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돈 받는 법원
축구 경기의 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선수로 그라운드에 세우면 어떨까. 재판정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한 민사법정에서였다. 사십대 중반쯤의 남자가 원고석에 와서 섰다. 변호사 없이 직접 소송을 제기한 것 같았다.
“이 서류 누가 써줬어요?”
“제가 직접 썼습니다.”
“이렇게 쓰시면 안 되죠. 청구하는 취지가 뭔지 원인이 뭔지 법률적으로 써오셔야 하는데 이걸 보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변호사에게 물어보세요.”
“돈이 없어서요.”
“그러면 집니다.”
“판사가 정리해 주면 안됩니까?”
“판사는 축구 경기로 치면 심판입니다. 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선수로 뛰는 거고 판사는 그 심판입니다. 아무리 진실해도 주장하고 증거를 대는 방법으로 뛰지 않으면 재판에서 집니다. 심판은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습니다.”
“재판하고 축구 경기하고 똑같은 겁니까?”
“비슷합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 다음번에 기다리던 사람이 재판장 앞으로 나와 원 피고석에 양쪽으로 나란히 섰다. 재판장이 기록을 들추면서 피고석의 뿔테안경을 쓴 더벅머리 청년에게 말했다.
“이거 가지고는 안되요. 자료를 더 가지고 와요.”
“다 갖다 줬잖아요? 뭘 더 줘요? 거기 들고 있는 파일 안에 다 있단 말이예요”
더벅머리 청년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알았어요. 자료 안내면 날아오는 꼴을 방어 못한 자기 책임이지. 끝내죠.”
그말에 더벅머리가 한풀 기가 꺽여서 말했다.
“무슨 서류를 가져와야 할지 말을 해 줘요. 그래야 가지고 오지.”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어떻게 막으라고 선수에게 코치하면 안 되지 알아서 해요.”
경기규칙을 모르면 자살골을 넣을 수 있듯이 현실의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오십대 쯤의 뚱뚱한 여자가 그 다음 차례로 앞으로 나왔다. 재판장이 서류를 보면서 물었다.
“이거 어려운 소송인데 계속 혼자서 소송을 하겠습니까?”
“네? 법무사에게 돈 주고 하는 건데요?”
“이것 참! 예를 들면 중병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동네약국에 갔네요. 하여튼 잘 알아서 하세요. 법원이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닙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 이제 우리 판사들도 예전같이 밤 열 한시까지 재판을 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시간이 되면 정확히 퇴근하겠습니다. 나머지는 국민들 마음대로 하세요.”
재판구조와 국민들의 인식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어 왔다. 그 틈새 사이에서 변호사를 하면서 밥을 먹고 살아왔다. 나는 변호사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의뢰인의 두서없는 말들은 다듬지 않은 거친 고기 덩어리였다. 그걸 칼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불 위에 놓고 노릇노릇 알맞게 구워낸다. 그리고 그 위에 스테이크 소스를 뿌려 아스파러가스와 감자같은 증거자료와 함께 접시에 담아 재판장 앞에 내놓고 “이거 한번 맛을 봐주세요”하는 셰프가 된 심정이었다. 싸우는 상대방 변호사는 나의 스테이크의 흠을 잡으면서 자기가 만든 음식을 법의 상위에 올려놓았다. 판사는 양쪽에서 올라온 상의 음식들을 맛보고 어느 쪽이 맛이 좋은지 선택해서 승부를 결정했다. 일단은 맛을 보게 하는 게 중요했다. 투정 잘하는 도련님의 구미가 당길 수 있도록 법의 밥상을 잘 차리는 게 변호사의 실력이었다. 판사를 하다가 법원에서 나와 변호사를 몇 년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법률 서류를 판사가 읽게 하려고 형광펜으로 칠을 하기도 색연필로 밑줄을 긋기도 하고 정말 별짓을 다해. 힘들어 죽겠어. 그렇지 않으면 아예 읽지를 않는 경우도 많아. 어떻게 하든 읽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변호사를 하다가 다시 대법관이 되었다. 변호사들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열심히 기록을 읽는다고 했다. 형사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한국제품을 수입해 미국 전역에 판매했다. 그는 변호사보다 자기가 더 무역실무에 능통하고 판사를 잘 납득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열심히 자기의 변론서를 작성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서류 사이사이에 증거서류를 집어넣고 색색의 견출지도 붙여 거의 작품 수준으로 만들었다. 재판이 열리는 날 그는 자기의 작품을 재판장 앞에 올려놓았다. 재판장이 그 기록의 두께부터 보면서 눈을 찡그렸다. 잠시 생각한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이거 읽지 않겠습니다.”
맛이 없는 음식 앞에서 입을 꼭 다물고 “안 먹어”하고 투정 부리는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안 읽고는 그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는 불만에 찬 피고인이 집 앞에서 기다렸다 쏜 화살에 맞은 판사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법정의 경기규칙인 민사소송법의 대가이고 감사원장을 지낸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행정부에 민원을 제기하면 형식이 따로 없어요. 그저 불만인 내용을 적어 제출하면 알아서 조사해 처리하고 그 결과를 통보해 줍니다. 민원을 제기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사법부인 법원을 보세요. 소송을 제기하려면 법적인 이론구성과 복잡한 서류의 형식을 요구하죠. 증거도 자기가 알아서 제출하라고 하고 그걸 못하면 소송에서 억울하게 지죠. 게다가 수시로 법정에 불려가서 곤혹을 겪고 심지어 소송비용을 법원에 내지 않으면 재판을 해주지 않아요. 증인을 부르는 비용이나 판사가 현장에 가는 비용까지 대라고 하니 어느 국민이 좋다고 하겠습니까? 게다가 변호사 비용은 얼마나 비쌉니까?”
국민을 위한 복지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사법부도 좀 더 국민의 입장에서 편하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돈을 내지 않으면 재판을 해주지 않는 게 타당한 것일까? 헤비급과 플라이급을 같은 링에 올려놓고 알아서 싸우라고 하면 그게 공정한 것일까? 반칙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판이 외면하면 정의가 이루어질까? 한없이 재판이 지체되는 법원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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