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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고향 - 하란

Joyfule 2006. 6. 28. 14:12

하란 민속촌

 


하란 성

 


하란 민속 흙집

 


하란 성 터

 


하란 성 유적

 

하란


현재명은 하란이다. 하란이라는 지명은 히브리어 '마른'이나 아카드어 '도로'라는데서 유래하였다. 하란은 '밧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하는데 (창 48:7) 하란과 같은 '도로'라는 의미이다. 리브가가 있었던 '나홀의 성'은 현재의 셀루기(Seruj)로 하란에서 서쪽으로 55km떨어진 틸나히리(Til-Nachiri)로 추정된다. 유브라데강스의 지류인 벨릭(Belik)강변에 위치하여 아브라함이 떠나온 우르와는 940km 정도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동서를 잇는 대상(隊商)로였다. 주전 18/9세기, 갑바도기아 문서(Kultepe texts)의 앗시리아 상인의 사업편지와 법적인 문서에 하란은 당시 중요한 교차로였다고 기록되어있다. 하란의 에훌훌(E-HULHUL)라 불리는 신전은 메소포타미아의 달신, 신(Sin)을 섬기는 중심지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이 하란 주변에 살던 셈족속이아니라 유랑하는 아람족속임을 고백한다(신 26:5).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란 땅을 자신의 고향이라 부른다(창 24:4). 갑바도기아 서판, 마리문서, 함무라비 법조문등을 보면 아브라함때 하란은 후리아인(Hurrian)과 아모리인들의 요소가 수메르-아카드인 기초하에 혼합된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함무라비때(주전 1728-1686)는 하란은 아모리 왕 앗디타킴(Asdi-takim)하에 있었다. 마리문서에의하면 하란의 뫙들과 잘마쿰(Zalmaqum)의 왕들, 베냐민족의 족장들과 장로들이 라란의 달신전에서 조약을 제결했다고한다. 아닷니라리 1세(주전 1307-1257)는 하란에 망대를 세웠고 디글랏빌레셀 1세(주전 1115-1077)는 달신전을 꾸몄다. 하란은 왕하 19:12와 사 37:12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히스기야 왕에게 보내는 편지가운데 언급된 것같이 -"내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 . .", 앗수르왕 앗술단(Asshur-dan) 3세에의하여 주전 763년 멸망하였다. 이 도시는 사르곤 2세(주전 721-705)에의하여 재건되었고 엘삿핫돈(605)에의하여 신전이 수리되었다. 하란은 바벨론에의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었을 때 3년간 앗수르의 수도역할을 하다가 주전 609년에 함락되었다. 바벨론은 달신전을 재건하였고 그 제사장으로 나보니두스(Nabonidus)의 어머니를 임명하였다. 에스겔서에 두로와 함께 하란은 유명한 상업도시라고 말한다. 그리스와 로마에는 칼래(Carrhai)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