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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 21 교회를 보호하기 상.

Joyfule 2006. 12. 21. 01:12


목적이 이끄는 삶 - 21 교회를 보호하기 상. 
“평안을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무엇보다 사랑이 너희의 삶을 인도하게 하라. 
그러면 교회 전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골 3:14, LB).
교회의 하나 됨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교회의 하나 됨이란 신약 성경에서 천국이나 지옥에 관한 얘기보다도 더 많이 언급될 만큼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하나 됨과 조화를 경험하기 원하신다.
하나 됨은 교제의 영혼이다. 하나 됨이 파괴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섬김이 찢겨져 나가는 것과 같다. 하나 됨은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삶을 함께 경영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방법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그것의 모범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도 이처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희생적인 사랑, 겸손한 이타주의 그리고 완벽한 조화의 최고의 모범이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모든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는 모습에 기뻐하신다.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시기 전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셨다(요 17:20~25).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하나 됨이었다. 이것은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교회보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은 없다. 그분은 교회를 위해 가장 큰 값을 치르셨고, 교회가 분열, 갈등 그리고 부조화로 인한 치명적인 손상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교제를 나누는 곳, 즉 속한 교회의 연합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는 하나 됨을 지키고, 교제를 보호하며, 교회 가족과 모든 믿는 사람들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잇는 것을 모두 하라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 받았다. 성경을 이렇게 말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실제적인 충고를 해준다.
서로의 차이보다는 공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9).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한 분 주님, 한 몸, 한 목적, 한 아버지. 한 성령, 한 희망, 한 믿음, 한 세례(침례) 그리고 한 사람을 공유한다(롬 10:12, 12:4~5, 고전 1:10, 8:6, 12:13, 엡 4:4, 5:5, 빌 2:2). 그리고 우리는 같은 구원, 같은 삶 그리고 같은 미래를 공유한다. 이는 우리가 열거 할 수 있는 차이점들보다 훨씬 중요한, 우리가 집중해야 할 요소들이다.
우리를 각기 다른 인격, 배경, 인종 그리고 취향을 갖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차이를 단지 참아내는 것이 아니며 소중히 여기고 즐겨야 한다. 하나님은 획일성이 아닌 하나 됨을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 됨을 위해서 사소한 차이점들이 우리를 갈라놓게 두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 각자와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갈등은 주로 초점이 덜 중요한 문제들, 성경이 말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로 옮겨진 것을 의미한다(롬 14:1, 딤후 2:23). 우리가 인격, 선호하는 것, 해석, 스타일, 혹은 방법 등에 초점을 맞출 때 분열은 항상 일어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것에 집중한다면, 조화를 이룰 수박에 없다. 바울은 이것을 간절히 원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현실적인 기대를 하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제가 어떤 것인지 발견한 후에는, 교회 내의 이성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절망하기 쉽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비판하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반면에, 이성에 대한 노력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자기 만족일뿐이다.  성숙함이란 이 둘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사는 것이다. 
다른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키고 절망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과의 교제를 끝내는 핑계가 될 수 없다. 그들이 가족처럼 행동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고, 우리는 그들을 떠나버릴 수 없다. 대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2).
물론 사람들은 타당한 많은 이류들로 교회에서 멀어진다. 갈등, 상처, 위선, 무시, 인색함, 형식주의 그리고 그 밖의 죄들이 그 이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로 충격을 받고 놀라기보다 우리는 교회가 우리를 포함한 죄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서로 상처를 준다. 그럴 경우 교회를 떠나기보다는 가능하다면 남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망가는 것보다는 화해하는 것이 더 성숙한 인격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길이다.
교회에 한 번 실망하거나 환멸을 느꼈다고 해서 떠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탈출해서 갈 수 있는 완벽한 교회는 없다. 모든 교회는 나름대로의 약점과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곧 다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루초 막스(groucho Marx)는 그를 받아주는 그 어떤 모임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만일 교회가 완벽해서 우리를 만족시켜줄 수 있다면, 그 완벽함 때문에 우리는 그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치에 대항하다 순교한 독일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boffer)는 「신도의 공동생활(Life Together)」이라는 고전을 남겼다. 그 첵에서 그는 교회에 대한 환멸은 우리의 완벽함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없애주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고 했다.
교회가 완벽해야 사랑받는다는 환상을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더 빨리 겉모습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며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시작이다.
모든 교회가 이러한 푯말을 내걸 수도 있다. “완벽한 사람은 지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곳은 스스로가 죄인이고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만을 위한 곳입니다.”
본회퍼는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자체보다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경험이나 예산의 부족, 약점, 작은 믿음 그리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일 감사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하찮고 사소하다고 불평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의 성장을 막는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