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무등을 보며 - 서정주

Joyfule 2005. 9. 28. 01:32
 
      
      
      무등을 보며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길은 우리들의 타고 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이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히 끼일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