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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 스윙의 바람이 몰려온다

Joyfule 2008. 4. 16. 02:02

 

스윙, 스윙의 바람이 몰려온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몸치도 함께, 레츠 스윙!

한겨레 김은형 기자
» 몸치도 함께, 레츠 스윙!
저와 한 곡 추실래요?

손을 빼는 이유는 뭔가요? 춤을 못춘다고요? 몸이 맘같지 않다고요? 쑥스럽고 어색하다고요?

제 손을 잡고 따라 와 보세요. 발을 움직여 보세요. 뾰족한 구두는 필요없습니다. 원, 투, 스리 앤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앤 에잇. 원, 투, 스리 앤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앤 에잇. 여덟 카운트를 세면서 가볍게 움직인 스텝을 통해 당신은 지금 스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스윙은 사교춤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사교춤은 야하고, 끈적거려서 민망하다고요? 반만 알고 반은 모르시는 군요. 스윙을 춘다고 골반을 옆으로 뺄 필요는 없습니다. 파트너에게 체중을 실을 필요도 없습니다. 가슴과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는 더더욱 필요 없지요. 운동화에 청바지면 워크숍에서도 바에서도 파티에서도 충분합니다.

 

그럼 이 단순한 스텝이 전부냐고요? 그럴 리가요. 스텝이 익숙해지면 일단 그 속도를 높일 수 있고, 그 안에서 발차기도 할 수 있으며, 공중을 붕 날 수도 있답니다. 30~40년대 미국 땅을 뒤흔들었던 젊은이들의 스윙 춤을 보면 어찌나 빠른지 발의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지요.

» 몸치도 함께, 레츠 스윙!

힘들어서 못출 것 같다고요? 몸치라고요? 스윙댄스가 맞출 수 있는 음악의 영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습니다.

 

아주 느린 블루스에서 신나는 빅밴드의 스윙재즈,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 장윤정의 ‘이따이따요’까지 ‘짝쿵, 짝쿵’식으로 뒷부분에 강세가 오는 4박자 리듬의 음악이라면 어디에든 맞춰 출 수 있습니다. 물론 스윙댄스 안에서도 원하는 대로 골라서 출 수 있습니다. 스윙댄스의 가장 진화된 방식이라고 불리는 린디홉은 지금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스윙어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고요, 파트너와 좀더 로맨틱한 가까움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스텝을 원한다면 발보아를 추면 됩니다. 더 단순하고 쉬운 걸 원한다면 6카운트의 지터벅을 추천합니다.

 

고전전인 스윙댄스를 추고 싶다면 중고등학교 시절 무용 시간에도 가끔 등장했던 찰스턴에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단 찰스턴을 출 때는 흥겹더라도 너무 세게 스텝을 밟지는 마세요. 1925년 보스턴의 한 댄스홀은 찰스턴을 추는 사람들의 힘이 너무 넘쳐 그만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 클럽 간판에는 “찰스턴을 조용하게 춰 주세요”란 말이 더해졌답니다.

 

이번 봄, 화끈하게 춤바람 한번 나 봅시다. 열정적인 한국의 많은 스윙어들과 함께 진달래, 벚꽃 핀 공원과 거리에서 봄바람 맞으며 춤바람을 일으켜 봅시다. 누군가의 말대로 걸을 수 있다면 스윙을 출 수 있습니다. 몸치인 당신, 수줍음을 벗어버리고 레츠, 댄스!

모델 박지은, 노해창



» 지난 4일에서 6일까지 서울 남산 뮤지컬하우스에서 열린 스윙댄스 워크숍과 파티 ‘코리아 린디홉 레볼루션(KLR) 2008’. 300여 명이 스윙어들이 모여 춤실력을 자랑했다.
사랑스럽고 재치있는 8스텝… 추기 쉽고 음악 다양해 1920년대 이후 뜨겁게 부활

7인조 브라스 밴드의 스윙 리듬이 부드럽게 출렁이더니 튕기듯 점점 빨라진다. 8카운트의 스텝은 자유자재로 바닥을 훑고 남자의 무릎은 고무줄처럼 탄력 있게 굽혀졌다 펴진다. 남자와 잡고 있던 손이 펴지면서 빙글빙글 도는 여자의 몸을 따라 나풀나풀한 치마가 나팔꽃처럼 펼쳐진다.

 

뛰고, 돌고,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남녀 100여명으로 가득 찬 댄스홀은 날아다니는 스텝과 그 스텝을 타고 흐르는 그루브와 춤꾼들의 땀방울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 1930년대 경성을 주름잡았던 ‘광란아들의 소천국’이 이랬을까. 2008년 4월 서울의 남산 아래서 펼쳐진 코리아 린디홉 레볼루션(Korea Lindihop Revolution: KLR)에 모인 남녀들의 열광적인 스윙 파티는 30년대 모던보이, 모던걸들의 드라마틱한 귀환을 보는 듯 복고적이면서 흥겹고, 이국적이면서 유쾌한 풍경을 자아낸다.

 

» 지난 4일에서 6일까지 서울 남산 뮤지컬하우스에서 열린 스윙댄스 워크숍과 파티 ‘코리아 린디홉 레볼루션(KLR) 2008’. 300여 명이 스윙어들이 모여 춤실력을 자랑했다.
인터넷 공모 반나절만에 300여명 몰려

스윙 댄스는 20세기 이래로 가장 먼저 꽃피웠고, 가장 나중에 부활한 춤이다. 20년대에 빅밴드의 흥겨운 스윙 재즈와 함께 탄생한 스윙 댄스는 40년대까지 전세계를 휩쓸고 2차 대전과 함께 사라졌다가 8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나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에서는 카페와 요릿집, 가정집을 가리지 않으며 축음기의 ‘짜스’에 맞춰 ‘딴스’에 미쳤던 당시 젊은이들이 모습이 적혀 있다.

 

그러나 70~80년대부터 ‘사교춤’ ‘댄스홀’ 등의 단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면서 음지의 춤으로 전락했다가 90년대 이후 ‘댄스 스포츠’라는 깔끔한 단어가 등장하면서 남녀가 짝을 맞춰 추는 춤들이 복권됐다. 그중에서도 스윙 댄스는 댄스 스포츠가 자리잡고 살사 댄스가 장안을 한바탕 뒤흔든 다음에야 비로소 뭔가 더 새롭고 더 즐거운 춤을 찾아 헤매던 선남선녀들에 의해 가장 최근에 뜨거운 붐을 일으키고 있다.

 

부활한 스윙 댄스의 꽃이라고 할 린디홉의 축제인 케이엘아르를 만든 스윙어 홍민식(35)씨는 “인터넷으로 모집한 지 반나절 만에 300명 이상 몰려들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마감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외국의 스타 댄서를 초빙해 워크숍과 파티를 2박3일 동안 진행한 이 축제에는 스윙 댄스 동호회에서도 ‘난다 긴다’ 하는 실력 있는 춤꾼들이 모여 8스텝의 장관을 만들어냈다.

 

» 지난 4일에서 6일까지 서울 남산 뮤지컬하우스에서 열린 스윙댄스 워크숍과 파티 ‘코리아 린디홉 레볼루션(KLR) 2008’. 300여 명이 스윙어들이 모여 춤실력을 자랑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에 다시 보급되기 시작한 스윙 댄스의 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건 작년부터다. 드라마 <경성 스캔들>을 비롯해 영화 <라듸오 데이즈>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이 경쾌한 스윙의 시대를 재현하면서 관심을 촉발했다. <경성 스캔들>에서 경성 한량 선우환(강지환)과 우아한 기생 차송주(한고은)의 화려한 스윙 댄스를 안무했던 유정창(활동명 넝클)씨는 “음악적으로나 춤 동작 자체로도 다른 춤보다 접근이 쉬운 게 스윙 댄스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유씨뿐 아니라 많은 스윙어들이 스윙 댄스의 매력을 음악으로 꼽는다.

 

아닌 게 아니라 스윙 바에 가면 요즘 유행인 ‘빈티지’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는 20~30년대 발랄한 스윙 재즈 곡뿐 아니라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 인기 가요, 티브이에서 듣던 광고음악까지 음악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8박자의 스윙감만 있으면 사실상 모든 곡에 춤을 출 수 있거니와, 90년대 음악적으로 부활한 네오스윙은 전통적인 스윙 재즈뿐 아니라 50년대 로큰롤, 90년대의 스카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혼합했기 때문이다.

 

또하나의 장점은 쉽게 배운다는 점이다. 물론 5~6년씩 스윙을 춘 사람들의 발놀림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지만 지터버그같이 비교적 쉬운 스윙 댄스는 몇 시간만 배워도 웬만큼 파트너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또 “댄스 스포츠가 팀을 이뤄 곡에 맞춰 춤을 완성해 선보이는 데 비중을 두는 무도회 문화에 속한다면 스윙은 춤추는 것 자체를 즐기는 바 문화에 가깝다”는 게 유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스윙 댄스는 댄스 스포츠처럼 규정이 많지 않고 권위 있는 대회도 별로 없는 대신 거리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열린 스윙(게릴라 스윙) 등의 깜짝 이벤트를 자주 벌인다.

 

» 지난 4일에서 6일까지 서울 남산 뮤지컬하우스에서 열린 스윙댄스 워크숍과 파티 ‘코리아 린디홉 레볼루션(KLR) 2008’. 300여 명이 스윙어들이 모여 춤실력을 자랑했다.
무도회 문화보다는 바 문화에 가까워

구경꾼 자리에서 보면 스윙 댄스는 멋있다기보다 재치 있고 사랑스럽다. 탱고나 살사처럼 ‘각이 잡혀’ 있지 않은 대신 그 흥겨움은 보는 사람의 발을 들썩이게 한다. 스윙어들은 이것을 ‘자유로움’이라고 말한다. 4년차 스윙어 박지은(29)씨는 “안무를 짜지 않아도 파트너를 바꿔가며 같이 출 수 있고, 둘이서 추다가 혼자 추기도 하며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한다. 원하는 만큼 스텝을 훈련하고 원하는 만큼 제멋대로 추며 또 원하는 만큼 손을 잡았다가 원하는 만큼 혼자서도 놀 수 있어, 스윙 댄스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들어맞는 ‘사교춤’으로 부상하며 “섈 위 댄스?”라고 부드러운 손을 내민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직장생활을 하며 개인적으로 KLR 행사를 준비할 만큼 스윙댄스에 대한 애정이 많은 홍민식(왼쪽)씨와 최나영씨.


스윙댄스의 숨은 역사

린디홉, 지루박, 나혜석…

전세계 스윙어들에게 전설로 회자되는 이름이 두 개 있다. 사보이 볼룸과 프랭키 매닝이다. 사보이 볼룸은 스윙댄스의 황금기 때 발바닥에 불난 미국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던 뉴욕 할렘의 댄스홀이다. 초창기 스윙댄스인 찰스턴이 진화된 형태이면서 스윙댄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린디홉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26년 문을 연 이 댄스홀에는 한번에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유명했고 여기서 연일 벌어지던 댄스 대회에서는 새로운 춤 기술이 등장했다. 린디홉이라는 이름은 당시 세계적인 뉴스가 된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을 기념하며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키 매닝은 이곳의 댄스 컨테스트 중 하늘을 나는 동작인 에어리얼이라는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이며 린디홉의 아버지로 꼽히게 됐다. 당시 매닝을 비롯한 실력자들의 스텝은 요즘의 스윙 챔피언들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던 것으로 전해 온다. 그래서 백인들이 좀더 쉬운 스윙댄스를 추기 위해 개발한 게 일본과 한국에서 ‘지루박’이라는 춤으로 변형된 6카운트의 지터벅이다. 린디홉은 듀크 엘링턴, 베니굿맨 등 스윙 재즈의 거장들과 함께 40년대에 정점에 이르러, 43년 <라이프>지는 린디홉을 추는 커플을 표지로 실으면서 이 춤을 ‘국민 댄스’로 명명했다.

 

그러나 2차대전으로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고 돌아온 뒤에는 로큰롤에 빠져들면서 스윙댄스는 빠르게 쇠락했다. 거의 잊혀졌다시피 했던 이 춤이 80년대 극적으로 부활한 사건은 유명하다. 젊은 춤꾼 커플이 린디홉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프랭키 매닝의 가공할 춤 실력에 놀라 뉴욕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그 이름을 찾아냈다. 전화를 걸어 옛날에 춤추던 분이냐고 묻자 80대 노인이 “오래전에 추기는 했소만”이라고 대답을 하면서 초야에 묻혀 있던 프랭키 매닝이 재발견됐고, 매닝의 지도로 호기심 많은 춤꾼들이 다시 린디홉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82년부터 허랭 댄스 캠프라는 세계적 규모의 스윙 축제를 열기 시작했고 90년대에는 빅 배드 부두 대디, 스쿼럴 넛 지퍼스, 브라이언 세처 등의 뮤지션들이 스윙 재즈를 현대적으로 도입한 곡들을 발표하면서 ‘스윙 리바이벌’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98년 스윙 댄서들을 등장시킨 의류 브랜드 <갭> 광고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마스크> 등 많은 대중영화에서 스윙댄스를 등장시킨 것도 스윙의 부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는 99년 12월, 당시 유학생이던 나혜석(현재 미국 거주)씨가 보라매 공원에서 무료 스윙 강습을 했던 게 스윙 부활의 첫 장면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동호회들이 빠르게 늘어났고 박진영의 ‘스윙 베이비’ 등 외국의 스윙 바람을 가져온 대중음악들도 간간이 나왔다.

김은형 기자 http://cafe212.daum.net/_c21_/bbs_list?grpid=11qTR&mgrpid=&fldid=7Bm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