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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개인의 신비체험

Joyfule 2025. 3. 3. 19:18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개인의 신비체험     

 

그날 저녁 체험은 특이하고 신비했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었다.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네비화면이 활짝 켜지더니 어딘가를 안내하고 있었다. 내가 가는 곳은 익숙한 곳이라 네비의 안내가 필요 없는 곳이었다. 나의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간 곳에서 일을 보고 다시 차에 탔을 때였다. 잠들었던 엔진이 몸을 살짝 떨면서 깨어났다. 네비 화면이 다시 켜지면서 나에게 그가 안내하는데로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오작동일지 몰라 내가 한 목적지 설정을 찾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도 네비한테 놀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진주에 있는 장례식장을 갔다 밤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네비가 그 부근의 산을 몇 바퀴 빙빙 돌린 적도 있었다. 밤중에 산길을 헛돌면서 귀신이 전파로 인간을 현혹시킬 수도 있지 않나 하는 가벼운 의문을 가졌었다.

활짝 켜져 있는 네비는 나보고 가자고 조르고 있었다. 아니면 뭔가 어떤 존재가 내 마음을 그렇게 조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네비가 이끄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 지고 있었다. 화면 속의 화살표는 서울 외곽을 빠져나가 깊은 숲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짙은 어둠이 사방에 내리고 내가 탄 차는 산속 으슥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네비의 장난이 신기했다. 네비는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고 순간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마침내 네비가 안내를 끝낸 곳은 산 속 깊은 곳의 어떤 지점이었다. 차에서 내렸다. 화강암으로 만든 돌계단이 앞에 보이고 그 옆으로 십이지신상이 도열해 있는 게 보였다. 뭔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겁이 나면서도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플래시를 켜고 돌계단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돌계단 끝에서 얼마간을 걸어가는 순간이었다. 밀도 짙은 어둠 속에서 커다란 눈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대문짝 만하다고 할까. 넓은 흰자위 가운데 검은 동자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 지점이 어딘지를 파악하고 돌아왔다. 그날 겪었던 일이 어떤 의미인지 상념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헛것을 봤는지 착시 현상인지 낮에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 달 후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다. 내가 큰 눈을 본 장소는 평범한 돌 축대였다. 커다란 눈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돌축대 아래로 검은테두리를 한 팔각의 돌단이 보였고 그 위에 검은돌로 정교하게 조각한 작은 부처가 편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한쪽 다리는 약간 굽힌 자세였다. 그 옆에 서서 작은 부처의 눈을 내려다 보았다. 그 눈은 장난기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나를 보고 살짝 미소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처음에 본 커다란 눈은 뭐지? 하는 의문을 품고 돌아왔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뭔가 마음속이 찜찜했다. 이번에는 그 작은 부처는 뭐지? 하는 의문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대문짝만한 처음에 본 눈처럼 설마 그렇게 없어지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달이 흘렀다.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세번째 그 장소로 갔다. 나를 보고 웃던 작은 부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고 공허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어느누구도 믿지 않을 신비한 체험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믿는 사람이다. 많은 기도를 해 왔다. 그런데 네비의 안내와 그 작은 부처의 존재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벌써 몇년이 흘렀다. 오늘은 갑자기 네비의 구조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으로 들어왔다. 하늘에 있는 인공위성에서 보내는 전파가 길을 안내한다. 그 전파가 화면에 작동하는 것이다. 하늘에는 그런 전파만 있을까. 우주에는 인간이 모르는 무수한 종류의 파장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전파만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파장을 보내 해킹 비슷하게 네이게이션을 움직일 가능성은 없을까. 네비의 구성에 비유해 보면 인공위성 대신 하나님이 보내는 영의 파장이 나의 영혼으로 들어오고 양심이 네비의 화면 같은 역할을 하면서 내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양심이 안내하는 길이 하나님이 보내는 성령의 파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길을 가면 목적지가 사랑 기쁨 평화등이 아닐까.


우주에는 하나님의 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악령이 그들과 주파수가 맞는 인간들에게 파장을 보내어 그들을 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의 마음속에 목적지를 돈이나 쾌락으로 입력시켜 그 길로 가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날의 개인적인 신비체험을 영적 세계의 존재를 알려주는 그 분의 선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이 가리키는 길로 가기로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