찾으려고 하니까 귀신들이 이런 느낌을 주어서 속이는 것이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나 평안은 기도할 때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족한 성품에서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며, 하나님께서 가족들이 구원을 얻는 믿음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풍성한 열매가 있으며, 놀라운 은사와 영적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면서 영혼구원 사역을 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뿌리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방언기도로 기도시간을 즐기거나, 희생적인 기도에도 불구하고 삶과 영혼에 기쁨과 형통함이 없다면 이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상태가 아니라 미혹의 영에 속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날마다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비로소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쉬지 않는 기도와 항상 기뻐하는 것이 묶어서 말씀하신 이유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