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PRE><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9c; LINE-HEIGHT: 18px;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B>
<IMG height=180 src="http://100.file.daum.net/art/k/k03n023609p4.jpg" width=150 align=left>
아버지는 정(貞)이며,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로
수림(守琳)의 딸이다.
서울 건천동(乾川洞:
지금의 중구 인현동 부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시골 본가는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백암리이나
어린시절의 대부분은
생가인 서울 건천동에서 자란 듯하다.
★ CEO, 이순신에게서 배워라 .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투시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순신을 통해 장수와 전략가가 이룩한
탁월한 전공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과,
관습을 과감히 돌파는 개혁의 의지, 휘하 장수들과 함께 합의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창출하는 과정 등에서 CEO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은 전략의 원칙을 중시했다.
군사전략과 경영전략의 원리는 같다.
현대의 경영인 혹은 지휘관들이 춘추전국시대에 쓰인《손자병법》을
리더십의 지침으로 삼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순신은 바다에서 적을 대함에 있어 철저한 분석과 정보를 근거로,
승리를 확정한 상황에서만 전투를 벌였다.
그는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潮流)를 완전히 파악했다.
전라좌수영의 관할해역과 더불어 대부분의 해전이 벌어진
경상도 해안까지 현장답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피난민과 포로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원과 정탐선을 투입해
적진의 형세와 이동경로 등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를 반영하여 이순신은 해전에서 기습과 같은 공격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만, 아군이 기습에 노출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영에서도 경쟁기업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을 최대환 활용하고,
피아의 장·단점을 정확히 분석하여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하여 삼도수군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후,
조정은 백의종군에 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명했다.
그러나 이미 통제사 이순신에게 남아있는 전력은 아무것도 없었다.
칠천해전 당시 도주한 경상우수사 배설의 전선 12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군비가 전무(全無)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순신은 육로로의 남행을 단행한다.
전날 조정에서의 모진 고문으로 인해 심신이 쇠약해진 이순신에게
육로를 이용한 남행은 고된 강행군이었다.
또한 그의 행로가 왜군이 진군하는 길과 일치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적의 보급병이나 정찰병과 언제든지 조우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의 허를 찌르는 과감한 행동을 취했다.
그는 적의 동향을 살피며 이동했다.
적들은 이순신이 바로 자신들의 곁에 붙어 진격로를 따르며
동향을 살필 줄은 미처 몰랐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을 허점을 찌르는 대담함이 돋보이는 지휘관의 면모이다.
이순신은 이 남행길에서 민심을 수습했다.
삼도수군의 궤멸로 백성들은 불안을 느꼈고 피난행렬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순신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부지방 장정에 나서자
피난민이 줄고 백성들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순신이 초계를 출발할 당시에는 휘하 군관이 9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각 고을을 지나며 흩어졌던 군사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또한 이순신의 복권이 알려지자 의병장들도 늘어났으며
일부 승려들은 의병 사령장을 써달라고 했다.
또한 이순신은 대장정 도중 각 고을 현감들과 만나며
그들이 가졌던 불안감을 해소시켰다.
진주목사, 남해현감, 고산현감 등이 이순신과 뜻을 함께 하며
자신감과 행정력을 복원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불어 군사들이 사용할 무기를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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