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있다고?
크리스천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제물로서 십자가에 돌아가 주신 공로로, 자신들의 죄가 용서받아 죄로 가로막혔던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었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를 시인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며, 영접기도를 마치고 주일성수를 하는 교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근거이다. 그래서 당신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었다는 믿음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물론 이를 말하고 있는 여러 성경구절을 들이댈 것이다. 필자도 그 구절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믿고 확신한다고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셔야 진정한 믿음이 아닌가?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의 증거는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기도의 능력과, 믿음의 표적은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물 타기를 하여, 자신들이 주장하는 다른 성경구절을 들이대어 이슈를 다른 데로 돌리거나, 성령의 능력은 사도시대에 한정된 것이라는 신학자의 주장 뒤에 숨어 옹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교인들은, 필자의 말에 귀를 닫고 눈을 가리고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을 믿은 성경의 위인들의 삶은 죄다 기적과 이적으로 도배하다시피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어떻게 성경적인 믿음이겠는가?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벗어나서 독립한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을 죽여 제물로 드림으로 죄의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죄는 마음과 생각으로 들어와서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러한 구약율법의 제사법으로는 죄를 온전하게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단번에 십자가에 희생이 되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제사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기만 하면 죄의 용서함을 받아, 죄로 인한 불행에서 해방되었으며 악한 영의 포로가 되어 고통스럽게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신가? 그런 삶은 평안과 기쁨과 자유가 넘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믿고 그런 삶을 누리고 계신가?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믿고 세상 사람이 떡 벌어지는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계신가? 또한 놀라운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면서 영혼구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인생을 살아가고 계신가? 필자는 평신도 20여 년 동안 그러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아니, 거꾸로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 눈물을 빵을 씹으며 자살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근근이 목숨을 부지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을 공부하고 졸업하였더라도 바뀐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실망에 가득차서 목회자의 길이 아니라 세상으로 도로 나갔다. 그게 필자만의 특별한 인생사인가? 우리네 교회 안에도 이런 교인들이 널려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그런 사건이 연단과정이라고 다독거리거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위로하고 있다. 오홋, 그런가? 그렇게 연단이 끝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혹은 자신의 인생의 반전을 이룰 하나님의 때를 막연하게 기다리다가 죽어갔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무책임한 격려나 위로에 더 이상 속지 마시라.
그래서 왜 크리스천들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과 공허하고 건조한 영혼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사는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먼저 필자가 질문을 드리겠다. 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보혈이 가슴에 절절하게 느껴지는가? 십자가를 보면 가슴 한켠이 짠해지고 마음이 먹먹해지는가? 아니라면 당신은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관계라는 증거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능력이 당신의 삶과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다. 십자가는 그동안 지은 죄를 용서함을 받고, 죄와 싸우며 죄를 부추기는 귀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의 상징이다. 당신의 영혼이 건조하고 냉랭하며 삶이 고단하고 팍팍한 이유는, 여전히 죄가 당신의 인생을 불행에 빠뜨려서 고통스럽게 만들고 영혼과 생명을 사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은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성경지식이나 교리를 머리에 저장하여 쌓아둔다는 뜻이 아니라, 날마다 삶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다는 크리스천들이 죄와 싸워 승리하고 죄를 부추기는 귀신들의 공격을 물리치지 않고 있다면,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일 뿐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26: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15:18,19)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은 말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받아 표적과 기적을 드러내는 성령의 능력으로 악한 영들과 싸워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성령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는 사람들만이 십자가를 바라보면 가슴이 짠해지고 절절하게 믿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대다수의 우리네 교인들이 십자가를 보면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나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에 힘입어,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나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우리네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은 관념적인 성경지식과 사변적인 믿음을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속아서 교회마당을 밟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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