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사랑의 로맨티시스트 김준곤 목사님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운동은 민주화 운동과 복음화 운동이었다고 생각된다. 민주화 운동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운동이었고, 그래서 억압당한 인권을 구조 악으로부터 회복하는 정치적 해방이 그 중요한 초점이었다. 반면에 복음화 운동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의 이웃들에게 증거 함으로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영적 해방이 그 중요한 초점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우리 민족사의 한 복판에서 신앙의 영역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 모든 계층에서 주목을 받았음에 반하여 복음화 운동은 기독교 특히 복음주의적 개신교의 영역 안에서만 회자되어 온 운동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 운동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복음화 운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복음화 운동 없이 오늘의 한국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고 한국 교회를 통한 세계 선교의 생동하는 에너지도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복음화 운동의 파고의 한 복판에 김준곤 목사님이 계셨다. 나는 20대 와 30대 초반까지 YFC(십대 선교회)운동에 관련되어 있었지만 당시 민족 복음화를 외치며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예수 그리스도의 푸르고 푸른 계절이 오게 하자”는 목사님의 외침에 크게 감전되어 있었다. 나는 CCC회원은 아니었지만 1971년 그가 민족 복음화를 선언하던 현장에 있었고, 그가 주관한 1980년 세계 복음화 대 성회에서도 통역 강사로 섬기면서 그분의 사역에 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크게 영향을 입은 것은 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나는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설교를 큰 목소리로 고함치지 않아도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 그 분의 설교를 접하면서 작은 낭만적인 목소리로 호소함에도 그의 설교는 마치 내 세포의 깊은 구석 구석을 터치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둘째로 그의 유명한 <백문 일답>처럼 무슨 문제를 제기해도 대답은 그리스도라는 명제 곧 그리스도가 구원이고 그리스도가 소망이라는 외침은 젊은 설교자인 나의 영혼에 깊은 울림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그의 영향은 민족 사랑의 외침이었다. 정치, 경제, 교육, 과학, 예술 모든 삶의 영역에 그리스도를 심어 이 민족을 그리스도의 민족으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아마도 그가 이 땅에 남긴 가장 위대한 로망스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진실로 민족 사랑의 로맨티시스트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시화 운동을 위해 목숨의 불꽃을 사르다가 지난 29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그의 영원한 사랑이신 주님의 품으로 출발하였다. 한국 교회의 영원한 청년 전도자 김준곤 목사님의 별세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민주화 운동이 우리 민족사의 한 복판에서 신앙의 영역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 모든 계층에서 주목을 받았음에 반하여 복음화 운동은 기독교 특히 복음주의적 개신교의 영역 안에서만 회자되어 온 운동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 운동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복음화 운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복음화 운동 없이 오늘의 한국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고 한국 교회를 통한 세계 선교의 생동하는 에너지도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복음화 운동의 파고의 한 복판에 김준곤 목사님이 계셨다. 나는 20대 와 30대 초반까지 YFC(십대 선교회)운동에 관련되어 있었지만 당시 민족 복음화를 외치며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예수 그리스도의 푸르고 푸른 계절이 오게 하자”는 목사님의 외침에 크게 감전되어 있었다. 나는 CCC회원은 아니었지만 1971년 그가 민족 복음화를 선언하던 현장에 있었고, 그가 주관한 1980년 세계 복음화 대 성회에서도 통역 강사로 섬기면서 그분의 사역에 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크게 영향을 입은 것은 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나는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설교를 큰 목소리로 고함치지 않아도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 그 분의 설교를 접하면서 작은 낭만적인 목소리로 호소함에도 그의 설교는 마치 내 세포의 깊은 구석 구석을 터치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둘째로 그의 유명한 <백문 일답>처럼 무슨 문제를 제기해도 대답은 그리스도라는 명제 곧 그리스도가 구원이고 그리스도가 소망이라는 외침은 젊은 설교자인 나의 영혼에 깊은 울림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그의 영향은 민족 사랑의 외침이었다. 정치, 경제, 교육, 과학, 예술 모든 삶의 영역에 그리스도를 심어 이 민족을 그리스도의 민족으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아마도 그가 이 땅에 남긴 가장 위대한 로망스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진실로 민족 사랑의 로맨티시스트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시화 운동을 위해 목숨의 불꽃을 사르다가 지난 29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그의 영원한 사랑이신 주님의 품으로 출발하였다. 한국 교회의 영원한 청년 전도자 김준곤 목사님의 별세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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