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의 형성과정 - 박정수 교수
II. 고대유대교의 기초: 페르시아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예언활동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만이 아니라, 정치 현실에 삶의 자리를 두고 있었다.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에도 예언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에 집중되고 있을 만큼 정치적이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이 독립적인 국가로 존속할 수 없었고, 더 나아가 하나의 독립 종교로의 길을 가게 됨으로, 예언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삶의 자리를 정치적인 현실에 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언은 세계와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회적인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현존 질서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종교적 비전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현실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묵시는 그러한 정치적 현실과 멀어지는 경향을 가진다. 묵시는 그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야웨의 주권에 대한 우주적인 상징을 통해서 현실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예언은 역사를 지향하지만, 묵시는 신화를 통해서 역사를 함축적 현실로 파악한다. 그래서 묵시는 탈역사화되지는 않지만, 역사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상호간의 현상을 예언의 ‘메타화’(meta化) 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예언이나 묵시가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루지만, 예언이 그것의 역사적 회복을 지향한다면, 묵시는 ‘야웨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회복으로 함축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그것의 전승사적 상관성과 독립적으로 묵시는 예언의 새로운 언어요, “새로운 어법으로서의 예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예언자들과 묵시가들의 기능은 차별화된다. 즉, 예언자들은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탁의 ‘대언자’이었지만, 이제 묵시가는 역사를 넘어서는 신화적 상징에 대한 ‘해석자’들이다. 전통적인 예언자들의 기능은 “야웨가 말씀하셨다”라는 야웨의 신탁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묵시의 특징은 그것을 받는 자들에게 아직 닫혀 있다는 것이다.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사 29:11).
묵시가의 기능은 오히려 그것을 ‘닫는’ 것으로까지 표현된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12:4). 이것으로 묵시가는 신적인 지혜를 가진 자로 제한된다. 우리는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 종교가 범세계적으로 변형되어 가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대표적인 특징인 예언의 기능이 이와 같이 변형되고 있는 것은, 분명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변화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교를 특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이러한 관점으로 우리는 묵시의 기원을 지혜전승과 연결시키고자하는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Von Rad에 의하면 묵시문학을 예언전통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묵시와 예언전승이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묵시문학은 역사에 대한 결정론적 이해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인식의지’는 지혜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예언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야웨에 대한 고백전승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Von Rad의 주장은 그 후 H. P. Mueller에 의해 수정될 수 있었는데, 그는 지혜전승의 흐름을 잠언적인 지혜와 점술적인 지혜(mantic wisdom)로 구분하여, 묵시를 점술적 지혜와 연관시켰다(단 2, 4, 5장 사 19:11-13, 44:25 등). James C. VanderKam은 이 점술적 지혜는 바빌로니아의 지혜와 유사한 것으로 유대의 묵시문헌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1에녹서 1-36장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이 묵시저작은 예언전승보다는 우주론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학자들은 제1에녹서 1-36장이 다니엘서와의 연관성을 부각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니엘서가 내포하고 있는 묵시의 두가지 현상, 즉 예언과 지혜의 요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시의 기원을 예언, 혹은 지혜로 양분된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묵시문학이 예언적인 요소와 지혜문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 자체로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종교의 역동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관점으로 다음 장에서 구체적인 문헌들을 다루며 지혜와 묵시의 성격을 규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승의 역동적 진화현상은 변화하고 있는 세계를 단지 역사 안에서 뿐만 아니라 신화 안에서 파악하고, 이스라엘의 구원자 야웨를 동시에 우주론적 계획을 지배하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은 이제 이 역사 안에서 만이 아니라, 역사 밖으로 이전되는 어떤 것이 된다.
예언자들은 더 이상 이 땅의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신탁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좀 더 환상적인(visionary) 상징 언어로 보편적인 구원과 세계질서 안에서 현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상징 언어는 묵시가들에 의해서만 해독될 수 있는 암호(code)화 되어 있다. 비록 그들이 한 개인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들 배후에는 이 세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묵시로 살아가는 어떤 동질의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의 묵시는 현실과의 긴장(구심력과 원심력)에서 지속적으로 종말을 향해 뻗어나간다.
2) 토라와 지혜의 만남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내적인 변화를 파악하는 또 다른 전승은 토라와 지혜이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성전 재건 이후 ‘유다 공동체’의 목표는 귀환공동체의 야웨 신앙을 ‘표준으로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표준’은 단지 국가적 차원에서만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집중되었다. 그것이 토라의 연구이다. 토라의 연구는 이스라엘 땅에서의 성전 예배가 가능하지 않았던 유배지에서, 그것에 대한 대안이 되는 종교적 실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토라의 연구가 성전 자체의 기능을 대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제2성전의 파멸이후에나 가능했지만, 회당을 중심으로 한 토라 연구는 포로기 이후 유대교적 삶을 구현하는 매우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수단이 되었다.
토라는 성전 예배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성전 제의가 추구하는 이스라엘의 삶의 정결을 구체화하는 삶의 규범이기도 했었다. 그러기에 이제 토라는 이스라엘의 삶의 전통적인 방법을 표현하는 지혜와 만나게 된다. 이렇게 성전과 토라는 고대 이스라엘의 유산을 물려받은 ‘참다운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을 종교적으로 구현하는 핵심에 서게 된다. 이제 이스라엘 종교는 새로운 민족종교로의 길을 간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정치적이 독립이 아닌 종교적 독립으로 방향을 전환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토라는 이제 모세의 성문율법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조상들의 삶의 경험인 학가다와 그것을 준행하는 방법을 제시한 토라의 해석인 할라카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토라는 ‘율법의 가르침’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후로 유대교의 모든 성전에서의 하나님 예배와 의식, 그리고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살아있는 실체가 되었다. 이것은 귀환 공동체의 삶의 기초를 토라위에 놓아, 이른바 ‘율법의 백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토라가 이스라엘의 삶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에 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토라의 올바른 실천과 연관되었다.
M. Noth는 이스라엘의 지혜전승의 흐름을 제도적 차원의 다양성에 따라 “씨족 지혜,” “궁중 지혜,” 그리고 “율법 지혜”로 분류한다. 이들 지혜의 삶의 자리는 각각 가족과 부족, 국가, 그리고 포로기로부터 본격화 된 토라 해석 및 적용이었으며, 그 전승자들은 부모 와 장로, 국가 서기관, 그리고 율법 서기관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율법 서기관의 등장은 시기적으로 포로기 직전의 신명기적 서기관에 기원을 두었으나, 에스라나 느헤미야 시대에 귀환공동체의 이스라엘의 회복 프로그램과 연관될 것이다.
M. Noth는 이들 신명기적 서기관들은 지혜전승에 대해 호감을 갖는 자들로서 지혜와 토라를 동등하게 다루려는 경향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이 경향은 지혜의 삶의 자리와 전승자들을 정치적 서기관들에게서 종교적 법률적 서기관들에게로 이전시키는 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가 임명한 공식부문에서 율법을 다루는 서기관들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적(유대교적) 틀 속에서 토라를 다루는 이른바 “완성된 토라 서기관”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토라와 지혜의 만남을 율법서 자체에서 발견하게 된다:
“너희는 [그것들을]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6). 좀 더 후기에 속하는 구약의 시편들 가운데 지혜적인 언어와 사상을 담은 ‘율법시편’들(1장 119장)에서도 율법과 지혜가 연관되고 있다: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119:66).
더 나아가 지혜는 세계의 모든 영역에서 매우 경험적인 사색을 통하여 한 개인이 세계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그래서 지혜는 율법이나 예언과 같은 전통적인 하나님의 계시와는 다른 형태로 사회적 관계와 정치질서, 그리고 가정 등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관계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개인’의 부각, 이유 없는 고난에 대한 질문, 인간의 궁극적 한계와 운명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르게 된다. 이제 지혜는 토라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유산을 전수하려는 모든 유대교적 삶과 연관된다.
우리는 다음 절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벤 시라서에서 바로 이러한 토라와 지혜의 합류된 전승의 최고봉을 보게 된다. 벤 시라는 그의 선조들과 같이 토라의 중심에 서 있는 ‘하나님 경외’를 지혜의 본질로 이해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지혜를 갈망한다면 계명을 지키라. 주께서 그것을 네게 주셨다.”(벤 시라 1:26 cf. 1:16; 19:20; 21:11: 23:27) 말하자면 그는 기나긴 토라의 전통을 지혜자로서 수용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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