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

Joyfule 2024. 7. 13. 16:34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

<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

 아삽은 다윗 때 성전에서 찬송하는 수석 악사(樂士)였다(대상 25:1). 아삽은 하나님을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으로 알았다(1절). 그러나 악인의 형통을 보고 질투심이 생겨 믿음이 흔들려 넘어질 뻔했다(2-3절). 아삽의 믿음이 흔들린 것은 복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복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지만 복의 개념을 잘못 알고 추구하면 복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독이 된다.

 만사형통을 약속하는 믿음은 미신이다. 믿으면 다 이뤄진다고 하는 말은 복을 선포하는 말이 아니라 독을 퍼뜨리는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신실한 인물들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많았다. 절망 중에도 하나님을 붙잡고 희망을 노래하며 사는 것이 성경적인 믿음의 본질이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아갈 때 오히려 사는 길이 열리고 잃으면 잃으리라고 나아갈 때 오히려 얻는 길이 열린다.

 복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건강과 장수와 부귀의 복과 같은 현세적인 복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는 영적인 복이다. 현세적인 복은 상대적인 복이고 영적인 복은 절대적인 복이다. 어느 복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신앙 자세와 가치관이 크게 달라진다. 상대적인 현세의 복보다 절대적인 영적인 복을 더 귀히 여기라. 현세의 복에 집착하면 부조리한 현실을 볼 때마다 믿음이 흔들리기 쉽다.

 영적인 복의 개념을 가지고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또한 악인이 형통해서 오만하게 되어도 질투하지 말라. 부러움이 지나치면 파괴적인 질투심으로 발전한다. 의인은 형통하게 되면 겸손해지지만 악인은 형통하게 되면 오만해진다. 그렇게 오만해진 악인은 결국 파멸로 향하게 되는데 그런 오만한 악인을 질투하면 인생이 비참해진다.
 
<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 >

 악인이 겉으로는 형통한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그래서 악인은 죽을 때까지 고통도 없고 그 힘이 강건한 것 같고 고난과 재앙도 없는 것 같다(4-5절). 또한 잘 나가니까 교만과 강포가 체질화되었고(6절), 잘 먹어서 눈두덩이 살이 쪄서 솟아날 정도였고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을 정도로 형통하게 보였다(7절). 그러나 고난과 고통이 없고 마음의 소원 이상으로 일이 잘 풀리는 것이 반드시 복만은 아니다.

 사람은 고통과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고난이 없다면 어떻게 믿음이 성숙해지겠는가? 역사상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도 다 자기 나름대로의 십자가가 있었다. 바울도 육체의 가시를 통해 더욱 성숙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다. 고난과 상처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은혜의 통로가 될 때가 많다. 만사형통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악인이 형통해지고 교만해지면 대개 말부터 교만해진다(8-9절). 또한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하나님을 경시하는 말까지 한다(10-11절). 악인들이 그렇게 악행을 하고 하나님을 외면해도 항상 평안하게 지내고 재물은 더 불어나는 경우도 많다(12절). 반면에 아삽은 깨끗한 마음과 정결한 손을 가지려고 애썼는데 형통함 대신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 것과 같았다(13-14절). 그런 부조리한 현실 때문에 아삽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는가?

 고난은 단련과 성숙을 통해 더 큰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아무리 신실한 성도라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죄가 있을 수 있는데 고난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다. 그런 상황들을 고려해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존재에 대해 의심하거나 불평하지 말라. 고난이 생각 이상으로 크고 장기간 진행되어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반드시 역전 인생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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