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제복 군인에 예우 남다른 미국인

 

[특파원 칼럼/최영해]제복 군인에 예우 남다른 미국인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미국 텍사스 주와 멕시코 국경지대에 바짝 붙어 있는 엘패소 시는 군사 도시다. 사막지대에 있는 이곳에는 탱크와 장갑차가 주력인 기갑사단이 주둔해 있어 유명한 포트블리스라는 군사기지가 있다. 기지 면적이 동부의 작은 주 로드아일랜드 전체 면적에 이를 만큼 넓다. 부대 내의 PX는 어지간한 일반 대형 쇼핑몰보다도 훨씬 크다.

2001년 9·11사태 후 포트블리스 기지를 통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 장병이 23만5000명에 이른다. 이달 들어 포트블리스에는 이라크 파병 병사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해 안에 이라크 완전 철수를 선언하면서 많은 병사가 이곳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자가 포트블리스를 찾은 12일 오후에도 귀환 장병을 기다리는 가족들로 군인 여객터미널은 붐볐다. 무엇보다도 눈을 사로잡은 것은 환영식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터미널 한쪽에서는 군인 가족들에게 팝콘을 튀겨 나눠주는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조카가 포트블리스 병사였다는 트레이시 매킨지 씨는 “나라에 봉사하는 군인과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조그만 정성”이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팝콘 진열대 뒤쪽 벽에는 ‘여러분의 헌신에 감사한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는 “장병들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날 때도 팝콘을 나눠줬다”며 “파병이 한창일 때는 하루에 1000명씩 포트블리스에서 전장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귀환 병사들을 위해 빵과 쿠키, 커피, 음료 등을 진열해 놓고 있는 빌 케처사이드 씨는 아버지가 퇴역군인이었다. 포트블리스에서 각종 행사 프로그램 매니저 일을 맡는 그는 짬을 내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 케처사이드 씨는 “군인 가족들을 돌보는 것은 내 일의 일부분”이라며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너무나 즐겁다”고 웃었다.

귀환 장병 환영 행사장엔 미국 적십자사 마크가 선명한 부스도 있었다. 여기서도 군인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스낵과 초콜릿 사탕 음료 등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던 리즈 오즈번 멘도사 씨는 “남아 있는 군인 가정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병사들에게 알려야 할 때가 가장 힘들다”며 “군인가정을 돌보는 일은 적십자사의 중요한 임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의 공통점은 봉사활동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제복을 입은 군인에 대한 예우는 남다르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이서영 국방무관은 최근 제복을 입고 출장을 가는 길에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식사를 하던 도중 한 미국인으로부터 경례를 받았다. 그가 이 국방무관에게 한 말은 “당신의 복무에 감사한다”는 것이었다. 군인이 있어 가정과 직장에서 편안히 일할 수 있다는 감사의 표시였다고 한다.

 

엘패소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군인들에게 감사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엘패소에서 댈러스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비즈니스석이 몇 좌석 비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스튜어디스가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던 한 여군 병사를 비즈니스석으로 옮겨줬다. 그는 “막 이라크에서 돌아온 군인이래.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 이들의 헌신에 비하면 비즈니스석은 정말 조그만 선물에 불과하지”라며 동료 스튜어디스에게 귓속말을 했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