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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내리신 교회의 평가보고서

Joyfule 2018. 7. 23. 08:50


    예수님이 내리신 교회의 평가보고서

 


모든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들이 성경적이며, 자신들의 교회가 성령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르친 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천국의 자격을 기정사실화하며, 천국에 들어가면 엄청난 상급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 믿는 거야 개인의 자유지만 말이다.


물론 자신들의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말하자면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과, 실제로 예수님의 평가가 그렇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평가가 내려진 교회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 교회의 평가보고서를 토대로 자신의 교회를 비교해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아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치 고3학생이 모의고사 성적을 토대로 자신이 가야할 대학을 가늠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모의고사 성적이 형편없는데 자신은 명문대학에 들어갈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면,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했는지 아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재수를 하면 명문대학에 들어갈 기회가 다시 주어지겠지만, 심판대 앞에서 평가를 듣는 순간에는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교회의 평가가 곧 자신의 영혼의 평가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으로부터 평가를 받은 교회의 성적표를 토대로 우리네 교회의 성적을 가늠해보고 싶다. 그 교회는 다름 아닌 초대교회이다. 초대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되고 훈련받았던 사도들로부터 세워진 교회이며, 엄청난 성령의 능력을 보고나서 모여든 유대인들로 세워진 교회이다. 당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직업과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도망치다가 잡히면 모진 고문 끝에 순교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외 없이 목숨을 걸고 신앙고백을 하였으며, 그 신앙고백대로 삶의 전부를 바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우리네 교회에 대한 평가와 비교불가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도 이 평가의 결과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사도들이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을 가르치고 성령의 능력으로 드러내며 세운 초대교회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7개 교회 중에서 칭찬을 들은 교회는 겨우 2개 교회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은 교회가, 그 질책사항을 개선하지 않으면 죄다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는 어떠한가? 초대교회들이 받은 성적표를 보면서 애쓰고 고민하며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는 초대교회가 받은 초라한 성적이,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희희낙락하며 잔치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초라한 성적을 받은 초대교회의 평가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우리네 교회가 처한 신앙의 수준을 점검하고 싶다.

 

1.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1~5)

 

에베소 교회에 대한 평가는 잘한 부분도 있었지만, 잘못된 내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버림을 받을 거라는 추상같은 평가를 하고 계시다. 그 잘못된 내용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랑이 식어져서, 그 열정적인 사랑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지상최고의 명령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계신가? 하나님이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 바로,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사무치도록 그리워서, 만나고 싶어서 안달복달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교회예배의식과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는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사모하며 갈급한 마음으로 만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이런 눈물이 바로 가증스러운 악어의 눈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무치게 그립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면, 가망 없는 죄인을 버리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에베소 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믿고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뜨거웠던 마음들은 식어갔다. 왜 그랬는지 아는가? 갈급한 마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아오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조차 없는 우리네 교회가 받을 성적표는 암울하기 그지없지 않겠는가?

 

2.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2~16)

 

버가모 교회에 대한 질책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였다는 책망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과 더불어 우상을 섬겼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가 쇠나 돌로 만든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할 리가 만무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죄다 우상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며, 탐욕이 바로 우상숭배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가 가장 많이 섬기고 있는 우상은 무엇인가? 담임목사의 사역의 목표는 목회성공이다. 죄다 중견교회이상의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웅장하고 럭셔리한 교회를 지을 헌금을 수탈하고 있으며, 교인들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들여 교회의자에 앉혀놓으라고 성화이다. 교인들이 교회에 발을 디딘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며 성공하고 싶은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자리에 앉으면 무당처럼 떼를 쓰며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렇게 맘몬의 신을 섬기고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칭찬을 듣겠는가?

 

3.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2:18~24)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냉혹하다. 그들이 사탄의 정체와 계략에 대해 무지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는 악한 영의 정체와 공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피터지게 싸워서 승리하고 있는가? 아니다. 우린 교회는 사탄과 귀신들인 악한 영에 대하여 알 생각조차 없이 두려워하고만 있다. 그러면서 거룩한 교회에 어떻게 사탄이 범접하며 빛인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두움이 귀신들이 잠복하며 공격하겠느냐는 선문답 같은 얘기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귀신들린 사람을 교회에 데리고 가면 교회 문을 닫아걸고 손사래를 치고 있으며, 귀신이 일으킨 정신질환이나 고질병 환자를 데려가면 병원을 소개시켜 주고 있다. 이렇게 귀신들의 정체에 무지하고 귀신과 싸울 생각조차 없는 교회가, 어떻게 성령이 함께 하시는 교회이겠는가?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게 하신 책망을 곱씹어보라. 교회를 환난 가운데 던지고 모든 자녀를 죽음으로 내몰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씀 말이다. 그러므로 사탄과 싸울 생각이 없는 모든 교회에 이런 재앙이 닥칠 것이다.

 

4. 사데 교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1~3)

 

사데 교회의 평가 역시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니 실상은 죽은 자라고 말이다. 그 이유는 행위의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어떤 교회가 사데 교회에게 하신 예수님의 책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예수님으로부터 완벽한 믿음을 인정받을 교회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날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 그리고 죄악을 낱낱이 고백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회개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회개는 차치하고 기도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교회가 허다하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심으로 우리에게 거룩하심을 요구하시고, 자신이 온전하심으로 우리에게 온전함을 바라고 계신다. 그러한 능력 역시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1분짜리 영접기도로 성령이 들어오셨다고 가르치는 우리네 교회에, 어떻게 자신에게 성령의 능력이 없음을 통곡하며 애통하는 교인들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기가 막히는 일이다.

 

5.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14~20)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먼저 미지근한 믿음을 질책하고 계신다. 뜨겁지 않으면 차가우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믿음이 차갑게 식은 상태라면 자신도 잘 알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뜨뜻미지근한 상태는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기만족의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각종 교회봉사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내세우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 추구하는 종교의식과 신앙행위는 성경에서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다. 당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성령께서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기적과 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는 종교적인 신앙행위들은 자신의 종교적인 취향만을 만족시켜 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은 안식일 준수와 십일조, 십계명을 포함해서 6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꼼꼼하게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독사(귀신)의 새끼라는 책망을 들으며, 두로 다니며 교인 한사람을 만나면 배가 지옥자식을 만든다는 저주를 듣고 지옥에 던져졌다. 그들이 준수한 율법의 행위들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는 성경에도 없는, 오랫동안 교회의 관행으로 자리 잡은 종교의식과 신앙행위들을 하면서,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가 없이, 건조하고 냉랭한 마음으로 형식적인 종교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면 예수님이 토하여 낼 것이 분명하다.

 

또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이 부자이며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예수님이 말하는 부자는 재물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믿음의 부요한 자를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들은 믿음이 크고 견고하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벌거벗고 있음을 모른다고 책망하시면 안약을 사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직시하라고 일갈하고 계시다. 우리네 교회는 자신들이 신앙고백을 하고 주일성수를 하며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신앙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잣대인가? 아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믿음을 평가하고 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믿음에 대한 성경의 잣대는 무엇인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17,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위의 구절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의 표적이며 잣대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위의 구절은 사도시대에 끝났으며, 이 시대는 성경이 완성된 시대이므로 성령의 능력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서둘러 성경을 덮고 있다. 그리고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나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에 박차를 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때를 기다리다 늙어 죽은 교인들은 무엇이며,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를 가장 잘 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믿음의 능력을 드러내고 있는가? 즉 우리네 교회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며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예수님은 문밖에서 서서 우리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는 우리네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런 말씀은 기이하기 그지없다. 성경은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증거는, 기쁘고 평안한 영혼과 더불어 말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며 증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이런 저런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비틀어서, 자신의 목적에 짜깁기하며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다.

 

이상이 7개의 초대교회 중에서 책망하신 5개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이다. 예수님이 직접 훈련시킨 사도들이 세웠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생겨난 초대교회조차도 시간이 지나자 변질이 되어 지옥에 던져질 위기에 놓여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를 살펴보면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아는 게 어렵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통곡하며 회개하고 자신의 죄악을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내며, 날마다 죄와 싸워 승리하여 흰 세마포 옷을 입지 않는다면 천국에서 볼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