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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실버타운의 두 노인

Joyfule 2023. 6. 25. 22:55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실버타운의 두 노인



검푸른 바다 위로 뿌연 회색 구름이 덮여있다. 해수면엔 차가운 바람이 불고 물살이 차가울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모래 위로 겨울 파도가 밀려와 허연 포말을 뱉어내고 있다. 가느다란 겨울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어제는 실버타운 공동식당 내 옆의 탁자가 텅 비어 있었다.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두 노인이 안개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흔 두살의 한 노인은 폐에 물이 차서 응급실로 옮겼다고 한다. 그때가 왔다는 의견이었다.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노인도 중환자실로 들어갔다고 한다.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버타운을 바다를 흐르던 타이타닉호에 비유한다면 그렇게 배에서들 내리는 것 같다. 아흔 두살의 노인은 건강해 보였다. 걸음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항상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텃밭에 나가 풀 뽑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파크골프 모임의 회장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쉽도 있었다. 활기찬 그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백살은 능히 넘길 것 같았다. 실버타운에서 함께 지내던 노인이 중환자실의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 노인은 꼭 다시 일어나서 실버타운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실버타운의 진부한 일상이 죽음의 초대장을 받으면 행복했던 순간으로 변하는 것 같다. 다시 산책하고 파크골프를 치고 다른 노인들과 반주를 한잔하고 싶은 소망이 절실한 것이다.

그 노인과 같은 상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노인과는 몇번의 짧은 대화를 했었다. 부리부리한 눈에 목소리가 걸걸한 그 노인은 해병대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사십년 동안 잠수부로 해저 사십미터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심해에서 평생을 살다보니 몸이 성한 곳이 없어 칠십대 중반에 죽으려고 동해 바닷가의 실버타운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도 팔십대 중반까지도 죽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잠수부시절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찾아내는 데는 귀신이었다고 자랑했다. 조류의 흐름을 알아야 죽어 떠내려간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시신을 건져내고 팁으로 이백만원을 받았을 때 정말 신났다고 했다. 그는 죽은 사람을 건져내면 돈까지 주는데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려내면 뺑소니를 치고 감사 전화 한통 없다고 푸념을 했다. 그는 몇달 전 시골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집사하고 장로중 어떤 게 더 높은 거냐고 물었다. 교회의 대장인 목사가 실버타운에 같이 다른 노인은 장로로 자기는 집사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해병대 출신의 그 노인은 해병대 기수와 계급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의 눈높이에 맞추어 장로가 위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장로에게 경례를 해야겠네”라고 하면서 평생 졸병신세라고 했다. 외로운 그 노인은 실버타운에서 키우는 개를 사랑했다. 식당에서 핀잔을 받으면서도 몰래 음식을 싸다가 개에게 주었다. 개는 노인만 보면 너무 좋아서 바닥에 뒹굴었다. 어느 날 저녁 시간이었다. 노인이 분노한 표정으로 실버타운의 다른 노인 앞에 섰다. 눈에서 시퍼런 불이 흘러나왔다.

“너 내 개 때렸지?”

화가 난 노인이 소리쳤다.

“나 안 때렸어. 같이 산에 올라가던 옆 사람이 개가 하도 짖어서 돌을 던지는 걸 보기만 했어.”

그 말을 듣는 노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 이 개새끼야 따라 나와 죽여버릴 거야.”

팔십대 중반을 넘은 노인은 젊은 시절의 혈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위 노인들이 말렸다. 그 노인도 이제 인생의 배에서 하선을 한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노인을 생각하며 개가 몹시 슬퍼할 것 같았다.

노인들의 세상을 구경하면서 삶이란 배를 타고 인생 바다를 건너가는 것 아닐까. 도중에 많은 승객들을 만났다 헤어진다. 시간의 항구마다 승객들이 타고 내린다. 어떤 승객과는 잠시 만났다 헤어지고 좀 더 오랫동안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하선한 두 노인을 보면서 나는 노년의 실상을 봤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름의 정신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삶은 일상이다. 오늘은 중환자실로 옮긴 두 노인이 소망하는 내일이 아닐까. 좋은 삶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선한 두 노인을 위해 마음속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