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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최인규 권사 (감리교)

Joyfule 2009. 8. 14. 00:35

순교자 최인규 권사 (감리교)

 

최인규 권사 (1891-1942)  

 

1881년 11월 15일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북평제일교회에 출석하면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속장, 유사, 권사로서 주일학교 교장으로도 봉사하였고

1932년 천곡교회를 권화선 속장과 함께 개척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예배를 인도하고 장로가 없는 교회에 장로 역활까지 했다. 또 자기의 전재산인 밭 539평과 논 1369평을 천곡교회 대지로 헌납하였으며, 자신이 직접 재목을 운반하는 등 초가 8칸의 예배당 건축에 헌시하여

1933년 봉헌식을 가질수 있었다. 강대상 3개도 만들어 옥계, 천곡, 북평교회에 기증하였다. 이와 같은 헌신적인 신앙생활로 감리교 총리원 이사회에서 선정한 모범신자에 선정되어

1938년 10월 포창을 받았다. 최인규는 창씨개명과 일어사용, 황국식민서사를 거부하는 민족주의자였고 철저한 신앙의 소유자로 일제의 억압된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40년 5월 일경에 체포되어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이라고 기뻐하였다. 함흥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그는 재판관 앞에서도 담대히 신앙을 증거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일본 천황도 하나님이 내신 사람으로 지인에 불과하다고 담대히 말하기도 했다. 이 일로 인해 징역2년의 실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감옥에서도 늘 기쁘게 찬송부르며 전도하다가

1941년 10월 주로 항일투사, 사상법들이 수용되어 있던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가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병을 얻어 갇힌지 3년이 되던

1942년 12월 16일 대전형무소에서 순교하였다. "형제 여러분 믿음위에 굳게 서서 주의 일 하시오. 나중 천국에서 우리 만납시다" 그가 남긴 유언이었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는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해방 후

1946년 3월 유골을 천곡교회로 옮겼고 12월 16일에는 수교 44주기를 맞아 기독교대한감리회 동해지방에서 정성을 모아 순교비를 건립했다. 순교한지 40년이 되던 1982년 8월 최인규 권사가 섬기던 천곡교회 마당에 선교탑이 세워졌다.  

(글 출처- http://kcmm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