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리더십 1.
이름 : 세종대왕
출생 : 1397년 4월 10일
사망 : 1450년 2월 17일
직업 : 국내 역사인물
경력 : 1443년 훈민정음창제
1441년 측우기제작
세종대왕이 어떤 식견을 가지고 어떻게 조직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무슨 고민을 했고 어떤 노력들을 기울였는가를 알아봄으로써,
우리는 젝 웰치나 빌 게이츠 같은 서양의 경영자가 아닌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을 가장 잘 경영했던 인물’에 대한 모범적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시대의 변혁을 꾀한 리더 세종대왕
위대한 인물들은 누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불멸하는 추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세종대왕이 가슴속에 품었던 의지를 ‘긍정적인(포지티브한) 허무’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그가 국초 국말의 권력쟁투와 무너져가는 인간사의 허무에서
발견한 것이 다름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이었고,
그것이 다시금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세종은 국초에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 태종에 의해
수많은 목숨을 희생되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해 세종의 심중에는 ‘적극적인 역사 개척보다는 허무에 기반을 둔
인간사와 인생에 대한 연민’이 자리잡게 되었으며,
바로 그것이 그가 역사를 이끌어간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종의 두 형들은 골치 아픈 왕의 자리에서 도망쳤다.
첫째 형은 미친 척했고, 둘째 형은 중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세종이 선택한 길은 노자의 도(道)인
‘대은(大隱)은 어시은(於市隱) : 깊게 은둔하는 것은
시끌벅적한 시장 속에서 세상사람과 동고동락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세종이 평생 실천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와
무실역행(務實力行: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은
또 다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으며,
말년에 지은 「월인천강지곡」에는 이러한 세종의 이상이 잘 녹아 있다.
세종은 무엇보다 시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면밀히 탐색했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뒤 인재 부족으로 인한 국정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인재수급과,
백성들의 새 왕조에 대한 기대에 부응해 민생고를 해결해 주어야만 했다.
세종은 태종의 죽음을 앞두고 이런 시대적 요구사항을 고민하며 준비해 나갔다.
“세종은 그 자신의 영달 때문에 권력을 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다.
피로 얼룩진 시대를 넘어 태평성대와 최고의 나라를 건설할 자신이
젊은 세종에게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형님인 효령이 출가하면서 세종에게 남긴
“현세의 미륵이 되어라”는 당부와도 무관하지 않다.
세종은 그러한 시대적 안목과 대의가 있었기에 뜻있는 선비들을 규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