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봄 - 김광섭

Joyfule 2008. 4. 15. 00:47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距離)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몇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