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심지어는 구한말과 흡사하다는 얘기가 몇 달 전부터 계속 들린다. 위기설이라는 게 보통 ‘설(說)’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번에도 호사가들이 대충 끼워 맞춘 사실에 대중(大衆)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위기 재발’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실제 당시와 현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일부 지표들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암이 퍼지기 전에 수술을 해서 위기의 싹을 잘라 버리는 개혁을 진즉에 단행했어야 한다. 하지만 수술을 맡은 이들에게 세상일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살갗이 곪는 것도 아닌데 왜 벌써 상처를 도려내야 하냐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저항이 길어지자 최근 관료 사회에서는 “차라리 위기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막상 위기가 닥쳐야 개혁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뜻에서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뭔가 일이 터져야 정신을 차리는 한국은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자조(自嘲) 섞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위기에 대한 경고가 현세의 낙관론에 압도당하는 것은 20년 전도 마찬가지였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나고 시중은행의 달러화가 연일 빠져나가며 나라가 곧 결딴이 난다는 것은 외환 담당 관료 중에서도 극히 일부 핵심 라인만 알고 있었다. ‘선진국 클럽’ 가입 이듬해에 경제부처 장차관들이 “우리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고, 상대적으로 한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지켜보던 외신들조차 믿고 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무슨 경고를 한들 그게 먹히기나 했을까. 아마도 “파티의 여흥을 깬다”는 소리만 들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뒤 ‘외환위기 20년’이라는 제목의 기획물을 모든 언론이 토해낼 때 우리는 ‘그때 잘했어야 했다’는 때늦은 후회를 쏟아낼지도 모른다. 남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제 스스로 하는 개혁은 그만큼 어렵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위기가 닥쳐야 정신을 차리는 모습은 요즘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우려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2년 전 이맘때쯤 ‘역대 가장 유약(柔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경제부총리가 ‘구조개혁’을 처음 입에 올렸을 때 현장에서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기자는 그때부터 기대 수준을 낮췄다. 부총리가 쏟아내는 말들을 받쳐줄 만한 결연한 의지를 그의 눈빛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7개월 만에 모든 부처를 제압할 수 있는 ‘정권 실세’가 사령탑으로 왔지만 관계 기관을 동원한 대증적인 경기 부양에 치중할 뿐이었다. 그의 후임으로 내정된 사람은 아예 별명부터 ‘순둥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경제는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한 채 부양책의 후유증으로 가계와 기업들의 빚만 늘어났다. 또 물이 서서히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자기만족을 하는 ‘냄비 속의 개구리’라는 조소를 들었다.
내년은 한국이 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는 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경기 둔화라는 강한 외부 자극이 동시에 몰려오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대로라면 우리는 이번에도 재벌 한두 곳이 쓰러지고, 빚을 못 갚아 집을 내던진 이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때쯤에야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물이 팔팔 끓기 전에 다리 근육을 키워 하루라도 빨리 냄비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한 대가가 얼마나 쓰라린지는 역사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