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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재미있는 인생

Joyfule 2023. 9. 14. 23:45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재미있는 인생



황혼 무렵 바닷가로 나갔다. 멀리 화물선 몇 척이 풍경처럼 떠 있고 붉은 저녁노을에 젖은 구름이 신비한 색조의 안개 같다. 나는 모래해변을 따라 옆으로 난 나무 데크를 천천히 걷고 있다. 소리치면서 우글우글 몰려드는 파도소리가 시끄럽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있다.

허공에 희미한 하얀 달이 걸려있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다. 하늘과 수평선과 그 너머의 것들까지 어둠 속에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다. 나는 현실과 비현실이 존재와 비존재가 조금씩 섞여드는 그 순간이 좋다. 희미했던 달이 어느새 뚜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계절 특유의 맑은 노란빛을 뿜어내고 있다. 바다위에 달빛의 금가루가 뿌려져 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나는 사람 없는 모래사장에 앉아 검은 바다를 본다. 멀리 실루엣으로 보이는 바다로 흘러내리는 산자락 아래의 포구에서 빨강 파랑 노랑의 보석같은 불빛들이 반짝이며 띠를 이루고 있다. 


이 아름다운 지구별의 모습을 놔두고 천국을 따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름다운 풍경은 눈과 머리를 지나 가슴속까지 흘러들어와 마음을 흠뻑 적신다. 나는 요즈음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순간순간 바뀌는 지구별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즐기고 있다. 인생은 어느 시기건 그에 알 맞는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느끼며 산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이 아닐까. 그런데 시대와 관계의 흐름 속에서 그게 쉽지가 않다. 


얼마 전 장관을 지낸 어려서부터의 친구가 내가 있는 곳을 왔다가 돌아갔다. 그 친구는 내게 경치는 좋지만 자신은 그렇게 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았다. 천억이 넘는 부자친구가 내가 묵고 있는 바닷가를 다녀갔다. 그 친구는 재산관리 때문에 도저히 나같이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여유있게 즐기는 삶이 누구나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내놓고 보면 거절 하고 싶던 아버지 마음의 유전자를 내가 받은 것 같다. 고등학교 삼학년 시절 내가 법대를 지망하려고 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출세하지 말라고 했다.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 그때그때 자신에게 맞는 작은 즐거움을 누리며 살라고 했다. 아버지의 인생도 독특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중학교 때부터 사진이 취미였다고 했다. 여유 있는 집이 아닌데도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는 취미가 직업이 되어 동대문 근처에서 작은 사진관을 했다. 그러다 잡지사를 거쳐 신문사 사진기자가 됐다. 사건현장보다는 흑백사진 속에 봄의 물씬한 흙냄새를 담는 걸 더 좋아한 것 같다. 아버지의 회사 후반부를 납으로 된 사진판을 만드는 기술자로 지냈다. 아버지의 인생은 자신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아버지는 새를 좋아했다. 어느날 잉꼬를 사서 집으로 가져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변두리 허름한 목조가옥인 우리 집은 새들의 합창으로 시끄러워졌다. 아버지는 카나리아 문조 호금조 십자매들과 얘기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나도 아버지 옆에서 엄마없는 털도 나지 않은 새빨간 잉꼬새끼를 키운 적이 있다. 좁쌀을 갈아 계란노른자에 반죽을 해서 새 밥을 만들었다. 면봉 끝에 그걸 조금씩 묻혀 잉꼬새끼의 입에 밀어넣어 주었다. 그걸 받아먹은 잉꼬새끼는 연두색 털이 나면서 커갔다. 잉꼬는 내가 자기 엄마인 줄 알고 나의 어깨에 머리에 앉아서 살다가 짝짓기를 했다. 그 새는 오대 고손자까지 좁은 우리집에서 자손을 증식시켰다. 회사를 그만둔 후 아버지는 아예 작은 새 가게를 차렸다. 아버지의 별명은 ‘파랑새 할아버지’였다. 그게 그때 그때 즐거움을 찾아간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벗어 나지 못한 것 같았다. 의식적으로 해보려고 마음먹었지만 조직생활이 몸이 뒤틀리고 힘이 들었다. 출세를 포기하고 자유롭게 살자고 일찍부터 마음먹었다. 빚을 지고 무리가 따르더라도 좋아하는 것들을 그때 그때 꼭 하기로 했다. 그 순간을 놓치면 감성이 녹슬어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할 것 같았다. 죽을 때 즐기지 못한 건 후회해도 돈을 덜 벌었다거나 출세를 못해서 억울해 하는 경우는 없다고들 했다.

사무실 벽의 천정까지 문학책을 쌓아두고 읽었다. 세계의 대륙과 바다를 흘러 다녔다. 나의 뇌리는 사진첩이다. 러시아의 낡은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 할 때 보았던 광경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거대한 붉은 태양이 지평선으로 내려갈 무렵 흰 눈을 덮어쓴 강건한 초록의 소나무 숲 풍경이 지금도 마음속에서 살아서 숨쉬고 있다. 작은 보트를 타고 얼음 녹은 흙탕물이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만난 빙하의 신비한 빛은 영원히 나의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배를 타고 세계의 바다를 돌았다. 태평양을 건너고 인도양 아라비아해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지나 에게해로 가기도 했다. 어떤 때는 크루즈 선을 타고 어떤 때는 화물선을 얻어 타기도 했다. 십 오년 동안 추구했던 나의 즐거움이다. 거대한 상대방을 법의 심판대 위에 끌어다 놓고 법정에서 격투기를 벌인 것도 지나고 보니 스릴을 만끽하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거대한 종교집단의 교주를 상대로 싸우기도 하고 재벌회장들을 상대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국가를 상대로 했다. 도박사는 한 장의 카드에 인생을 건다. 짜릿한 승부를 다투는 변호사의 쾌감도 그 못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요즈음은 바다와 세 얻은 실버타운의 집필실이 나의 낙원이다. 돈과 시간과 체력이 남아돌아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앞 뒤 재지 않고 그냥 물에 풍덩 뛰어들듯이 시도해 본 것이다. 바로 지금 자신에게 맞는 재미를 찾는 것이 진정 나이답게 늙어가는 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