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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황당한 살인

Joyfule 2023. 7. 8. 14:37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황당한 살인



썰렁한 감옥 안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는 수화(手話)도 못 배우고 한글도 몰랐다. 변호사는 죄인의 말을 듣고 법정에서 그의 입이 되어주는 건데 소통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는 살인범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국선변호인이었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청년을 죽였다. 경찰은 정신박약자인 그가 혼자 보던 비디오의 살인을 흉내 내어 범행을 했다고 살인의 동기를 추정했다. 죽은 사람은 죽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산 사람인 그는 입이 막혀서 말을 할 수 없었다. 형사는 정물같이 앉아있는 그를 보면서 주변환경에 맞추어 추리소설을 쓸 수 밖에 쓸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 달에 여러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는 소통이 불가능한 장애인의 살인사건을 붙들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시간을 낸다고 해도 그의 내면에 들어가는 힘들게 분명했다. 


변호사인 나도 막연했다.어쩔 수 없이 사건을 맡았다. 재판정에서 소품 같은 국선변호인으로 자리를 지켜야 할지도 몰랐다. 자기를 표현 못하는 죄수들은 대부분 그렇게 법의 빗자루에 휩쓸려 까마득한 인생의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냥 적당히 넘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또 다른 소리가 내면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모방살인’이라는 형사의 가설을 한번쯤 다른 각도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범인 그의 환경을 알아보았다. 

그는 가평의 작은마을에서 동생과 살고 있었다. 동생도 한쪽 팔이 없는 불구였다. 형제는 둘 다 신체적 장애가 있어 제대로 된 보수를 받는 노동은 할 수 없었다. 형제는 남의 밭을 빌려 부추를 키워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살았다는 죽은 사람에 대해 알아보았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관계가 설정되기 힘들었다.

원한도 있을 리가 없었다. 살인의 시간과 장소를 살펴보았다. 대낮에 사람들이 오가는 버스정류장에서 사고가 났다. 그가 갑자기 정류장 옆 농가에 가서 툇마루에 있던 망치를 들고나와 휘두른 것이다. 그 행동이 모방 살인이었을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나는 그의 동생을 만났다. 살인과 직접 관련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사건기록에 그의 진술은 없었다. 그의 형과 죽은 사람이 전에도 마주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죽은 사람이 이따금씩 논길에서 형을 보면 뒤따라왔다고 했다. 그가 따라오면 형은 손짓으로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형이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도 했다. 신경을 쓰지 않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왜 죽은 사람이 따라오면 화가 났을까? 어쩌면 거기에 사건의 열쇠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오래전의 기억 하나가 꿈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중학교 이학년때 자주 가던 제과점풍경이 나의 뇌리에 떠올랐다. 여러 중고등학교의 남녀학생이 자주 드나드는 빵집이었다. 나와 좀 떨어진 탁자에 농아학교에 다니는 학생 서너명이 수화(手話)를 하면서 앉아 있었다. 나보다 한두살쯤 위의 학생들 같았다. 모두 운동으로 단련이 된 듯한 근육질의 몸이 교복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의 수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몇 동작을 무심히 따라해 보았다. 그 순간 농아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튀어 나왔다. 내가 그들의 흉내를 내면서 놀린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잠시후 나는 그들 세 명에게 빵집 뒷골목 으슥한 곳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세명의 주먹과 발길질이 곧 날아올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이 손짓으로 내게 따졌다.

‘너 왜 우리들을 놀리니?’

수화를 몰라도 단번에 그 뜻을 알았다.

‘정말 미안해 잘못했어’

나는 표정으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두손을 비비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진심이었다. 나의 사과가 순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지면서 그중 한 명이 내가 입은 교복의 뱃지를 가리키며 손짓으로 말했다.

‘너 좋은 학교에 다니면서 우리한테 왜 그랬니?’

그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경솔했던 걸 반성하면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때 그들의 억눌린 분노가 대단하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평생 속에 불을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왜 그 사람에게 화를 냈을까요?”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원인이 분명 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이 평소에 형만 보면 히죽히죽 웃으면서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따라갔어요. 그걸 보고 형이 화를 낸 것 같아요.”

나의 머리 속에서 어떤 퍼즐이 맞추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왜 히죽히죽 웃으면서 팔다리를 휘적거리고 형에게 갔죠?”

“그 사람 뇌성마비예요.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이 대개 그렇잖아요?”

그의 형은 따라오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병신 흉내를 내며 자기를 놀린다고 오해한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들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까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하고 분노가 폭발했던 것 같았다. 나는 법정에서 그렇게 변론했다. 법은 나의 주장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어처구니 없는 오해와 분노가 빚어낸 살인사건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더러 벌어지고 있다. 나는 그 섭리를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