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과 강아지
오래전 종로의 길거리에서 본 광경 하나가 바위에 글이 새겨지듯 뇌리에 남아있다. 인도의 한 복판에서 강아지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당황과 두려움이 온몸에서 쏟아져 나오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강아지를 둘러싼 사람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걱정을 하는 모습이었다. 주인을 잃은 강아지인 것 같았다.
얼마 전이다. 실버타운에서 잠시 일을 보려고 운전을 하고 나오는데 도로 한가운데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그 강아지는 내 차를 막고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자기가 타고온 익숙한 차인지를 살피는 것 같았다. 둥그렇고 까만 눈에 흰 털이 몸을 덮고 있었다. 누군가가 키우던 고급종 같아 보였다. 내가 그 강아지를 피해 옆으로 서행가자 그 강아지는 간절한 눈빛으로 내차를 몇걸음 따라왔다. 주인의 차로 착각을 한 것인지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그런 강아지를 쉽게 데리고 갈 수도 없다. 살아있는 존재를 키우려면 애정과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강아지를 보니까 엉뚱하게 이십오년전쯤 감옥에서 만난 늙고 추레했던 외로운 노인이 떠올랐다. 노인은 육이오 전쟁 때 길가에 버려졌다고 했다. 그는 거리에서 깡통을 든 거지가 되어 컸다. 성년이 된 그는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막 노동을 했다. 어느날 그는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틀 후 깨어났다. 의사는 그에게 생식불능을 선언했다. 평생 가족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였다. 더 이상의 노동도 힘들었다. 그는 고무장갑이나 수세미같은 잡화를 들고 변두리 시장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무허가 합숙소에서 잠을 자고 싸구려 밥집에서 끼니를 때우는 삶이었다. 가난에는 익숙했다. 정말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노인은 큰 맘을 먹고 강아지 한 마리를 샀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가족이었다. 노인은 합숙소에서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잤다. 강아지의 온기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먹지 못해도 강아지에게는 우유를 사먹이고 시장 식당에서 살고기가 붙은 뼈다귀를 얻어다 먹였다. 비가 내리고 스산한 날도 강아지와 함께 있으면 고독하지 않았다. 노인과 강아지의 모습은 귀여운 손자와 함께 있는 할아버지와 흡사했다. 노인은 장사를 나갈 때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밥집 구석에 있는 강아지 옆에 놓아두었다. 강아지끼리 친구가 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 밥집의 강아지는 그대로 구석에서 놀고 있었다. 노인은 근처 골목길을 구석구석 다니며 목이 터져라 강아지를 부르고 다녔다. 애가타는 노인에게 강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강아지도 어디선가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를 찾고 있을게 분명했다. 화가 난 노인은 돌아가서 밥집여자에게 따졌다. 뚱뚱하고 거친 성격을 가진 여자였다.
“아따, 그까짓 개새끼 한 마리 가지고 왜 그리 촐싹거려?”
밥집 여자가 손에 든 주걱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분노가 폭발한 노인은 밥집여자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렸다. 그리고 식당 구석에 있던 강아지를 들고나왔다. 노인은 야간주거침입절도와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로 구속이 됐다. 나는 국선변호인으로 그 노인을 만나러 구치소에 갔었다.
“왜 깨물었어요?”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물었다.
“내가 늙고 병들어서 그런지 그 뚱뚱하고 힘센 젊은 밥집여자를 당해낼 수가 없더라구요. 일방적으로 한 게 아니라 같이 싸웠어요.”
“그 밥집 강아지는 왜 가지고 나오신 거예요?”
“그 여편네도 사랑하는 강아지를 잃은 심정이 어떤 건지 당해봐야 하니까요.”
이 사회의 바닥에 있는 한 애잔한 광경이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어둠 속의 그런 애환을 들여다 보는 직업이었다.
여유있는 사람들 중에는 키우던 강아지를 어느 날 귀찮다고 길가에 내던져 버리는 심성도 있다. 강아지를 위해서 싸우다가 감옥에 들어간 가난한 노인도 있다. 버려지는 강아지와 무허가 합숙소에서 비가 오는 날 주인과 함께 있는 강아지 중 어떤 쪽이 행복할까. 잠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 강아지가 아직도 있는지 살펴보았다. 자리를 굳게 지키던 흰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 강아지가 구원받아 행복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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