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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본 한국과 이웃나라들 -

Joyfule 2011. 9. 24. 12:14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본 한국과 이웃나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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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말에서 1900년대초의 여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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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있는 여인은 젖가슴을 내놓고 다니는것이 챙피한 것이 아니었던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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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젖을 먹이고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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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Korean women carried heavy loads on their heads
in 1945

1945년 까지도 젖가슴이 보이는 것은 그리 큰 흉이 아니었던듯 하다.

불과 60여년 만에 성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몸의 어느 부위 노출을 창피하게 여기게 되었는지 등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 시각에 큰 변화가 생긴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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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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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당시 장례식에 입던 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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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퀴 하나 달린 인력거가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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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오케스트라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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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의 외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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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디미질 하는 여인.  그옆에 있는 긴 담뱃대가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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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치는 광경.. … (흠..쓰고 나니 뉘앙스가 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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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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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 자세가 들어있는 동전. 일종의 다산을 기원한는 부적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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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인의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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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숍(Bishop, Isabella Bird ; 1831-1904)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지리학자.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이 실려 있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체험과 관찰을 통하여 19세기 말 한국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비숍 여사는 1894년부터 1897년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11개월에 걸쳐 현지 답사를 했다.

1904년에 사망할 때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조사하고 연구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 영국 여성들의 우상적 존재였다.

 

그녀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 사이 네 차례 조선을 방문했다.

 

 11개월간은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 방까지 찾아가는 답사여행을 했다.

 

 버드 여사가 돌아가서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은 1898년에 나왔고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11판까지 찍었다고 한다 .

 

 머리글에서 버드 여사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 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 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 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 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 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 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썼다.

 

   버드 여사는 이 책의 맨 마지막 文段에서 한국을 떠날 때의 기분을 이렇게 적었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 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 스러운 한국의 겨울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영국 정부의 작은기선인 상 하이行 헨릭 호를 타고 무자비하고 엄혹한 북풍에 실려 제물포를 떠났다.

 

헨릭 호가 강 위로 천천히 증기를 발산하며 움직일 때, 예스러워 흥취 있는 한국의 國旗(국기)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의문들을 자아냈다>

 

   시베리아 한국인의 놀라운 가능성

 

   비숍의 취재기는 기자와 작가의 능력을 겸비한 결과물이다. 100년 전의 한 국인 모습을 이 책만큼 사실적으로, 또 사례 중심으로 생생하게 전해 주는 책은 달리 없다.

 

  「艱難(간난)에 견딜 줄 아는 강인하고 공손한 민족이 살고 있고, 거지 같 은 극빈계층도 없으며 풍요한 연안 자원도 있는」 한국의 잠재력이 관공서 의 부패와 부정으로 해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데 대해서 비숍은 안타까워 한다.

 

     그 속에서 나는 한국의 첫인상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한국의 바다에 땅에 가난에 견딜 수 있는 국민 속에 있음을 보았다.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단지 두 계급, 즉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 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5분의 4인 문자 그대로의 「하층민」인 평민계급이 그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시베리아 韓人들의 의연함

 

   비숍은 한국인들이 이주해 가서 살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遠東(원동 )지방의 한국인 정착촌도 방문했다.

 

  이곳의 한국 남자들에게 는 고국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풀 죽은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토착 한국인들의 특징인 의심과 나태한 자부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근성이 주체성과 독립심, 아시아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영국인의 것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다움으로 변했다. 활발한 움직임이 우쭐대는 양반의 거만함과 농부의 낙담한 빈둥거림을 대체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고 만다린이나 양반의 착취는 없었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은 번창하는 富農(부농)이 되었고 근면하고 훌륭한 행실 을 하고 우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갔다. 이들 역시 한국에 있었으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고 절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했다 .

 

이들은 대부분 기근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배고픈 난민들에 불과했었다. 이들의 번영과 보편적인 행동은 한국에 남아 있는 민중들이 정직한 정부 밑 에서 그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천천히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에게 주었다>

 

조선은 거대한 빨래터

 

서양인의 눈에 비친 100년전 조선의 모습은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기록 곳곳에는 그들이 조선에서 느낀 악취, 더러움, 혐오스러움이 매우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이 입고 다니는 순백의 옷이 더더욱 신기했던 것이다.

 

   서울의 성벽 안쪽을 묘사하는 일은 어쩐지 피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지리학자.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이 실려 있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체험과 관찰을 통하여 19세기 말 한국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비숍 여사는 1894년부터 1897년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11개월에 걸쳐 현지 답사를 했다.

1904년에 사망할 때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조사하고 연구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 영국 여성들의 우상적 존재였다.

 

그녀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 사이 네 차례 조선을 방문했다.

 

 11개월간은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 방까지 찾아가는 답사여행을 했다.

 

 버드 여사가 돌아가서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은 1898년에 나왔고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11판까지 찍었다고 한다 .

 

 머리글에서 버드 여사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 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 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 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 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 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 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썼다.

 

 

   버드 여사는 이 책의 맨 마지막 文段에서 한국을 떠날 때의 기분을 이렇게 적었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 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 스러운 한국의 겨울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영국 정부의 작은기선인 상 하이行 헨릭 호를 타고 무자비하고 엄혹한 북풍에 실려 제물포를 떠났다.

 

헨릭 호가 강 위로 천천히 증기를 발산하며 움직일 때, 예스러워 흥취 있는 한국의 國旗(국기)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의문들을 자아냈다>

 

   한국 사람들은 과음하는 관습이 유난스러워서 주정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 내가 한강을 여행하며 관찰한 결과로는 취해버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품위를 떨어 뜨리는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곡주를 마신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1897 )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본 “한국과 이웃나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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