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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 22.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Joyfule 2006. 12. 23. 02:05


목적이 이끄는 삶 - 22.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9)
“우리는 그 아들을 보고 모든 창조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안다”
(골 1:15, Msg).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당신의 아들 예수님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우리 삶의 세 번째 목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실 때 이 의도를 말씀하셨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위대한 특권이며 우리에게 존엄성을 부여해주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두 알지 못하지만, 함축되어 있는 몇 가지 측면은 알고 있다. 하나님처럼 우리도 영적인 존재다. 우리의 영은 죽지 않고, 우리의 몸이 사라져도 영은 남을 것이다. 우리는 지적인 존재다. 우리는 생각하고, 논리에 따라 사고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처럼 관계를 중시한다.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선악을 구분하고,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믿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부분적으로나마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살인과 낙태는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그 형상이 완전하지 않고 죄에 의해 손상되고 왜곡되었다(창 6:9, 시139:13~16, 약3:9).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완전한 형상을 다시 찾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 완전한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 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한다’라고 말하고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그의 존재의 완전한 묘사(고후4:4, 골1:15, 히 1:3-NIV)’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가족이 서로 닮은 모습을 표현할 때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쓴다. 사람들이 내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듯이, 하나님 역시 당신의 자녀들이 자신의 형상과 모습을 지니고 있기를 바라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고 어떤 신도 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교만으로 인한 거짓말이고 지금까지 사탄이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는 유혹이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의 충고를 들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창 3:5).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많은 종교와 뉴에이지 철학은 우리가 신성을 지닐 수 있다든지, 아니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그 오래된 거짓말을 여전히 하고 있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이 욕구는 우리가 우리의 상황, 미래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할 때 나타난다. 하지만 피조물로서 우리는 절대로 창조주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은 우리가 신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대신 우리가 그분의 도덕적 성격을 지닌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 24).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신 궁극적인 목적은 편안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모든 성격을 버리고 생각 없는 복제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독특한 성격을 주셨고,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인격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산상 수훈(마5:1~12), 성령의 열매(갈5:22~23), 사랑에 관한 바울의 위대한 장(고전 13장), 그리고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위한 베드로의 인격 리스트(벧후1:5~8)에 묘사되어 있는 인격을 개발하기 원하신다. 이 사실을 잊을 때마다 우리는 삶에 대해 절망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가? 왜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왜 나는 이런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그러나 삶은 처음부터 어렵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야 우리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이 천국이 아님을 기억하라.
많은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풍요로운 삶에 대한 약속’(요10:10)을 잘못 해석한다. 그것이 완벽한 건강, 편안한 삶의 방식, 끊임없는 행복, 꿈의 실현 그리고 믿음과 기도를 통한 빠른 문제 해결이기를 기대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크리스천의 삶이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는 것이라 기대한다.
이러한 자기 도취의 관점은 하나님을 단순히 우리의 이기적인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요정쯤으로 취급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종이 아니시다. 만약 우리가 삶이 쉬운 것으로 되어졌다는 생각에 빠진다면 우리는 삶에 대해 심한 환멸을 느끼거나, 현실을 부정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삶이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하나님이 영생에서 우리를 위한 진짜 삶을 계획 해놓으셨는데 왜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주시겠는가?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을 위해 우리의 인격을 쌓고, 강화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만드는 것은 성령의 일이다. 성령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우리가 더욱 예수님을 닮아 가는 기 과정을 성화라고 부른다. 이것이 우리 삶의 세번째 목적이다. 우리 스스로 예수님의 성품을 만들고 개발할 수 없다. 새해 새 결심, 의지 그리고 좋은 의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보고 싶어하시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은 오직 성령만이 가지고 계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성령의 힘’ 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기적적인 일이나 격렬한 감정을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령의 힘은 우리의 삶에서 조용하고 약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거나 느낄 수 없다. 그분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왕상 19:12, 쉬운성경)로 우리를 가볍게 건드리신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모방이 아니라 그 안에 삶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 사시게 하는 것이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골1:27). 이것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가 하는 선택을 통해서 일어난다. 우리는 그 상황에서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행동하고, 성령이 그것을 위한 힘, 사랑, 믿음 그리고 지혜를 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들을 구하기만 한다면 항상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협력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 계속 설명되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데 이는 성령은 우리가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는 그 순간에 힘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요단 강이라는 넘어갈 수 없는 벽을 만났을 때 지도자들이 순종과 믿음으로 흐르는 물에 발은 담근 후에야 강물이 약해졌다(후3:13~17).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온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행동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힘이 생기거나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약점이 있어도 행동하라. 두려움과 감정에 상관없이 옮은 일을 하라. 이것이 성령과 협력하고 우리의 인격이 세워지는 방법이다.
성경은 영적인 성장을 설명하면서 이를 씨앗, 건물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에 비유했다. 그런데 각 비유는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그냥 세워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영적인 성장은 우리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신약 성경에 예수님을 닮아 성장하는 데에 ‘힘쓰라(눅13:24, 롬 14:19, 엡4:3, 딤후 2:15. NCV, 히4:11, 벧후1:5, 3:14)’는 말이 적어도 여덟번 등장한다. 그냥 앉아서 성장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2~24절에서 그리스도와 같아지기 위해 우리가 져야 할 세가지 책임에 대해 설명한다. 첫째, 우리는 옛 태도를 버려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둘째, 우리는 사고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성열이 너의 사고 방식을 변화 시키도록 하라”(엡4:23, CEV). 성경은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새로워 진다고 말한다(롬 12:2). 변화(transformed)의 그리스어원은 로마서 12장2절과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서 사용된  metamorphosis이다. 이 단어는 오늘날 나비 유충이 나비가 되기 위해 거치는 엄청난 변화를 묘사하는데 사용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고를 인도하시도록 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영적인 변화는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높이 치솟을 수 있도록 자유롭다.
셋째, 우리는 새롭고 거룩한 습관을 발전시킴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어야’ 한다. 우리의 성품은 습관을 모두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습관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4).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 당신의 말씀, 사람들 그리고 상황을 이용하신다.
이 세가지 모두는 인격을 개발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진리를 공급해주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준다. 그리고 상황은 그리스도와 닮은 모습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적용하며, 다른 믿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운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는 성장에 필요한 이 요소들을 앞으로 각각 살펴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성경공부와 기도만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들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교제를 통해 서로 의지하고 이로 인해 우리가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많은 종교들에서, 사람들은 영적으로 가장 성숙하고 거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산꼭대기 수도원에 홀로 고립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오해다. 영적인 성숙은 혼자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는 그리스도처럼 성숙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나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왜일까? 영적인 성숙은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므로 혼자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으면 예수님처럼 되는 것을 연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기억하라.
예수님처럼 되는 것은 길고 느린 성장의 과정이다
영적인 성숙은 즉각적이거나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남은 삶 동안 계속 이루어질 점차적인 발달 과정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우리는 아직 과정중에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닮아가는 영적인 변화의 과정은 평생 절릴 것이고, 이 땅에서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 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이다. 그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마무리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결국 예수님을 완벽하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완전히 그분과 같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3:2).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데 많은 혼란을 겪는 이유는 다음의 단순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해서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 우리의 인격을 쌓는 데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걱정을 한다. 그러나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러 다른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임하는 것이다(고전 10:31, 16:14, 골 3:17, 23).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doing) 보다 어떤 사람인지(being)에 더 관심을 두신다.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서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보다는 우리의 성품을 더 많이 생각하신다. 이는 우리가 영생으로 갈 때 가지고 가는 것은 직업이 아닌 성품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그리스도와 닮아가는 데 초점을 맞추려면 문화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 부모, 동료 그리고 문화와 같은 다른 힘이 우리를 그들의 모습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슬프게도 많은 기독교 서적을 보면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버리고 개인적인 만족과 감정의 안정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제자도가 아닌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편안하게, 잘 적응하여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목적은 그보다 훨씬 깊다. 그분은 우리를 천국에 데려 가시기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원하셨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이고, 즉각적으로 수행해야 할 책임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종착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