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진정한 ‘용인술’에 대해 영화 ‘벤허’의 전차 장면을 예로 들곤 한다고. 멧살라는 채찍으로 말을 강하게 후려치는데 벤허는 채찍 없이 경주에서 이긴다. 이 회장은 벤허가 경기 전날 밤 네 마리의 말을 어루만지면서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에 용인술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인간미’를 가장 중요한 리더십 요소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미의 본질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입니다. 무조건 부드럽고 싫은 소리를 안 하는 것이 인간미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상사가 부하의 잘못을 지적하고 지도하기 위해 꾸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미의 발로죠. 단 질책은 정말 그 사람을 키우기 위해 자극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해야 합니다.”
회사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끼쳤더라도 실패한 경험에서 교훈을 처절하게 체득했다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라는 게 이 회장 지론이다. 수년 전, 이 회장은 사장들을 모아놓고 종합비타민제를 나눠주며 “여러분 중 회사에 수백억 손해 끼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몸이 아프면 제가 손해입니다. 실패한 경험에서 많이 배웠을 테니 이제 약 잘 먹고 건강관리 잘 해서 실패를 만회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그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좌절을 딛고 성공했을 때 전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무리 능력 있는 최고경영자라 해도 모든 사업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무조건 버리면 인재를 잃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편 그는 리더로 성공하려는 젊은 인재들에게 “윗사람만 신경 쓰는 ‘I자형 인재’가 아니라 자기 일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 대해 입체적으로 사고하며 옆, 아랫 사람들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는 ‘T자형 인재’가 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리더의 조건으로 전문성과 도덕성, 비전 제시 능력, 일에 대한 열정, 변화와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 등 다양한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많이 알고, 실천력이 있으며, 사람을 제대로 다루고, 지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2세들에게도 인간 이해 폭 넓히는 교양 강조하고 ‘사람 다스리는 법’ 전수
이 회장의 리더십은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등 2세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이재용 상무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것부터 그의 리더십 수련과 관련이 있다. 대학 전공을 놓고 고민할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이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교양을 쌓는 학부 과정에서는 사학이나 문학과 같은 인문과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외국에 유학가서 배우면 좋겠다”고 조언했던 것.
이재용 상무는 23세에 삼성에 입사해 33세에 임원이 되었다. 후계자들은 보통 ‘아버지의 밥상머리’에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선대부터 내려온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곁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이 회장은 자식들에게 사람을 다스리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며 “이 상무가 임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교육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무서울 정도”라고 말한다.
이 상무는 이 회장의 지시로 국내외 경영현장에 자주 출장을 가는데 이때 현지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스킨십을 통한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다. 또한 전문성을 쌓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 전문가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데, 요즘은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나 핵심 임원들도 그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