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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을 찾아서 - 고정숙

Joyfule 2008. 1. 3. 00:49

유년을 찾아서   -  고정숙 
2007년 수필동인지(아무도 모르는 시작) 에서     
오랜만에 친정집에 방문했다가 50년 대 다녔던 시골 초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 출신 국회의원이 수영장과 강당을 지어 예식장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얼마나 변했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어린 내가 선생님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는지 솔깃한 심정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교무실에는 아들딸과 같은 연배의 선생님 서넛이 있었다. 
‘이 학교 34회 졸업생입니다. 학적부 좀........’ 
지금까지 보관이 되었으랴 싶었는데 잠시 후 깨끗하게 보관된 두툼한 학적부 철을 가져왔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단발머리에 고개를 갸웃하고 내 동생 같기도 하고 막내 같기도 한
 7살 아이가 가녀린 미소를 띠고 거기에 있었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다듬고 아래를 훑어보았다. 
불러본 기억도 없고 얼굴 맞대고 살아본 기억도 없는 
아버지 어머니가 33살 26살인 채 부모님으로 적혀있었다. 
기록부에는 음악에 재질이 보이고 문예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과 
6학년 선생님의 나의 대한 언급은 고독을 느끼는 아이라고 적혀있었다. 
어쩌면 이리도 내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누가 묻기라도 한 것처럼, 감정이 고조되어 이야기를 했다. 
수필신인 등단소식에 
글짓기 숙제를 해가지고 빨간 색연필로 달팽이 점수를 많이 받았던 기억과 
오르간 소리에 심취되어 피아노 공부를 해서 네 아이를 모두 음악을 시켜
 이제 막내까지 졸업을 했노라고 설명을 하니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복사해 드릴까요?’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교무실문을 나섰다. 
지나가던 어린 아이가 선생인 줄 알았던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풍금이 있었던 6학년교실엔 자료실이 되어 있어 
그때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악기들이 즐비하니 놓여 있었다. 
오르간 건반을 손끝으로 눌러보니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 바람통을 발로 눌러줘야지’ 운동장에 나무 그림자가 길게 누운 오후 
친구와 필기경시대회 준비하던 3학년 시절 모습이 떠오르고, 
수업시간에 먼 산을 보고 있다고 야단을 맞고 
복도에 나가 한 시간 동안 손들고 벌을 섰었던 5학년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마법에 걸리 듯 유년의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교사 뒤뜰 양지바른 곳에서 나누어 주던 우유드럼통, 
교장선생님의 사택 앞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공기놀이 하던 아이들, 
고무공을 튕겨 치마뒷자락에 집어넣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눈에 어린다. 
고무줄뛰기를 잘 하던 그 애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청군 백군 나뉘어 힘차게 응원하던 운동회의 함성이 귀에 쟁쟁하고 
달리기를 하여 난생 처음 3등상을 받았던 기억이 나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웃음이 터지는 일이 또 있다. 
3학년 자연시간에 선생님께서 
‘사람은 어디로 아기를 낳지?’ 하시는 질문에 한동안 반 전체가 조용하였다. 
서로 쑥스러워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남자애들 하고 딱지치기 하고 구슬치기도 잘하던 경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요.’ 했다.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교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어대던 아이들, 
선생님께서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말씀을 못하시던 
그때 그 시절을 우리 동창생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잊고 있겠지만 나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반에서 이웃돕기를 했는데 그 대상으로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사는 내가 뽑힌 것이다. 
아이들은 연필, 지우개, 노트 그리고 돈까지 거두어서 내게 안겨주었다. 
부끄럽기 한이 없었던 일이다. 
어릴 때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칭찬은 잠재하는 가능성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비록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도 항상 음악과 책을 가까이 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들의 칭찬과 격려가 지금에 나를 만들어 냈으리라. 
초등학교를 다녔던 학교를 무심히 찾았다가 
놀랍게도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감동어린 순간들은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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