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 鄭 木 日
산봉우리와 숲을 바라보다가 산의 명상을 볼 때가 있다.
침묵 속으로 불쑥 말을 건네고 싶을 때가 있다.
목마름이 치밀어서 가만히 소리가 터져 나올 때가 있다.
산 중턱 숲에서 아무도 모르게 ‘아-’ 하고 하늘을 향해 불러본다.
목소리가 울려나가 사라진 후 잊고 있을 즈음, 침묵 속에도 귀가 있는 것인가.
저 쪽에서 누가 듣고 있다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그냥 돌아온 게 아니다.
산의 만년 명상과 산골짜기의 깊이가 울려서 되돌아온 것일까.
그냥 응답하는 게 아니다.
신비음(神秘音)의 표정과 미소를 전해 준다.
하늘과 땅의 마음이 울리고 있다.
목소리가 하늘에 닿아서 그 울림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를 만난다.
산에 가면 외롭지 않다.
가족과 떨어져 덕유산 기슭에서 지낼 때가 있었다.
산등성이 숲에 안기면 자신도 한 마리 새처럼 여겨졌다.
나는 지금 어느 시. 공 중에 서 있는가.
메아리는 소리로서 보여주는 영혼의 거울일까.
몇 만 광년의 시공을 건너오는 우주음(宇宙音)일까.
그 음향엔 하늘의 영감(靈感)이 깃들어 있다.
메아리는 산의 묵상을 울려서 나에게 닿아오는 영혼의 반사음(反射音)일까.
소리로서 만나는 은밀한 대화-.
소리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가 영원을 향해 손짓하며 부를 때, 시공 중에 울려나간 음향은 어디서 누구와 만나 돌아오는 것인가.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응답을 보내는 이가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메아리 파장 속에는 산 내음과 고요가 있다.
왼손으로 지긋히 누르고 오른손으로 켜서 튕겨내는 거문고처럼 영혼에서 떨려 나온다.
영원 속에서 마주 서서 부르는 또 하나의 모습을 본다.
풀리지 않는 마지막 질문, 그리움의 손짓이 울려나가 돌아오는 것인가.
마음이 맑고 투명해야 메아리가 잘 울려온다.
메아리를 듣는 것은 영원 속으로 보낸 내 발신음(發信音)을 배웅하고,
우주에서 온 수신음(受信音)을 마중하여 영접하는 순간이다.
풀숲에 풀벌레들도 한 수신자를 만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발신음을 보내고 있지 않는가.
하늘과 교감하는 찰나이다.
하늘의 음성이 들린다.
영원과의 대화가 아닐까.
시, 공간을 건너서 전율을 일으키며 하늘의 말이 다가온다.
산중에 서서 불러본다.
그립고 사무치는 이름들-.
메아리는 영혼이 울려내는 신비음(神秘音)일까.
소리의 거울일까.
내 음성만이 아니다.
산의 침묵이 울리고 번져서 하늘의 표정을 담아낸 거울이다.
영원에 대한 목마름, 그리움의 손짓이다.
산에 가서 혼자 독백을 늘어놓을 때,
누군가 들어줄 마음의 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주 공간 어디에서 대답해줄 누군가가 있음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메아리를 통해 하늘까지 닿을 수 있음은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일이다.
외롬이 깊으면 산으로 가서 메아리를 만난다.
메아리를 통해 고해성사를 바치며 하늘과 교감하는 의식을 갖는다.
마음을 하늘처럼 비워버리고 싶다.
누군가 유심히 바라보고 내 음성을 귀담아 듣고 있는 이가 있다.
부르기만 하면 응답해주는 이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
메아리로 하늘에 닿고, 영원의 음향을 듣는다.
나는 영원 속에 있다.
<‘계간수필’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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