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보라색 여름 바지 ㅡ 문정희

Joyfule 2006. 11. 21. 00:51


 
      보라색 여름 바지 ㅡ 문정희 여름 다 지나고 선선한 초가을 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보라색 여름 바지 하나 사 들고 돌아오며 벌써 바람처럼 숭숭 차가운 후회가 뼛속으로 스미어 옴을 느낀다 왜 나는 모든 것을 저지른 후에야 아는가 만져 보고 난 후에야 뜨겁다고 깨닫는가 늘 화상을 입는가 사람들이 이미 겨울을 준비할 때 여름의 잔해에 가슴을 태우고 사랑을 떠나 보낸 후에야 사랑에 빠져 한 생애를 가슴 치고 사는가 내 키보다 턱없이 긴 바지단을 줄이며 내 어리석음을 가위로 잘라내며 애써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어 본다 누구나 정해진 궤도를 가는 건 아니지 돌발과 우연이 인생이기도 해 그러나 어느 가을날 하루가 더운 사랑으로 다시 뒤집힐 수 있을까 이 보라색 바지를 위해 무릎 아래까지 흰 별들이 총총 나 있는 보라색 여름바지를 입고 서서 홀로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다 숭숭 기어드는 차가운 바람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