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젊은 리더 키울 학교세우자
“어메리깐, 어메리깐.” 1854년 4월 24일 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군함의 수병들은 배 아래에서 한 일본인이 외쳐대는 소리에 갑판으로 몰려 나왔다. 페리 제독 앞으로 인도된 두 명의 일본 젊은이들은 흥분된 표정이었다. 어느 서양인이 대필했음이 분명한 편지에는 ‘이들은 정직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젊은이들로 비록 막부(幕府)의 법이 일본인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미국으로 데려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페리 제독은 괜히 일본 막부의 심기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 이들을 정중히 돌려보냈다. 용감하게도 국법을 어기고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한 이 24살짜리 젊은이가 바로 훗날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주가 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그는 남달리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어린 쇼인은 네덜란드 선원들을 통해서 네덜란드어와 해양학을 공부했고, 현대 무기와 세계 지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드디어 당시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미국 유학을 시도했던 것이다. 페리 제독에게 거절당한 쇼인은 스스로 국법을 깬 죄로 관(官)에 자수, 14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한다. 거기에서 무려 618권이나 되는 책을 섭렵하고, 일본에 필요한 혁명적 개혁안을 만든다. 그가 꿈꾸었던 새 국가 청사진은 이렇다. 일본 정부나 기관의 요직을 차지할 사람들은 순전히 능력 중심으로 뽑아야 한다는 것, 새로운 개혁 정부는 막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천황을 중심으로 서구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로 구성할 것, 우수한 대학들을 창설할 것, 일본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 등이다.
출옥한 그는 슈카숙(宿)이라는 작은 사립학교를 세우고, 모여든 젊은 하급 무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수했다. 이들 중엔 다카스키 신사쿠, 이노우에 가로우 등 훗날 일본의 인재들이 끼어있었다. 일본의 차세대 리더 양성 학교인 이곳은 분야별로 전문가들을 초빙해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실천했다. 나라가 나아가야 될 원대한 방향을 잡아놓고, 그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커리큘럼을 직접 만들어 갔다. 1859년 10월 쇼인은 아키카쓰 암살 음모에 개입했다가 체포되어 아깝게도 사형에 처해져 29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 정부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란 기치를 들고 단행한 개혁은 요시다 쇼인의 그것이었다. 이후로도 메이지유신의 주역들 중엔 상당수가 교육계에 투신, 차세대 리더 양성에 전력하게 된다.
오늘날 리더십이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가능성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서 곳곳에 리더십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실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 높고 편한 자리를 버리고, 쇼인처럼 의연히 다음 세대 양성을 위해 헌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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