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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리더십 3.

Joyfule 2007. 4. 4. 02:34


세종대왕의 리더십 3. 

   이름 : 세종대왕  
   출생 : 1397년 4월 10일 
   사망 : 1450년 2월 17일 
   직업 : 국내 역사인물 
   경력 : 1443년 훈민정음창제
            1441년 측우기제작 
2. 인재 발굴만이 개혁의 힘이다
세종이 인재를 선출하고 키우는 과정에는 유난히 배울 점이 많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세워도 재능있는 부하에게 관대하였고 
왕이라고 해서 일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결정을 내렸다.
 세종이 처음으로 자신보다 어린 신하를 뽑는 과거에서 
성삼문이 장원을 해서 임금 앞에 나섰다. 
세종이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하자, 성삼문은 
“어떤 배경인지만 하문하시니 적잖게 실망했습니다.”라며 직언을 올린다. 
이때 대전 내시가 “쉬이∼”하며 주의를 주자, 오히려 성삼문은 
“대전 내시 주제에 감히 신하가 임금에게 바른 말을 고하는데 중간에 
‘쉬이∼’하고 나서다니”하며 호통을 쳤으며, 
이에 세종은 
“앞으로 과인에게 직언으로 대하고 많이 도와달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성삼문은 이 일을 통해 ‘이러한 군왕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하겠노라.’고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전한다.
세종은 장영실을 등용하는 과정에서도 고리타분한 신분론에 대해 
일일이 반박해 신하들을 설복시켰고,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도 신하들의 반대 상소를 일일이 다 읽어가면서 논박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했다. 
왕의 신분에서 동서고금의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기에 
당시 세종의 학식을 따를만한 신하가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태종은 즉위 기간 동안 총 학술 경연이 4회였던 데 반해, 
세종은 총 1800회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았던 세종은 
작은 재능이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등 
그 사람의 장점을 취하여 포용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혹독하게 신하를 훈련시킨 강유(强柔)를 겸비한 임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