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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브랜드 거품이 낀 세상

Joyfule 2023. 6. 24. 02:20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브랜드 거품이 낀 세상



‘부끄러워 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인터넷신문에서 봤다. 글 쓴 사람은 지방에 있는 전문대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그런 학력 때문에 신문사에서 글을 청탁받은 순간 자신이 써도 되는 것인지 독자들이 필자로 받아 들여줄지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세상이 수도권의 사년제 대학졸업자를 보편적 모델로 하니까 마음이 위축됐고 마땅히 해야 할 말도 망설였다고 했다. ‘남들 다 저 정도는 하는데 왜 난 못할까’라는 굴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남이 아니라 그는 스스로를 냉소했고 광대같이 행동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는 보편적인 모델에 거품이 너무 끼어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맺고 있었다. 그 청년의 글을 읽으면서 한가지 우화가 뇌리에 떠올랐다. 벽에 금을 그어놓고 거기에 손을 대지 않고 그 금을 줄이거나 늘여보라고 했다. 한 사람이 위에 그 금보다 긴 줄을 그었다. 그 순간 그 금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반대로 그 사람이 그 아래 짧은 금을 그었다. 그 순간 금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그 우화는 많은 얘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그 청년이 말하는 수도권의 사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무렵 어떤 독지가의 장학생 선발에서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떨어질 뻔 했다. 스카이 대학인데도 그렇다.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법무장교로 근무했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옆의 법무장교가 나보고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순간 위축되기도 했었다. 그들에게는 일반법원의 판사나 검찰청의 검사만이 성골이고 나 같은 존재는 육두품쯤으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군 판사를 하면서 나는 판사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계엄시절 군사법원의 판사로 일반인들도 재판을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헌법과 법률이 내게 그 자격을 인정해 주었다. 군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일반검사들은 군검사는 한 단계 아래인 것처럼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군검사도 범죄에 대해 똑같은 형법을 적용해 수사를 하고 기소를 했다. 수사대상인 군인은 동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종류에는 공수처법에 의해 임명되는 검사, 특별검사법에 의한 검사, 군사법원법상의 검사,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가 있다고 했다. 모두가 같은 효력을 가진 법률에 의해 자격이 부여된 것이라고 했다. 선민의식을 가지고 공수처의 검사는 검사가 아니라고 하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인간사회가 만들어 내는 계급들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직과 기술직, 기술직과 단순노동등 구별은 한없이 계속된다. 세상이 씌우려는 정신적 전족을 거부해야 한다. 어떤 브랜드안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다. 나의 경우는 그런 치졸한 차별이 더러워서 다시 사법고시에 도전했었다. 그해 새로 만들어진 전두환의 ‘국민윤리’라는 과목만 없었더라면 거의 수석 합격 수준이었다. 그 이후에도 살아오면서 수많은 세상의 굴레를 경험했다. 종교계의 지도자인 김진홍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웃었던 적이 있다. 그는 지방도시에 있는 대학의 철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설교도중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서울 상대를 졸업했습니다.”

그의 학력을 아는 신도들이 갑자기 의아해 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서울에서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대학을 나왔죠”

그도 웃고 신도들도 웃었다. 그는 갈매기 죠나단 같이 세상을 떠난 높은 곳에서 멀리까지 보는 큰 인물 같았다.

나와 친한 대형가구점의 주인이 있다. 그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어려서 시골에서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다녔어. 학력도 별 볼 일 없고 군대에서도 졸병이었지. 그래서 배웠다고 하고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은근히 기가 죽어 살았어.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걸어가다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였어. 갑자기 하나님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 어디 있니?’라고 하시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던 바윗돌이 없어져 버린 것 같더라구. 내가 허공에 대고 소리쳤지 판 검사놈들 니네들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는데 네깟 놈들이 뭐냐고 말이야. 그때부터 평생 위축됐던 마음이 사라져 버렸어.”

물건이나 인간이나 브랜드거품이 가득 낀 세상이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지금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 노예적인 삶이 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