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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보수와 진보

Joyfule 2012. 3. 29. 04:16

 

바람직한 보수와 진보
2012년 3월
강 욱(송 복 교수의 강의를 중심으로)


1. 總論


단순화시켜 말하면
보수는 좋은 것을 지키겠다는 것이고
진보는 나쁜 것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좋은 것을 지키려 하고 나쁜 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또 나쁜 것을 고치려고 할 뿐, 좋은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죽기살기로 편을 나누어 싸운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나쁜 것은 자기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는 점진적으로 개혁을 하는데 반하여
진보는 선험적(先驗的)으로 미래의 것을 고치겠다고 하여
모두가 꿈을 갖게 하여 무이념, 마당파인 젊은 2040세대가 열광하게 된다.

이것이 안 철수 신드롬을 낳게 되었다.
지식기반으로부터 소외된 2040들이 안 철수를 보았을 때

떤 정치인보다도 희망과 꿈을 갖게 해줄 사람이라고 보았다.
더구나 오늘날 구직난의 젊은 층은 비현실적 허언(虛言, 실속이 없는 거짓말)에도 현혹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안 철수는 교수, 문화인, 기업인은 되지만 정치판은 안되고, 뛰어드는 순간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죽게 된다.
절대적으로 금기이고 안 철수는 정치판에 놀 수 있는 판이 아니다.

정치판의 본질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음모와 사기이기 때문에 또 정치적으로 검증이 안됐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되어왔다.
보수가 진보가 되고 또 진보도 보수가 되는 역사의 반복들이 수 없이 있기 때문이다.


2. 보수와 진보의 원칙


가. 보수의 원칙(Conservative)
① 경험주의다.
경험이 축적된(역사, 전통, 관습, 관행)것으로 오랜 역사 속에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역사를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철학이다.
만인(萬人)이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萬里)의 길을 가면서 쌓은 오랜 경험의 축적과 경륜이라는 뜻이다.
② 현실주의다.
현실을 항상 중시한다.
개혁하지 아니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개혁하는 현실주의자이고 이는 보수나 진보는 같다.
③ 점진주의다.
진보는 과격한 점에 비하여 보수는 점진적으로 개혁한다. 왜?
과격하면 구조(Structure)에 반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④ 도덕적 내재(內在)주의다.
헌법과 같이 우리 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곧 보수다.
사고하는 가치나 윤리가 자신의 뼈로 내재되어 항상 성실성을 중요시 한다.


나. 진보의 특징
① 선험주의(先驗主義)다.
경험을 안 해보고 아는 것을 말한다.
선험(Transcendental)에 앞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주관적 형식이라는 철학적 용어이다.
빛나는 두뇌와 냉철한 이성으로 일일이 경험해 보지 아니하고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험적 오류를 펼치지 않기 위하여 이념, 이상, 꿈, 상상을 이야기하게 된다.
② 방범론적 이상주의자들이다.
역사는 잘못된 것이 되풀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현실 없는 것을 상상하기 때문에 이상주의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③ 급진주의자들이다.
과격하게 뿌리채로 바꾸자는 것이다.
급격하게(Suddenness), 그리고 과격하게(Radicalness)
급진적으로 개혁하자는 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실패가 많은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④ 도덕적 수단주의이다.
진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법을 무시하고 모든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거짓말을 잘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불법적 노동쟁의 행위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괜찮다 (노무현)고도 했다.
평등해 지려면 국가권력으로 경쟁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3. 우리의 현실
이념(Ideology)의 과정은
중도(Center)→중도좌파(Center-left) →좌파(Left)→극좌파(Far-left)→사회주의(Socialism)→공산주의(Communism)로 진행되고 보수의 과정은 그 반대의 경우다.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공산주의를 이루기 위한 수단의 과정이며 공산주의는 인간의 열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돈이 필요 없는 세상이고 세상 어디서나 살면 이것이 내 집이 되는 열반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반세기 만에 亡해 버렸으나 요즈음 한동안 안보이던 마르크스의 책

“청년들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마르크스의 역사이론” 등의 책이 탐독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진보는 이미 바람직한 진보나 좌파의 수준을 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금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앞에서와 같이 순수한 가치의 진보 이념을 넘어 1대 99로 갈라지고(Divide),
정권타도(Overthrow) 점령(2012 Occupy), 되 갚아 준다(복수, Overthrow) 형태로 변질되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큰 이슈로 FTA반대, 해군기지 반대 등은 결국 한미동맹의 해체로 이어지면
앞으로 우리는 중국과 일본 등 그 어느 누구와 동맹을 맺어 빛나는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브래진스키의 책에서 이미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이까”(도미니 쿼바디스),


결국 종북, 친북 나아가 종친북(從親北)으로 이어져 국가의 장래가 대단히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좌파들은 중국의 탈북자 북송문제와 인권에 대하여 그 흔한 촛불시위나 희망버스 한번 보낸 적이 있는가? 전형적인 종북, 종친북의 행위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목적을 위해선 수단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한국이 무너지고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흡수된다면 선진화와 통일이 꿈인 우리의 장래는 끝이다.
이를 위한 한국의 진보좌파는 훗날 그의 노력과 수단이 정당화 되었다고 거리를 뛰쳐나와 만세를 부를 세상을 상상이라도 하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생명을 걸고 투쟁 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 같다.


물론 그렇게는 되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를 어떻게 치루느냐 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소중하고 중차대한 몫이다.
왜 조선은 망했는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