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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이들이 먹어야 할 영혼빵

Joyfule 2024. 6. 19. 11:39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이들이 먹어야 할 영혼빵  

 

일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봤다. 고등학교의 교실 권력은 주먹과 조직에서 나오고 있다. 패거리를 만든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을 지배한다. 여자아이들이 속칭 ‘짱’을 선망한다. 동물 세계와 비슷하다. 소년 시절은 나도 싸움을 잘하고 싶었다. 그 시절 일류 중학교에 다니는 친척 형이 있었다. 그 형이 사는 산동네 판자 집에 갔을 때 비좁은 마당에 샌드백이 있었다. 친척 형은 싸움을 잘하기 위해 매일 권투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 형은 학교를 주먹으로 꽉 쥐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 형은 퇴학을 당했다. 그 후 몇 년이 흐르고 그 형은 전자제품 외판원을 하고 있었다. 그 형의 가치관이 바뀐 것 같았다. 대기업에 들어간 동창들을 자랑했다. 그 형이 싸움을 하지 않았으면 대기업 엘리트 사원이 됐을 것 같았다. ​

대기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학교 교육의 성공적인 결과일까. 한 대기업 직원이 목에 걸린 사원증을 자랑하면서 그걸 얻기 위해서 중고등학교 시절 여러 학원에 가고 과외를 하고 치열한 대학입시를 치루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목적이 과연 대기업의 사원증이어야 할까. 현실적으로는 대기업이나 전문직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은 자영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한다. 대기업의 직원으로 들어가 사장이 되면 인생 성공의 사다리 끝일까. 삼성그룹에서 계열사 사장을 하다가 퇴직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다 비서실을 거친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비서로 직접 모셨던 이병철 회장님은 인재를 보는 눈이 정확한 분이었어.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지신 것 같았어. 좋은 제품을 사는 거지. 삼성에서는 삼성맨을 만들고 조직에 충성하게 하기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돌리고 계속 재교육을 해. 그러면 점점 그룹에서 만들어 가려고 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다른 그룹도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삼성의 계열사 사장이었던 또 다른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

“삼성에서는 리더쉽 보다는 결국에 가서는 순종하는 사람쪽을 선택해. 예를 들면 위에 바른말을 하고 부하들을 감싸주고 책임을 지는 중간 간부들이 있지. 괜찮은 사람들이지. 그런데 종국에 가서 오너는 그런 사람보다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선택해. 정의를 따지고 불법이니 합법이니 따지는 친구들은 좋아하지 않아. 까라면 까야 하는 거야. 사장으로서 오너가에 절대 충성을 했는데 지나보면 가슴이 섬찟한 일들이 많아.”​

다른 재벌그룹에서 임원을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대학 동기가 모 그룹 부회장까지 갔잖아? 우락부락한 오너에게 순종하면서 그 자리로 갔으면 대단한 거지. 아마 받은 스트레스가 대단할 거야. 그러니까 암에 걸렸지. 나도 사장을 해 봤지만 피가 마르는 자리야. 매달 한번씩 회의가 있는데 실적이 나쁘면 욕을 먹고 목이 잘리는 거지. 재벌 오너들을 보면 수시로 사람에게 싫증을 내는 것 같아. 네가 최고다라고 막 추켜세워 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라버리는 거야. 그리곤 다시 찾지 않아. 냉정한 거지. 재벌가는 결국 사원들을 머슴으로 보는 거야. 어쩔 수 없어.”​

그들은 대기업에 들어가 최고의 자리까지 간 친구들이었다. 그런데도 입에서 봉건시대의 ‘머슴’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고 공부를 시키는 것일까.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닌가? 미래에 적응하는 인간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교육을 통해 착한 일을 하고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인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정의를 지킬 뿐 아니라 정의 자체에 목마른 인간이 학교에서 생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희망들은 현실의 교육 현장을 모르는 공허한 낭만적인 소리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본 사람이다. 학교 시절 일진 같은 불량청소년을 해 봤다. 청년 시절에는 돈과 권력이 가치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노년인 지금은 지나온 세월 추구한 게 다 물거품 같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대기업에 가지 않아도 전문직이 아니어도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어떤 종교든 그 교화가 의외로 진정한 교육의 기초라는 생각이다. 부장판사를 지냈던 후배 변호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다니던 지방의 고등학교는 이류였어요.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이 성경 속 시편 23장을 천번 쓰면 소원을 이룰 테니 해보래요. 미신같은 그 말에 아이들이 모두 웃었죠.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 봤어요. 그 학교에서 처음으로 서울법대생이 탄생했는데 그게 저였어요. 고시 공부할 때도 다시 천번을 써 봤어요. 대학재학중이던 그 해에 바로 합격을 하더라구요.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 또 해 봤죠. 그랬더니 수석 졸업을 했어요. 그걸 쓰는 기도를 하면서 내게 신에 대한 자의식이 싹튼 것 같아요.” ​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자존감 있는 진정한 인격을 갖추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배의 중심을 잡는 바닥짐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