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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두라 유로포스(Dura Europos, Tell Der)

Joyfule 2015. 11. 2. 08:55

 

 

시리아 두라 유로포스(Dura Europos, Tell Der)

 

두라 유로포스 (Dura Europos)  


두라(Dura·단 3:1)의 위치에 대해 제기되는 장소들 가운데는 두라 유로포스(Dura Europos)와 하볼, 유프라테스강이 만나는 바벨론 남쪽 툴룰두라(Tulul Dura)가 있는데 아마 텔 데르(Tell Der)를 말하는 것 같다. 텔 데르는 바벨론 남쪽 9.6㎞,바그다드 남서쪽으로 27㎞ 떨어진 곳이다. 두루라고 불리는 바벨론식 이름의 지역들이 있는데 두라라는 말은 바벨론어로는 벽(wall),아카드어로는 ‘경계선으로 둘러싸인 부분’ ‘벽으로 둘러싸인 곳’을 의미한다. 두라 유로포스는 오늘날 시리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찾으려면 다메섹에서 북부 시리아 사막을 동서로 횡단한 후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두라 유로포스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신상을 세웠던 곳으로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두라(단 3:1)로 언급된다. 이곳은 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막료 셀레오쿠스 1세에 의해 전형적인 그리스 도시로 건설됐다. 그러나 기원전 256년 야밤에 지하터널을 뚫고 급습한 페르시아(성경의 바사)군의 공격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었고 그후 이 도시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글 출처-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국민일보 생활/문화 | 2005.07.25  

 

 

두라 유로포스 (Dura Europos)           (출처- http://search.daum.net/search?nil_Dura+Europos,+Tell+Der)

 

두라 유로포스 유적지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두라는 BC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부국으로 그 시절에 이미 주석으로 도구를 만들어 썼고, 관개 영농기술을 알았던 문명국이었다. 짐리 림(Zimri-Rim) 왕궁은 이 나라가 가장 번성했던 기원전 18세기 작품으로 두 개의 커다란 정원을 둘러싸고 3백 개의 방과 신전, 도서관, 창고, 목욕탕, 내전이 거미줄처럼 얽힌 미로식 궁전으로, 당시에도 세계의 불가사의로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었다. 방마다 갖가지 조각상과 강렬한 채색 벽화가 가득했었고, 창고에는 곡식과 보물이 넘쳤으며, 도서관에는 수만 개의 점토판 문서로 채워져 있었다. 마리의 부는 필연적으로 잦은 외침을 피할 수 없었다. 주변국들의 침략과 약탈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마리는 결국 기원전 1758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대왕에게 손을 들었고, 천년왕국의 영화는 흙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마리가 역사의 수면으로 떠오른 건 20세기 초. 당시 시리아를 지배하던 프랑스에 의해 수천 년 묵은 흙더미들이 조심스레 걷어졌다. 수많은 유물들이 햇빛을 보게 됐고,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최초의 가정교회 유적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두라에는 특별한 유적은 없고 초기 교회와 회당터만이 있고 나머지는 아직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정교회 구조 

 

회당 터  

 

바로의 공주에게 구조되는 모세 성화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출애굽과 모세

 

금송아지 숭배 성화  

 

성화

 

그리스어 인장 

 

마리에서 출토된 신관상    (출처- http://blog.naver.com/birwahid)


메소포타미아의 신관은 왕족 혹은 고위 귀족이었다. 입고 있는 타조 깃털 스커트는 당시에 유행했던 남자 의상. 시리아 국립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