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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리더십과 영성관리.

Joyfule 2020. 5. 1. 06:16

 

 

 

        목회리더십과 영성관리.

 

 

1. 목회 리더십과 영성과의 관계


 1)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권위‘의 문제


목회자의 리더십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것은 예수님의 리더십이 어떠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라이힛톤 포드(Leighton Ford)는 [Jesus: The Transforming Leader]라는 책에서 아들로서의 리더(The Leader as Son), 전략가로서의 리더(The Leader as Strategist), 선견자로서의 리더(as Seer), 강한자로서의 리더(as Strong one), 목자를 만드는 자로서의 리더(as Shepherd-Maker), 대변가로서의 리더(as Spokesperson), 투쟁가로서의 리더(as Struggler), 종으로서의 리더(as Servant)로 예수님의 리더십을 구분하여 다루고 있다. 하지만,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은 미래의 교회에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확신하였고, 그 리더십은 이 세상의 파워 게임을 본뜬 리더십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주기 위해 오셨던 섬기는 지도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뜬 리더십이라고 주장했다. 폴 시다(Paul Cedar)도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으로 보여주신 리더십은 ‘섬기는 지도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목회 리더십에 있어서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마태복음 2:25-28의 말씀은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diakonos)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doulos)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diakonesai),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가를 놓고 다투고 있을 때, 그들에게 종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의 통치자는 힘에 기초하지만, 종은 순종에 기초하며, 섬김과 희생에 기초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종으로서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고 하셨다. 


하지만 여기에서 리더십과 관련하여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데, 바로 힘, 즉 권위의 개념이다. 목회 리더십을 섬김의 리더십'으로 말할 때, 우리는 권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권위는 분명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권위는 모든 사회 구조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 가지신 권위는 그대로 인간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에로 옮겨지게 되어, 예수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성경이 인정하는 유일한 권위는 바로 구속사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담임목사 중심의 한국교회의 구조에서는 이 권위의 개념이 목회 리더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목회자는 말로는 ‘교인을 섬긴다’, ‘성도를 돌본다’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군림하며, 대접받는 모습 즉, 권위가 우선시 되어 나타나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목회 리더십이 ‘종됨’과 ‘머리됨’ 이 두 가지가 상호 치완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은 머리가 되기 위한 것이라는 것으로써 목회 리더십은 늘 권위의 남용이 문제가 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은 예수님과 헤롯의 지도력을 비교하면서, 헤롯의 나라는 권세와 사치와 과시를 재현했지만 로마를 뒤집지 못했고, 이와 반대로 예수님은 헤롯의 리더십이 주는 기득권을 무시하고 사회 한구석에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였지만,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리더십이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큰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정치적인 힘, 군사적인 힘, 경제적인 힘, 도덕적이고 영적인 힘의 시험에 굴복했다는 것에 있다. 조찬선은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역사상 저지른 수많은 죄악상을 폭로하고 있다. 러스 라이드(Russ Reid)는 [무엇이 기독교 지도자를 망치는가?]라는 글에서 기독교 지도자의 권한의 남용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John R. W. Stott는 목회자에게 있어 리더십이란 용어는 결코 지배권(lordship)과 동의어가 아니며, 기독교 지도자들은 섬김으로 권위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물론 리더십에는 어떤 권위가 부여되어 있으며 또 그러한 권위가 없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으며, 가르치고 훈련하는 데에 그것을 행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바는 지배자로서의 지도자의 권위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서의 지도자의 겸손에 있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지도하는 권위는 힘이 아니라 사랑이며, 강요가 아니라 모범이며, 위압이 아니라 합리적인 설득이다. 지도자들은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은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손안에 있을 때에만 안전하다“


   섬김의 리더십‘ 즉, ’Servant Leadership'에 있어서 'Leadership'이 우선인지 아니면 ’Servant'가 우선인지에 대해 쉽게 단정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둘은 함께 있으면서도 그 성격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날 사도들에게 하셨던 말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은 목회 리더십의 모든 의미를 요약하는 말씀으로서, 교육, 설교, 목회상담, 사회 참여, 예전과 경축이 직업의 수준을 초월한 섬김의 행위가 되는 것은 목회자가 여기서 친구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목회 리더십은 ‘권위’ 이전에 ‘섬김’이 기초요, 우선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권위의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저항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옳치 않은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셨고, 그 당시 불의한 체제에 대해 저항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와 헤롯의 통치에 비판적이었고, 집권층 사두개파에 항의하셨으며, 자만과 안일에 빠진 바리새인들에 도전하셨고, 불의한 통치자들과 지배층을 과감히 비판하고 저항하셨다. ‘Servant Leadership'에서 권위를 내세우게 된다면 예수님처럼 불의한 체제에 대해 저항할 수 있을까? 권위를 앞세우는 지도자는 자기보다 크다고 여기는 권위 앞에서 저항하지 못했다. 이는 마치 구약의 궁중 선지자들이 왕의 비유를 맞추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과, 신약시대의 집권층이었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로마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은 것, 그리고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정경 유착하여 옳은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