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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육의 믿음(구원)

Joyfule 2018. 6. 13. 08:22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됩니다.

이 말씀은 천하가 두 쪽이 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믿음이 어디서 비롯된 믿음인지

그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그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턱대고 믿음이라고만 하면 오해의 소지가 많게 됩니다.

어떤 믿음이냐에 따라서 실체와 본질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육의 믿음(행위적 공덕)


육의 믿음은 말 그대로 순전히 내 의지와 힘으로 뭔가를 하여 주님께 인정받는 것으로 구원받으려는 것입니다.

거듭남보다 행위 자체로 구원받으려는 분들입니다.

봉사도 열심히 하고 뭔가를 찾아서 아주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거듭남의 의미를 몰라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 열심히 드리며

각종 다양한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는 것을 거듭남의 증표로 생각합니다.

인본적이고 사회 보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분들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죄인이기에 회개를 권면하면 매우 화를 냅니다.

그냥 부지런히 뭔가를 하면 주님께 인정받는다 여겨 그냥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가 육의 장막을 벗어나면 구원되는 줄 알고 있는 분들입니다.

말 그대로 행위 믿음 또는 행위 구원자들입니다.

이분들은 종교만 다를 뿐 불교같이 공덕을 쌓아 구원받으려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혼의 믿음(관념적 자기 신념)


현대 교인들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정말 안타까운 부류입니다. 

교리적 이론에 아주 탁월하고 줄줄 외웁니다.

자신에게 부담스러운 성경 구절은 과감히 외면하고 입맛에 맞는 성경 구절만을 집요할 정도로 집착합니다.

교리의 이론을 아는 것이 곧 믿음이라고 강하게 믿습니다.

자신의 의가 매우 강하여 논쟁하는 걸 습관적으로 행합니다.

자신과 교리가 다르면 서슴없이 공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거룩의 능력은 없고 배우고 익힌 교리적 이론만 앞세웁니다.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이미 자신의 모든 죄가 도말 되었다고 강하게 믿기에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 피를 회개도 없이 잘못 이해했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보혈 피를 관념적으로 인식만 하면 저절로 적용되는 줄 압니다.

보혈 피는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자신은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다고 강하게 믿습니다.

육의 입술로 예수님을 인정만 하면 그게 믿음이고 거듭났고 구원받은 줄 오해합니다.

거듭나고 구원받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자가 아주 적다고 경고하셨지만,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고,

자신 만큼은 무조건 구원받았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분들은 단지 혼이 작용해서 예수님을 시인한 것인지를 먼저 분별해야 합니다.


혼의 작용으로 시인하는 것은 상황과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쉽게 시인 할 수도 시인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예로... 아무 일 없을 때는 너무나도 쉽게 예수님을 입술로 시인했던 사람들이

목숨을 위협받는 일제 강점기에는 협박하는 일본의 칼날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신사참배에 굴복한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영이 아닌 혼의 작용으로 시인했기에 두려움에 떨어 이런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내 감정과 생각 또는 지식이 바탕이 되어 관념적으로 예수님을 시인하고 인정한 것입니다. 

마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역사적 지식을 통하여 알고 인정하듯

예수님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지식같이 혼으로 인정하고

그걸 믿음이라 여기며 구원받았다고 큰 오해를 합니다.

이런 분들이 늘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못 하고 주님께서 자신을 다 견인하며, 

나의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신다고 강하게 믿고 있으나 

실제는 자기 자신의 자아가 주인이 되어 자신을 이끌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인정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관념적으로는 성령께서 자신을 이끈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기에

성령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머리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지식적 이론만 앞서갈 뿐

실제는 주님이 아닌 자기가 주체가 된 혼의 신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속성이 거침없이 나와도 주님이 자신을 이끈다고 우깁니다. 

자신은 거듭났다고 굳게 믿지만, 거듭남의 열매가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에서 나오는 귀한 주님의 성품이 없습니다.

여타 이방인들과 동일하게 악한 육의 속성이 전혀 죽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주님께 의탁 되어 자연스럽게 견인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주님은 열매를 보아 안다고 하셨지만, 열매를 말하면 행위 믿음이라 참소하며 상당히 부정합니다.

자신에게 성령의 열매가 없기에 부정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머릿속에 머무는 믿음의 이론과 삶은 별개라고 여깁니다.

막연히 이미 거듭났다고 강하게 믿기에 거듭남에 대하여 도무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거듭난 신앙이 아닌, 혼적 이론 신앙에 머물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신이 거듭났다고 철저히 마귀에게 속고 살다가 때가 되어

그날이 오면 매우 이를 갈며 억울해하고 애통할 분들입니다.

교인 대부분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은 7장 23절)


아버지의 뜻은 절대 내 자아로, 내 임의로 행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죄이고 불법입니다.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 내 안의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행하셔야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혼의 믿음은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자신의 인위적 믿음일 뿐 결코, 주님은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죄로 찌든 더러운 몸을 씻지도 않고(회개도 않고) 흰옷(이론적으로만 흰옷)을 억지로 입은 사람들로서

씻지 못한 죄에 대한 열매들의 실체와 본성이 필연적으로 일상의 삶에서 다 드러납니다.

스스로는 흰옷이라고 우기지만 실제는 회색 옷을 입은 양다리 신앙입니다. 

혼의 믿음은 내 관념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을 그냥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보시기에 불법이고 반칙이고

주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나만의 세계에 빠진 허상의 믿음일 뿐입니다. 

내가 주님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알고 인정해주시느냐가 진짜 중요합니다.

거듭남이 없는 관념적 혼의 믿음에서 빨리 깨어나셔야 합니다.

왜 그토록 예수님께서 열매를 강조하셨는지...

사도들은 왜, 그 믿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확증하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크게 묵상해보시길 권면 드립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 후서 13장 5절)


거듭나기 위해 구하는 믿음


자신이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입술로만 기도하며 거듭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기도하며 이방인적 행동은 위선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이방인적 삶을 포기하려 하면서

인위적이지만 기도와 삶을 하나로 만들어 행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그 마음속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막연하나마 알고 있습니다.

그냥 죄인임을 인정하라고 하니 기계적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자신은 죄인임을 알고 애통하여 가슴을 치는 분들입니다.

애통한 마음이 강하여 인간적인 양심상 인위적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하여 거듭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분들로서

세상과 주님 사이에 머물며 주님께 다가가려고 힘씁니다.

주님은 그 마음속에 있는 동기를 귀히 여기시기에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다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기 부인만 하면 성령을 주셔서 거듭날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그 마음이 매우 귀하여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즉, 죄로 물든 때를 벗기기 위해 목욕탕으로 들어가려는 분들입니다.

자기 죄로 인하여 애통하게 기도했던 세리와 같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름다운 영적 소망이 있는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12-13절)


영의 믿음(생명 그 자체)


진실로 지극히 성경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생명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실체이자 본질입니다.

주님께서 귀히 여기시며 인정하시는 참믿음의 본체입니다.

이런 분들은 아주 갈급하게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자기를 과감히 부인하며 회개하여

승리한 분들로 결국, 주님의 인격적 실체를 직접 만난 후 성령으로 거듭나 참신앙의 길을 걷는 분들입니다.

이들은 거듭나기 전에는 자신의 혼으로 주님을 찾으려 행했으나,

이제는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셨기에 내 혼(의지)이 아닌,

성령님께서 나를 견인하고 인도하시기에 그저 단순하게 순종만 하려는 분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시인하는 것은 내 혼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시인하도록 하셨기에 뜨거운 눈물로 구세주 그리스도를 시인한 것입니다.

내 혼이 능동적으로 시인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시인하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 피를 영으로 인식하고 제대로 맛본 성도들입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이 없기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주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지켜드리기 위해 이 한목숨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김을 기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영적 믿음은 성령님께 의지하기에 철저히 수동적인 인간형으로 변모합니다.

내 뜻을 부정하며 오직 주님의 뜻에만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뭔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합니다.

남들이 보면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성령님이 그 안에서 하도록 하는 마음을 주셨기에 수동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내가 주인이 되어 모든 걸 내가 알아서 했으나,

이제는 실제 성령님이 오셨기에 나는 뒤로 밀려나고(죽고)  성령께서 나의 모든 것을 하심에 맡깁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영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하심에 순종만이 유일합니다.

철저하게 성령님께 이끌려 살기에 성령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그를 장악하여 그를 통치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님은 그를 통하여 많은 일을 하시게 됩니다.

사실... 성령님이 그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 말이 안 됩니다.

필히 나를 통해서 주의 나라 확장을 위해 뭔가를 하십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이웃을 긍휼히 혹은 사랑하게 되고, 이웃 형제의 구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섭니다.

나의 옛 자아는 없어지기에 작은 예수님의 모습이 되어갑니다.

자연스럽게 순종하며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변해갑니다.

이것이 영의 믿음입니다.

이런 분들이 주님의 택함을 받은 것이고 끝까지 경주하면 구원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분들은 아주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결론


혼의 믿음, 육의 믿음, 영의 믿음... 영의 믿음만이 진짜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입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됩니다.

이 말씀은 진리 중의 진리지만, 요즘 시대에 이렇게 전하면 

혼의 믿음, 육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조차 자신의 신념이

진짜 믿음인 것으로 혼동하여 구원되는 줄 압니다.

그게 마귀가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 간계입니다.

성경에 바울 사도가 기록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그 당시 초대교회에 유대인들의 율법적 전통이 아직 많이 남아있음으로 그것을 경계하고자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거듭난 믿음)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이미 성령으로 거듭난 걸 기정 사실화 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쓴 것임을 누구나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당시의 교인들은 매우 영성이 좋아  

많은 사람이 거듭난 믿음을 소유했기에 단순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이 제대로 알아들었던 시대입니다. 

즉, 그 시대적 영적 배경을 반영하여 썼기에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같이 영성이 매우 혼탁한 시대에 바울이 살았다면

단순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쓰지 않고, 오해 없이 분명하게 알아듣도록...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썼을 것입니다.

이렇게 써야 오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와 이 시대의 영적 수준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글이나 말은 얼핏 보면 '어'와 '아'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하게 '어' 다르고 '아' 다릅니다.

비슷해서 좇다가 멸망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것이 마귀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말 비틀기의 궤휼입니다. 

그러므로,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고 하지 말고,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믿음으로 구원됩니다. 라고 말해야 혼탁한 이 시대에 맞는 답이 됩니다.

그래야 오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됩니다... 라고 하지 말고,

구원은 성령으로 거듭나 열매 맺는 믿음으로 됩니다.

라고 해야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진품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므로 당연히 사람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밖으로 나타내십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가짜 거듭남입니다.

주님께서 심판 하실 때 분명히 열매를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거듭난 믿음은 당연히 성령의 열매가 있을 수밖에 없고,

거듭남이 없으면 당연히 성령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열매를 찾는다는 말씀은 거듭난 진짜 믿음인지 가짜 믿음인지 살피시고 심판 하겠다는 주님의 무서운 말씀입니다.

열매가 없어도 믿었으니 구원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열매 없는 믿음은 거듭남이 없는 가짜 믿음이기에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열매는 상급에 불과하다는 마귀의 교리가 얼마나 무서운 미혹의 교리인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깨닫는 사람이 복 있는 자입니다.


이천 년 전이나 요즘이나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이 아니면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의 믿음(생명)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것만이 내 영이 멸망당하지 않고 살길입니다.


랑별파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