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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돈벼락의 저주

Joyfule 2023. 6. 21. 14:54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돈벼락의 저주



어제저녁 우연히 방송에서 ‘로또의 저주’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이백사십이억의 로또 당첨금을 탄 사람이 그 돈을 다 날리고 사기꾼이 됐다고 한다. 방송에 출연한 학자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 열명중 일곱명이 오히려 불행해 졌다고 한다. 돈이 생기면 경계심이 생기고 인간관계가 깨진다고 했다. 큰 돈에 대한 관리능력이나 경험이 없다보니 함부로 투자해서 돈이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부자가 됐다는 행복감도 길어야 아홉 달 정도라고 했다. 돈벼락을 맞은 그들은 정신이상자로 변한다고 했다. 현실감각이 없어지고 꿈속에서 사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다고 했다. 

로또복권에 또다시 당첨될 것 같은 환상을 가진다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훨씬 낮았다. 그들은 결국 다시 찜질방 생활의 바닥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방송에 출연한 학자는 그런 로또의 저주를 피하는 방법은 복권이 당첨되도 본연의 일에 계속 종사하는 것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눈 사람은 저주를 면했다고 소개했다. 


돈은 저주일까? 행복일까? 돈이 생기면 일을 그만두고 평생 즐기기만 하는게 좋을까. 아니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좋은 것일까. 재벌 회장의 비서관을 오래 해왔던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다.

회장은 가까운 비서들의 이름을 빌려 많은 재산을 은닉했다고 했다. 비서들 중에는 거액에 눈이 멀어 맡았던 돈을 횡령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도 회장은 구린 게 있기 때문에 법적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재벌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의 세무조사가 신문에 난 걸 봤다. 국세청은 그가 가진 몇조에 해당하는 거액재산의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출발해서 평생 월급만 받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천문학적 금액의 돈을 소유할 수 있었는지 밝히라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같이 일했던 회장 친구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돈이 그에게 행복일까.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해서 한국의 대통령들은 당선되면 돈벼락을 맞았다. 임기 중에도 권력은 블랙홀같이 돈을 빨아들였다. 돈벼락을 맞은 그들의 마지막은 일생이 허물어지면서 지옥행인 것 같았다. 돈이 없어 절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돈에 눌려서 끙끙대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돈이 그들의 영혼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만다.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돈에 대한 철학을 확립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돈은 뺏는 경우, 얻는 경우, 버는 경우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강도나 권력자가 받는 돈은 뺏는 것이라고 했다. 얻는 경우란 수고하지 않고 돈을 가지는 경우였다. 복권 당첨이나 남의 돈을 공짜로 얻는 경우다. 정직한 땀의 댓가를 받는 것이라야 돈을 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할까. 

카알라일은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자유를 얻는 데 필요한 정도인 것 같았다. 

제갈공명도 뽕나무 칠십그루의 재산이 있었기에 자유로웠다고 했다. 나는 많지는 않지만 내가 번 돈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네 옆의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잔 주는 것이 내게 해 주는 것이라고 그분은 말했다. 어제는 내가 있는 실버타운 내에서 몸이 아픈 분에게 따뜻한 ‘섭국’ 한 그릇을 사서 포장해 보냈다. 동해안 바닷가마을에서 먹을 수 있는 홍합과 고추장을 넣어 만든 국이었다. 실버타운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도 점심을 샀다. 실버타운 직원이 이런 말을 내게 전했다.

“엄 변호사님과 같은 자리에서 밥을 잡수시는 아흔두살 되신 할아버지 있죠? 갑자기 폐에 물이 차서 아들이 데려갔어요. 가실 날이 며칠 안 남은 것 같아요. 그 분이 하루 이곳을 왔다 가셨어요. 자기가 살던 방을 마지막으로 찬찬히 둘러보시더라구요.”

건강하고 씩씩하던 분이었다.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고 텃밭에 나가 풀을 뽑는 일을 도와주곤 했었다. 백살이 넘게 너끈히 살 것 같아 보였는데 갑자기 무한의 세계로 방향을 돌렸다. 장례식에 꽃이라도 한 송이 사서 보내고 싶다. 

이웃을 사랑하는데 굳이 많은 돈이 필요없는 것 같다. 주변의 외로운 사람들에게 밥을 한끼 사면 그 얼굴에 진정한 감사의 표정이 떠오른다. 얼마간의 돈이 있다는 데 나는 감사한다. 나름대로 지식노동으로 번 깨끗한 돈이라는 생각이다. 그 돈을 움켜쥐지 않고 주변과 나누려고 마음먹는다. 돈을 쓰는 액수만큼 나는 소유욕에서 벗어난다. 돈을 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따뜻한 기운이 안개같이 피어오른다. 내가 쓰는 돈의 열배 백배의 보상을 받는 것 같다. 돈은 쓴 만큼 번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동해의 바닷가로 나를 찾아와 주는 친구들에게 포구의 단골횟집에서 싱싱한 물고기회를 대접한다. 새벽 바다에서 어부가 막 잡아온 은빛 비늘의 물고기들이다. 본업에 충실하며 검소하게 살면서 내가 번 돈의 마지막 일원까지 쓰고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