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도덕불감증 교수사회
국민일보 입력 2013.04.18 18:29
20년쯤 전 유학에서 돌아와 몇몇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할 때다. 한 사립대학 지방캠퍼스의 사회과학 관련 대학 부설연구소가 갓 펴낸 논문집을 보고 깜작 놀랐었다. 경제학 정치학 행정학 분야 등 총 8편의 논문이 실렸는데 모든 논문의 주 저자 뒤에 그 대학 A교수 이름이 올라 있는 게 아닌가.
그 즈음 학계에서는 학문 간 통섭, 학제(學際)적 연구의 중요성이 거론되던 터라 'A교수가 설마' 하면서도 연구 분야의 폭넓음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A교수의 화려한 오지랖은 연구실적을 채우기 위한 꼼수였다. 동료교수들의 업적에 무임승차한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 상황을 용인한 교수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연구업적이 지금처럼 강조되지는 않았으나 그 대학이 부교수·교수 승진에 최소한의 연구업적을 따지기 시작한 터라 평소 논문 한편 안 쓴 A교수는 기한이 차서 막판으로 내몰리자 그런 편법을 썼던 것이다. 업적평가에서 둘이 쓴 공동논문은 반만 인정받는 게 보통이라서 아마 A교수는 연구업적으로 교내 논문 4편이 필요했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17일 교수신문이 발표한 한 기사 때문이다. 논문 표절 문제와 관련해 교수신문이 최근 4년제 대학 전임교수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료교수의 표절 행위에 대해 응답자의 86.3%가 모른 척하거나 조용하게 처리한다고 답했다.
도덕불감증이다. 그 옛날 A교수의 경우는 표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의 연구업적을 통째로 제 것으로 삼은 절도행각에 가깝지만 교수사회가 아직도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원인은 어디 있을까. 자기집단에 대한 너그러움으로만 해석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진입장벽이 높은 대신 정년까지 지위가 보장되는 직업적 특성 때문일까.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거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교수들은 웬만한 결격사유로는 해고가 불가능하다. 이런 조직은 자기규율이 제대로 작동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부패하기 쉽다. 그런데 자기규율은 이미 많이 흔들린 듯 보인다.
동료들의 잘못을 지적한들 제어할 방법이 없고 더구나 자기규율조차 없는 교수가 동료들의 잘못에 목소리를 높일 이유는 더욱 없을 터다.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교수들에게는 미안한 얘기가 됐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가장 필요한 곳이야말로 교수사회가 아닐까 싶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그 즈음 학계에서는 학문 간 통섭, 학제(學際)적 연구의 중요성이 거론되던 터라 'A교수가 설마' 하면서도 연구 분야의 폭넓음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A교수의 화려한 오지랖은 연구실적을 채우기 위한 꼼수였다. 동료교수들의 업적에 무임승차한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 상황을 용인한 교수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연구업적이 지금처럼 강조되지는 않았으나 그 대학이 부교수·교수 승진에 최소한의 연구업적을 따지기 시작한 터라 평소 논문 한편 안 쓴 A교수는 기한이 차서 막판으로 내몰리자 그런 편법을 썼던 것이다. 업적평가에서 둘이 쓴 공동논문은 반만 인정받는 게 보통이라서 아마 A교수는 연구업적으로 교내 논문 4편이 필요했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17일 교수신문이 발표한 한 기사 때문이다. 논문 표절 문제와 관련해 교수신문이 최근 4년제 대학 전임교수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료교수의 표절 행위에 대해 응답자의 86.3%가 모른 척하거나 조용하게 처리한다고 답했다.
도덕불감증이다. 그 옛날 A교수의 경우는 표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의 연구업적을 통째로 제 것으로 삼은 절도행각에 가깝지만 교수사회가 아직도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원인은 어디 있을까. 자기집단에 대한 너그러움으로만 해석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진입장벽이 높은 대신 정년까지 지위가 보장되는 직업적 특성 때문일까.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거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교수들은 웬만한 결격사유로는 해고가 불가능하다. 이런 조직은 자기규율이 제대로 작동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부패하기 쉽다. 그런데 자기규율은 이미 많이 흔들린 듯 보인다.
동료들의 잘못을 지적한들 제어할 방법이 없고 더구나 자기규율조차 없는 교수가 동료들의 잘못에 목소리를 높일 이유는 더욱 없을 터다.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교수들에게는 미안한 얘기가 됐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가장 필요한 곳이야말로 교수사회가 아닐까 싶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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