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의 형성과정 - 박정수 교수
II. 고대유대교의 기초: 페르시아 시대
2. 고대유대교의 틀: 성전과 토라
성전의 재건으로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은 단지 상징적으로만 성취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성전예배는 국가의 공식부문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 삶의 한 복판에 자리하게 되었다. 성전은 속죄가 이루어지고, 공동체에 속한 백성들의 부정(不淨)이 실제적으로 제거되어 이스라엘의 회복이 구현되는 거룩한 곳으로 확고히 서게 된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도 성도(聖都)로서 이 모든 종교적 상징의 중심에 존재한다. 성전의 이러한 외연적 확장은 “거룩한 땅”에까지 이른다.
귀환공동체는 야웨가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야웨의 이스라엘 회복은 거룩한 땅의 회복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레 18:24-28 cf. 창 15:16 신 9:5). 성전의 지성소에서 이스라엘의 땅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것과 부정한 한 것과의 ‘분리’에 대한 유대교적 신앙의 중심에는 포로기 이후에 이루어진 제사문서의 신학이 배후에 있었던 것이다.
포로기 이후 제사문서에 나타나는 이른바 속죄 공식이 나타나는데 -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4:20. 26. 31. 35; 5:10. 13. 16. 18; 6:7 ... )-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이상에 담겨진 거룩한 구별을 표현하는 종교적 문법이 된다. 이 성전 예배와 속죄를 담당하는 계층으로서 제사장과 성전 관리들이 존재했다. 페르시아 시대에 그들은 성전 자체보다도 그것이 매개하는 국가적 공식부문인 성전 제의를 통해 귀환 공동체의 야웨신앙을 ‘유다 공동체’의 삶의 저변으로 확대함으로써, 고대유대교의 규범적인 틀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다.
성전 재건 이후 통합된 ‘유다 공동체’의 종교적 실천과 사회적 규범은 무엇보다도 귀환공동체의 야웨 신앙을 ‘표준’(canon)으로 세우는 것이었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귀환공동체가 주도한 팔레스타인에서의 개혁 프로그램은 이 ‘표준’에 의해 진행된다. 에스라가 공동체에서 모세의 율법의 책인 ‘토라’(hrth)을 읽어 선포한 것은(느 8:2) 귀환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삶 전체를 규정했던 토라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토라의 형성은 단지 귀환 공동체의 신학적인 작업만이 아니라, 사회사적으로 구약성서의 정경화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E. Blum에 의하면 에스라의 개혁 프로그램은 페르시아 중앙정부가 실행한 제국내의 지방 자치정부들에 대한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바, 제국내의 피통치 민족들의 삶을 규정하는 규범적인 본문들의 형성 작업과 연관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구약성서의 정경화 작업의 첫걸음이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이 정경화 작업은 이후 ‘참다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의 기초 문서가 되는데, Albertz는 이 정경화 작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집단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지지 않은 유다 공동체의 지도자 계급이었던, “장로 협의회와 제사장 학교”였다고 규정하며, 제사장 문서가 이들의 신학적 기초를 놓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서의 정경화 작업이 포로기 직후 ‘이스라엘의 회복’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국가적 공식부문의 또 다른 측면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정경화 작업에 기여한 그룹들의 신학을 전승사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경화의 핵심은 오경(Pentateuch)을 주축으로, 성전재건이 이루어진 515년경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제사장과 평신도 지도자 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의 서기관이며 제사장인 에스라”(스 7:21. cf. 7:11)는 그러한 인물에 가장 잘 부합된다. 이 “모세의 율법”은 이미 포로기 이전에 성문화 되었다.
요시아의 시대에 성전에서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이 발견되었고(대하 34:14), 그것은 “모세의 책들”(대하 25:4)로서 인정되어 있었다. ‘토라’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하였고, 에스라는 이러한 성문화된 토라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토라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프로그램의 또 다른 프로그램인 공식적인 정경의 확립과정에서 성전과 함께 고대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틀로 자리매김 되었다.
구약 이스라엘의 종교는 포로기 이후 고대유대교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매우 괄목할만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시초는 이미 포로기에 이방인을 통한 이스라엘의 역사 패망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성을 신학화한 이른바 ‘신명기 신학’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스라엘은 야웨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북왕국과 남왕국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선언이다.
신명기 신학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비전은 제시되고 있지 않기에 하나님의 계약의 유효성과 선택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였다. 하나님이 그의 선택한 백성을 버리심으로 자신의 은총을 폐기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가 이 세계의 하나님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제 ‘선택된 백성’의 삶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그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신념, 그리고 종교의 개인화라는 길을 추구하게 된다.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해 나간다. 그들에게 야웨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이시다. 그는 민족주의와 보편주의의 긴장 속에서 이제 유일한 한 공동체 속에서 한 민족사를 넘어 세계를 통치하시는 경륜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 다만 연단하실 뿐이다. 그의 은총은 자신이 정하신 도구인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유지하신다.
속죄와 성전(聖殿)은 하나님의 용서와 종말론적 임재로서의 그의 통치를 구현하는 가장 상징적 언어이다. 이스라엘에 제사장이 그것을 매개하듯이, 세계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그의 구원을 매개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거룩한 민족’으로 서게 된 것이다. 이제 ‘참다운 이스라엘’의 삶은 율법을 따르는 삶이다. 율법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법과 규범이 아니라, 종말의 질서로 살아가는 온 이스라엘의 유일한 삶의 형태로서의 ‘토라’이다. 이 삶의 형태는 그대로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의 예표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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