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는 희뿌옇게 다가오고 있다.
마치 솜사탕 속에 파묻힌 듯 나는 지척을 알 수 없는
심연(深淵)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비온 날 새벽을 나는 발끝의 촉감 하나에 의지 한채 포근한 아침을 맞고 있다.
내 뒤안 길도 이렇듯 희뿌옇게 지나갔다.
바람이 불어와 주기를 기대도 해 보고 무지개가 뜨기를
학수고대해보기도 하였었지만.......
연수 생활 중 상반기를 결산하는 시험을 6월말에 보기 때문에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운전대를 잡는다.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연수원은
도심을 지나고 경인고속도로를 지나야 갈수 있다.
안개로 인하여 차들이 거북이가 되었고 나는 안갯속의 긴장상태를 즐긴다.
빨간색 자동차 후미등이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진다.
안개는 고속 주행하는 운전자들에게 있어 가장 주의해야 할 대상이다.
어머니 젖가슴처럼 포근해 보이는 도심이나 고속도로의 안개 속에는
마귀(魔鬼)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안개를 좋아한다.
내가 군대 생활을 할 때 아침 6시면 기상하여
중대원 전원이 구보(驅步)로 강가를 달렸다.
폐부(肺腑)에 가득 상쾌하고 차가운 아침 안개가 들어차면 날듯이 기분이 좋았다.
몸이 허약했던 나는 산 좋고 물 맑은 경북 봉화에서의 군 생활이
건강을 찾게 해 주었다.
산봉우리마다 뽀얀 안개로 된 옷을 입고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푸른 속살을 보여주는 고봉준령(高峰峻嶺)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그 자체였다.
그때 보았던 도원경(桃源境)의 장관은 군대를 제대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싱싱하다.
산촌의 해가 서산 봉우리에 걸터앉아 있을 때면 산 아래 마을들은
강에서 올라 온 물보라나 물안개 속에 어렴풋이 숨어 있다.
저녁에 보는 산촌의 모습은 울컥 향수(鄕愁)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석양노을 아래로 북녘을 향하는 기러기 떼를 보면
그만 어머니 생각에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자위가 짓무르기도 했다.
요즘 내가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속을 거닐어 보면
진한 콜타르 냄새가 배어있어 싱그러운 맛을 느낄 수 없다.
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도심의 끈적거리는 알코올 냄새와 자동차 소리, 역한 아스팔트 냄새가 싫어
지루한 일상에서 일탈의 기회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사바(裟婆)의 번뇌로 가득 채워진 머릿속을
산바람이나 산안개로 한번 씻어 내면 일주일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순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하고 장터목산장을 향해 내려 올 때
산 아래 계곡에서 불어오는 하얀 바람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내가 안개 속에 묻혀 산안개가 되었고, 바람이 되었으며, 산새가 되었다.
머리, 눈썹은 하얗게 변해 산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는 너무 황홀해 갈 길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아 나를 잊고,
세상을 잊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조차 잊었었다.
서녘으로 몸을 숨기려는 해가 안개 속에서 잘 익은 홍시(紅枾)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옆에 계셨다면 한 마리 까치가 되어 비상(飛翔)하여
그 홍시 하나 따서 망구(望九)의 어머님에게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도 해보았다.
안개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안개는 목석이 되어가는 중년의 가슴을
녹녹하고 뜨거운 소년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한 마력이 숨어있기에 나는 안개 속에 나를 세우고 싶어 한다.
새벽녘 안개가 잔뜩 낀 날 이면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온다.
이렇게 안개를 흠뻑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어느덧 소년이 되어있다.
아침 출근길 발걸음도 가볍고 매사가 매끄러운 느낌이다.
안개는 꼭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리무중(五里霧中), 안개정국(政局)이니 하여 사람들은 애써
안개의 이미를 축소하려 들거나 왜곡(歪曲)시키기도 한다.
그만큼 포근하고 달콤한 이면(裏面)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안개로 인하여 수많은 운전자들이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고,
위정자(爲政者)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안개속에서 발을 묶이기도 한다.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이 가운데 있는 나는 안개의 유혹에 자주 빠진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돈과 명예를 위하여 안개 속을 걷기도 하고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혀 벼랑 끝에 서기도 한다.
한 순간 발을 헛디디면 천길 벼랑 속으로 떨어진다.
주변 벗들 중 한 두 명이 홍진(紅塵)의 달콤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바벨탑을 쌓고 있다.
이미 상당수는 자신이 쌓은 탑에 깔려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패잔병이 되어 바람처럼 살고 있다.
솜사탕은 달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마성(魔性)은
피를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뿌리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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