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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진실을 깨우는 소리없는 아우성

Joyfule 2011. 10. 10. 00:00

 

'도가니' 진실을 깨우는 소리없는 아우성 

 

   

 


미술 선생 인호(공유)는 학교발전기금 5,000만원을 내고 무진에 위치한 청각장애학교 '자애학교'에 자리를 얻는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인호는 곧 장애학생들이 교직원들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인권단체 간사인 유진(정유미)와 손을 잡고 아이들을 지켜주려 노력하지만, 거대 세력과 잔인한 현실 앞에 부딪치게 된다.

 
<도가니>는 노골적인 영화다. 대놓고 관객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선악의 경계가 또렷해서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도가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스며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영화가 품고 있는 '진실의 힘' 때문이다.
 
<도가니>는 작가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2000년~2004년 광주에 위치한 인화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범죄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1년 미만의 징역과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실질적으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해자 중 일부가 학교로 복직되어 현재 버젓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공법 이용한 영화
참혹한 현실 앞에 세련된 영화 문법이 의미 있을까
 
<도가니>는 대중문화 영역에 있는 영화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정통으로 뚫고 들어갔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각종 엽기 범죄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또 한 건의' 끔찍한 범죄에 불과한 일인지도 모른다. 범죄에 무감각해진 관객들을 흔들기 위해 <도가니>는 극적인(Dramatic) 요소를 곳곳에 설치해두었다.
 
가해자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교장 부인은 아이들을 지키려 하는 인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가해자 측 변호사는 9살 지적 장애아와의 성관계는 '자발적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피고인을 변호한다. 선악이 뚜렷한 스토리에 악한 캐릭터와 더없이 부합하는 외모를 지닌 배우 캐스팅은 영화를 도식적으로 보이게도 하지만, 두 시간 안에 처참한 현실을 또렷하게 전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전반을 뚫고 있는 극적 긴장감은 무뎌진 이성 뒤에 비겁하게 숨어있던 양심을 일깨운다.
 
<도가니>는 분명 분노를 머금고 있는 영화지만, 과잉된 감정을 분출하지도 않는다. 청각장애인들이 법정에서 지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은 그래서 더, 가슴 깊은 곳을 찌른다. 논란이 되었던 아동 성폭행 신도 선정적이지 않다. 황동혁 감독의 섬세한 연출은 배우들의 밀도 있는 연기에 힘입어 더욱 빛을 발했다. 청각장애학생 '연두'(김현수) '유리'(정인서) '민수'(백승환)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기존 아역 배우들의 정형화된 연기와 차별화된 깊이감을 보여주고, 공유는 스타에서 배우로 넘어가는 진중한 연기를 보여줬다. 정유미 또한 예의 그 생명감 넘치는 연기력으로 영화에 힘을 불어 넣었다.
 
<도가니>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는 이 사건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엔딩 크래딧은 올라갔어도, 인화학교 사건 일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25분.
   

 

 
<도가니>와 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

 

 

 

 
[공유]
영화 <도가니>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공유'다. 공유는 군복무 시절 병장 진급 기념으로 지휘관으로부터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 책을 선물 받는다. 소설 속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에 분노한 그는 작가를 직접 만나는 열의를 보이며 영화화를 적극 추진했다. (공유의 소속사인 ㈜판타지오는 ㈜삼거리픽쳐스와 함께 <도가니>를 제작했다.) 내친김에 주인공 인호 역(役)까지 맡은 공유는 로맨틱 가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층 깊어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도가니]
사전적 의미로 '도가니'는 흥분이나 감격 따위의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제목의 뜻에 대해 황동혁 감독은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도가니탕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다"며 농을 친 뒤, "무진의 자애학원이라는 곳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태연하게 벌어지는 '광란의 도가니'라는 의미에서 공지영 작가님이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밝혔다.
 
[무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안개의 도시, 무진(霧津)은 가상의 도시다. 불편한 진실을 안개로 감춘 현실을 의미하고 있다. 공지영 작가는 도서 출간 당시 인터뷰를 통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상징하는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 대한 오마주로 사건의 실제 배경인 광주를 무진으로 대체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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