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지도자
1.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로마의 감독. 삼일성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은혜에 의한 의롭게 됨과, 교회의 합일에 관한 분명한 간증을 짊어졌다.
2. 이그나티우스(Ignatius)
안디옥의 감독. 그의 일곱 서신-에베소인들에게, 마그네시아인들에게, 트랄레스인들에게, 로마인들에게,
빌라델비아인들에게, 서머나인들에게, 폴리캅에게-은 초기 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결국 로마의 군병들에 의해 호송되어 순교당하였다.
그는 순교 시에 핍박자들에게 "나를 짐승들에게 던져주시오.
그것들에 의해 나로 하나님의 동참자가 되게 해 주시오"라고 간청하였다.
3. 폴리캅(Polycarp)(주후 약 69-155)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 후에 서머나의 감독이 되었다.
그의 저작들에는 성경적 구절들이 자주 인용되었고 이단적인 그노시스 주의자 마르시온을 대항하여 싸웠으며
그를 '사탄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
86세의 연로한 나이로 순교하였다.
4. 이레니우스(Irenaeus)이레니우스(주후 약 130-202)
폴리캅의 제자이며 리용의 감독이었다.
『모든 이단들을 반대하여(Against All Heresies)』를 기록하여 그노시스주의와 다른 이단들을 반대하였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분 안에서 첫 아담이 상실한 것을 회복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셨다고 앞서서 주장하였고 명쾌하게도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고 말하였다.
5. 히폴리투스(Hippolytus) 히폴리투스(주후 160-235)
이레니우스의 제자이며 뛰어난 변증가였다.
『모든 이단들을 논박함(Reputation of All Heresises)』이라는 그의 저작에서 사벨리우스의 이단적인 관점을 격렬하게 반박하였다.
그의 또 다른 저작 『사도적인 전통(Apostolic Tradition)』에서는 순수한 믿음과 사도적인 가르침을 보존하려고 애썼다.
6. 터툴리안(Tertullian) 터툴리안(주후 약 160-225)
아프리카인 교부. 이레니우스에 교리적 기원을 둔 저명한 변증가.
자신의 변증문 『파락세아스를 반대하여(Against Paraxeas)』에서 삼일 하나님의 한 본질과 세 위격들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였는데, 이는 후에 니케아 신조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노시스주의(마르시온의 교리)와 도세티즘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로마 정권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변호하였다.]
7. 판타에누스(Pantaenus) (주후 120-190)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창시자이며 교리문답 학교의 교장이었다.
8.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주후 약 155-215)
아테네에서 출생하였다.
판타에누스의 제자이며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교사가 되었다.
'로고스', 즉 육체가 되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강조하여 강해하였다.
9. 오리겐(Origen)(주후 약 185-254)
이집트에서 출생하였다. 클레멘트를 승계하여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교리문답 학교의 교장이 된 창의력이 풍부한 작가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 중 하나인 『헥사플라(Hexapla)』는 히브리어 구약과 더불어
아퀼라역, 심마쿠스역, 70인역, 테오도시온역 등 헬라어로 된 구약에 다양한 주해를 달아 놓은 것이다.
영원한 복음의 능력을 생활 가운데 체험한 자들로 구성된, 교회의 하늘에 속한
본성을 보았고 『우리의 기도』에서 기도는 단지 '간구'가 아닌 '하나님의 생명에의 참여'라고 주장하였다.
10.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주후 296-373)
주후 325년 니케아 신조의 체계화에 공헌하였다.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고 아리안주의를 대항했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수호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On the Incarnation of the Word of God)』에서
그는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되게 하려하심"이라고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11. 카파도키아 교사들(The Cappadocian Teachers)
삼일성을 '세 위격들(hypostases) 안에 있는 한 본질(ousia)'이라고 강해하였다.
12. 카파도키아 교사들 - 대 바실(Basil the Great)(주후 약 329-379)
가이사랴의 감독. 수도원주의에 영향을 받아 단순한 생활을 주장하였다.
오리겐의 사상에 관하여 탁월하여 아리안주의를 반박하였다.
니케아의 교리들을 지지하였다.
13. 카파도키아 교사들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주후 약 330-390)
바실의 친동생. 닛싸의 감독. 삼일성의 본질(ousia)과 위격(hypostasis)을 구분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14. 카파도키아 교사들 -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주후 약 330-394)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능변한 연설가.
그의 가장 훌륭한 저작은 아리안주의를 반박한 다섯 편의 『신학적인 강변(Theological Addresses)』이다.
15. 암브로우스(Ambrose)(주후 약 337-397)
어거스틴을 침례 준 밀란의 감독. 교회는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립해야 한다고 지지하였다.
"황제는 교회 안에 있지, 교회 위에 있지 않다"고 선언하였다.
16. 제롬(Jerome)(주후 약 340-419)
이탈리아에서 출생하여 후에 팔레스틴으로 이주하였다. 자신의 온 일생을 수도원 생활에 드렸으며
믿는이들이 금욕적인 생활을 살도록 격려하였다.
성경을 라틴어 불가타역(Vulgate)으로 번역하는데 20여 년을 드렸고,
구약, 신약, 교회사에 대한 여러 권의 주석서를 기록하였다.
17. 크리소스톰(Chrysostom)(주후 346-407)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강조하였다.
그의 설교들은 성경의 해석을 장려하는 것이었으며 실행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수도원 생활을 숭상했고, 그의 저작들은 신선함과 간결함을 간직하였으며, 순교하였다.
18. 어거스틴(Augustine)(주후 354-430)
북아프리카 히포의 감독. 교회의 합일에 관하여 열성적임. 펠라기우스의 이단을 논박함.
『참회록』, 『하나님의 도성』, 『삼일성(De Trinitate)』을 기록하였고,
마지막 저작에서 그는 삼일성에 대한 진리를 강해하여 서구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3.(암흑시대)
1.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주후 480-550)
청년기에 로마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 도시의 타락한 생활을 몹시 싫어하여
결국은 은둔자로서 살기 위해 동굴에 은거하였다.
12개의 작은 수도원 공동체를 세웠고 수도 생활의 규칙을 다시 제정하였고
"서방 수도원의 주교(Patriarch of Western Monastery)"로 존경을 받았다
2. 바울파(Paulicians)
소아시아와 아르메니아에 있는 믿는이들의 무리들로서 스스로를 사도적인 교회의 진정한 영적 후계자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을 로마 교회와 구별하였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경적인 교리들을 지킴으로서 주님을 따랐으며.
신약의 정수를 열정적으로 지켰으며 전수하였다.
주요 인물들 중에는 실루아노(Silvanus; 주후 630-684)와 세르기우스(Sergius; 주후 765-835)가 포함되어 있다.
3. 보고밀파(Bogomils)
8세기 중엽에, 많은 믿는이들이 콘스탄티 노플로 이동하였다.
10세기에는 불가리아로 이주한 믿는이들도 있었다.
이 이주자들이 회심하여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주도적인 인물들 중의 하나가 바실(Basil)이며(주후 1070-1119), 그는 전파와 가르침에 있어서 지치지 않는 사람으로서, 자비량 하여 이방인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을 것을 주창하였다.
그는 의사로 일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였다.
4. 알비파(Albigenses)
프랑스 남부에서 살던 믿는이들의 회중. 로마 교회와의 불일치 가운데서 자신들의 모임을 형성하였다.
순수하고 경건한 삶의 방식을 주창하였다.
가장 특출한 인물은 피에르 드 브루에이스(Pierre de Brueyes)로서, 20년 동안의 여행과 전파 기간 동안에
그는 많은 사람들을 미신으로부터 성경의 가르침으로 이끌어왔고 믿는이들의 침례에 관한 진리를 회복하였다.
5. 왈도파(Waldenses)
사도 바울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알파인 계곡으로 이동했던 널리 알려진 믿는이들의 회중. 사도 시대 교회의 내용을 준수하였다.
성경을 믿는이들의 교리와 교회의 질서 면에서 구속력을 가진 것으로 여겼다.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는 피터 왈도(Peter Waldo; 주후 1140-1217)가 있는데,
그는 복음화를 위하여 믿는이들을 둘 씩 보내는 실행을 회복했으며,
성경을 로마의 방언으로 번역하였다. 그의 수년간의 수고로 보헤미아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다.
추종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그들 중의 대부분은 자신들을 드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보헤미아를 거쳐 여행하며 전파했다.
6. 앗씨스의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주후 1182-1226)
원래 부자의 아들이었다. 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고
자원하여 가난한 생활을 실행했고 자원하는 가난의 길을 회복하였다.
복음화를 위해 프란체스크 수도회 체계를 설립하였다.
7.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주후 1225-1274)
박식한 학자이며 다작(多作)의 저자이다. 중세의 으뜸가는 스콜라 철학자이며,
그의 『Summa Theologica』는 조직 신학의 가장 높은 업적물로 존중되고 있다.
8. 존 휘클리프(John Wycliff)주후 1329-1384)
영국의 종교개혁자들인 "롤라드파(Lollards)" 중에서 두드러진 인물이다.
그의 논문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 종교의 진정한 원천"이며 "성경만이 진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경을 준수하는 자들만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믿는이들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통을 가질 수 있다고 주창했으며,
따라서 니골라당의 독점적인 권위를 부인하였다.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영국 전역에 성경의 가르침을 확산하기 위해 전도 여행단을 조직하였다.
9. 프라하의 제롬(Jerome of Prague)(주후 약 1371-1416)
영국에서 휘클리프의 강의를 듣고 그의 영향을 받은 유학생이다.
프라하로 돌아가서, 구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복음의 가르침으로 돌아와야 하며,
로마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났다고 가르쳤고 순교하였다.
10. 존 후스(John Hus)(주후 1373-1415)
프라하의 제롬의 영향을 받아서, 구원은 율법의 행위를 떠나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에 의한 것이고,
사람은 경건한 생활이 없이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권고하였다.
순교 당하였고 집행되기 전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나는 '사람들이 너희를 핍박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크게 위로를 얻는다…
이는 좋은, 아니 가장 좋은 안부이다…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았다."
11. 공동생활을 한 형제단(Brethren of Common Life)
네덜란드에서 구루테(Gerard Groote; 주후 1340-1384)와 뤼스부로에크(Jan van Ruysbroeck; 주후 1293-1381)에 의해 설립되었다.
구루테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수도생활과 신비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후에는 '공동 생활의 수도원'을 설립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복음화에 종사하였고 가난하지만 의연한 청년들이 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 조직망을 설립했으며,
그 당시의 사회를 위해 성경에 근거한 건전한 교육을 제공하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인 토마스 아켐피스와 에라스무스가 이 학교의 학생이었다.
성경을 인쇄하고 찬송가를 출판하였고. 종교개혁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2. 토마스 아 캠퍼스(Thomas a Kempis)(주후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의 저자로 이다.
기도 생활만이 생명의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다.
하나님과의 교통과 생활에서의 실행을 조화시켰다.
믿는이들이 십자가의 길을 참되게 알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피도록 도움을 주었고 그의 책은 신비주의의 고전이다.
13. 에라스무스(Erasmus)(주후 약 1466-1536)
각주와 부연이 딸린 새 라틴어 번역이 있는 헬라어 성경을 출판함으로써 믿는이들로 하여금
신성한 계시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로마 교회 안에서의 개혁의 조류를 촉진시켰다.
14. 연합 형제단(United Brethern)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 교회의 원칙을 재고하였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바대로 거룩한 생활에 강조점을 두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를 역설하였고,
글과 찬송을 많이 남겼다.
진리 교육에 관한 진리, 특별히 믿음에 의한 구원에 관한 진리에 강조점을 두었다.
가장 주된 인물은 프라하의 루카스(Lukas of Prague; 주후 ?-1528)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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