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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란

Joyfule 2018. 6. 10. 01:25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란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이적과 기적과 어떤 종교적인 신비를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미혹에 목회자와 성도들이 걸려들게 됩니다.

미혹에 걸리면 단순하게 빠져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미혹에 한번 걸리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한번에 빠져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미혹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오해와 성령의 역사에 대한 오해는 단순한 오해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극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령님 역사에 대한 오해는

쓰러지고, 자빠지고, 예언, 온갖 은사들과 이적과 기적 등 종교적으로 보여주는 현상만을 가지고

믿음과 신앙의 잣대로 활용하면 미혹의 걸려들 확률은 100%입니다.
일단 미혹에 걸렸들면 자신은 절대로 미혹에 걸려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혹에 걸려들지 않고 미혹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서 있어야 미혹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주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하셨는지,

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는지, 등

수님에 관한 일들은 말씀을 통해 나타내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기억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에 역사에 대하여 온갖 종교적으로 나타내는

외적이고 자기 주관과 신비적 체험 위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기적과 예언을 시도 때도 없이 일으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성령을 부르며 자신과 회중의 입맛에 맞게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많은 사람들이 도처의 널려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일들을 하면서 자기 주관에 따라 성령을 오라가라하며

자신들의 욕심과 과시를 위해 이적과 기적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예수님 믿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과 육신의 법 두 사이에서 평생 갈등과 선택 가운데 지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육신에 법만 따르기 때문에 갈등과 선택은 없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욕망 따라만 살다가 멸망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하나님의 법과 육신의 법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갈등을 넘어 하나님의 법을 선택하여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믿으면 자신이

다시는 죄와 관계 없다고 생각하며 회개는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끝까지 수시로 해야 됩니다.
왜냐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고 아직도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육신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회개에 열매를 맺어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방법은 한가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 :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방법은 믿음으로 만 가능합니다.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지적인 동의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기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며 구원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성령의 신비한 역사만을 따라다니며 그런 것만 추구하는

자들은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기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분야에도 기본을 중요시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기본이 없는 사람은 올바른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 가시면서 한가지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일부 이단들은 보혜사 성령을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고 교주를 성령으로 믿고

따라가는 한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은 결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는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는 것은 내가 오시라고 해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보내주시는 선물입니다.

고린도후서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성령님이 또한 내 안에 오셔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성령님이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것은 실제적인

상황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게 되면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로마서 8 :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여러분 각자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 해방 시켜 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었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를 지은 우리 육신의 연약한 모습처럼 예수님을 그런

육신의 연약함을 입은 상태로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육신을 입은 상태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8 : 3. 육신이 연약하므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다 죄를 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육신에 전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어도 구원에 지장이 없나요 ?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여
우리가 이전에 행하던 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의 방식인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로마서 8 :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8 : 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지 않고 이전에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 간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죽음 가운데 거하는

사람요 그 사람 안에는 예수님의 새 생명이 없습니다.

오늘 날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비극입니다.

사람들이 육신적인 살인, 도둑질, 간음, 사기, 등의 죄만 지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그 자체도 지옥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을 따라

 

그 자체가 죄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죄는
겉으로 드러나는 도덕적인 죄보다
보이지 않는 생각으로 하는 그 죄가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8 : 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 안에 거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내가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육신의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지?

깊이 생각하면 자신이 어디에 속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자신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성령에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면 성령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확고하게 알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성경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가기를 원하십니까?

성경말씀을 보십시요!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란?

종교적인 신비주의가 하나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하나님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순종에 삶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 즉 성령의 음성에 전폭 적으로 순종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생각 모든 생각이 성령의 생각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편 1편에 말씀과 같이

"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삶이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어 때를 따라

성령님에 역사하심으로 더욱 깨닫게 하시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생각으로 가득한 지혜로운 삶을 사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 오직 예수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