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근원적인 관계에 대해 해답을 찾고자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7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은 폐암으로 숨지기 한 달 전인 1987년 10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세상에는 왜 악인이 많은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등 24개의 질문을 가톨릭 박희봉 신부에게 전달해 해답을 얻으려고 했다. 두 분의 만남은 이 회장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 돼 이뤄지지 않았고, 이 회장은 한 달 후에 별세했다.
당대 최고의 부자였고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고 이 회장이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 창조, 악 등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해답을 알고 싶어했다는 건 죽음 앞에서는 부와 명예와 권력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함을 반증해 준다. 이 회장이 말년에 기독교에 입문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 별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조직신학자인 황덕형 서울신대 교수가 해답을 내놓았다. 황 교수는 서울신대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거쳐 독일 보쿰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편집자주>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있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길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를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드러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교정된 질문은 두 가지 새로운 전제를 갖는다.
첫째,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이미 드러내셨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보여주셨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첫 대화는 인간다운 방법으로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신 것으로 시작된다(창 3:9).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계시의 방법에 대한 물음은 하나님이 드러내시기를 기대하는 인간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될 수 있다. 우리의 참다운 자기는 어디에서 찾아지는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적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모든 것을 흠 없이 깨끗하게 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수많은 유혹들, 나태와 독선, 더 높아지고자 하는 광기와 타인을 무시하는 못된 습관 속에서 살아간다.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려는 선한 의지를 갖고 남을 이해하면서 더불어 살고 싶은 그런 공동체적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역경과 삶의 의문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현대 과학이 밝히는 물질의 근본구조를 살펴보라. 그 마지막은 에너지라고 하는데 그나마 전체 우주의 극히 적은 분량, 5%미만의 우주만을 밝혔을 따름이다. 궁극적 원인에 대해서는 현대 과학적 패러다임 하에서는 밝혀낼 도리가 없다. 도킨스(R Dawkins) 같은 무신론적 세속 철학자들은 그저 소박한 유물론적 확신을 갖고 있을 뿐이고 진화라는 생명의 파노라마를 협소한 자신의 기계적 유전자 가설 속에서 설명하고 싶을 따름이다. 오히려 도덕을 갖고 있고 미학적 감성과 의미 속에 있는 인간을 살피면 이 우주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하는 것이 이 우주를 이해하는 데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초의 순간을 본 자는 없다. 단지 우리는 그 세계를 과학을 통해 더 정교하게 이해할 뿐이다. 그 궁극적인 한계는 생명의 신비 곧 하나님의 신비와 접붙여있으며 그런 가운데 우리는 간접적으로 한계상황에서 계시는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서도 왜 우리들의 세상에는 슬픔과 고난 그리고 불행이 상존하고 불평등과 악이 횡행하는 것일까?
“마치 블랙홀을 직면한 우주인처럼,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모든 지성과 영성의 에너지들이 끝없는 질문과 회의의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갖게 된다. 이 질문은 예수님조차 피해갈 수 없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답변에서 우리는 힌트를 찾아야 한다.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고통스러운 현상에 대해 최후의 답변을 얻을 수 없다는 걸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인간이란 존재는 근본적으로 물질과 영혼으로 구성된 유한한 악한 존재이기에?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에? 위의 답변은 일정한 한도 내에서 유용하지만 근본적 대답이 될 수 없다. 사실 악의 존재와 불평등의 시련은 단지 그것이 극복될 때에만 그 존재의 이유와 과정, 그 목적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이 질문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이해할 때에만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모든 어두운 그림자의 이유를 객관적으로 탐구해 가는 것이 아니라 악과 고통, 불행과 불평등의 사회적 악을 발견하는 대로 그것을 극복하고 정복해가야 하는 당위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이 악의 답변이 되는 이유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이 세계에는 종교현상이 두드러진다. 종교의 다양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서둘러서 먼저 지적하고 주목하고 싶은 것은 종교란 분명히 인간을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삶의 형태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느 정도 종교적 존재이다. 종교성은 가장 심오하고 뿌리깊은 인간의 한 의미질서인 것이다. 그런 한에서 종교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세계의 종교들이 선한 가르침을 갖고 있으며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종교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지평에서 인류와 더불어 해 온 실체인 것이다. 종교는 의미있는 삶의 한 형식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종교들은 왜 다양하게 있는 것일까? 이러한 사실은 종교적 경건이 최후에 무엇을 목적하는지는 아직 완전하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서는 성서의 하나님만이 진실하신 하나님이라고 선포한다. 이는 기독교적 시각에서 볼 때 다른 종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성서의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게 해야 할 처지인 것을 보여준다. 이와 연관해서 명심해야 할 첫 번째 논제는 종교의 다양성의 문제가 구원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각 종교는 각 종교대로 자신들의 처지를 다해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공영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도록 간접적으로 쓰임을 받을 것이다. 그런 방식에서 각 종교 상호 간에 대화와 토론을 통해 혹은 쟁론과 논쟁을 통해 서로간의 회심의 사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다양성은 열려진 세계의 진술이고 각 종교 안에서 힘써서 새로운 답변을 얻어야 할 질문거리인 것이다.”
-영혼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현대인들이 영혼의 문제에 더 깊이 빠지게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주체성의 해체와 연관된 무수한 논의 때문에 일어난 것일 수 있다. 현대 정신분석학적 심리학을 따라 살펴보건대 본래 인간의 주체성은 아주 어려서부터 그가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그런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자신에 대한 의식을 형성하고 그것이 영혼의 문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는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반성가운에 처음으로 이미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즉 참다운 자기반성과 자기 인간성의 획득은 자기를 자폐적으로 검토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생겨난다는 것이 성서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가 인간의 정신적 현실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성을 반영하는 존재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성서가 주장하는 천국과 지옥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깊이 연관된 존재임을 설명하는 가장 구체적인 예인 것이다. 인간은 이 땅위에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이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