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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소개

Joyfule 2016. 8. 23. 10:42

 

  이슬람교 소개
  
이슬람교는 10억 이상의 신도를 가진 세계 최대의 종교 중 하나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람의 이미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와 함께 낙타를 탄 베두윈족,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인들, 지하드의 정당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과격 근본주의자들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항상 정확하지만은 않다. 총 7억 이상의 가장 많은 이슬람 인구를 보유한 10개국 가운데서 단지 3개만이 중동에 있다. 믿든 믿지 않든, 이슬람은 아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지대공 미사일보다는 어망을 사용하는 무슬림들이 더 많고, 사막보다는 강우림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의 식량은 석유가격보다는 전쟁과 기근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되고 대부분은 선교사역이 가능한 지역, 심지어는 환영받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 무슬림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믿음은 무엇인가? 어디서 사는가? 그들에게 다가서기 위하여 어떠한 선교의 노력이 행해져야 하는가? 이 기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목차

역사
모하메드의 출생
이슬람 형성의 세월
첫번째 주요 위기
시아파 이슬람의 시작
분열과 또 다른 작은 분열
무슬림은 무엇을 믿는가?
이슬람 세계를 향한 기독교의 선교
주요 이슬람 종족들
무슬림을 위하여 기도하는 방법
그 밖의 읽을 거리
이슬람에 대한 또다른 정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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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슬람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1. 세상에 얼마나 많은 무슬림들이 있을까요?
  2. 대체 어떤 "남자"가 이슬람의 창시자라고 간주되고 있나요?
  3. 평균적인 무슬림 여성은 몇 명의 자녀를 두고 있을까요?
  4. "이슬람"이라는 아랍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5.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5개의 나라는 어디일까요?
  6. 이슬람 성경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7. 이 책은 어떤 언어로 쓰여져 있을까요?
  8. 무슬림들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의 주 이름은?
  9. 이슬람의 5가지 기둥뿌리(중심 의무사항)는 무엇일까요?
  10. 15% 이상의 무슬림을 가진 남미의 나라 이름은?
  11.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그들은 어떤 도시를 보고 하지요?
  12. 그럼 이 도시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요?
  13. 가장 많은 비율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유럽(러시아 포함)의 5개 나라 이름은 뭘까요?
  14. 이슬람의 두 가지 주요 파벌은 뭐죠?
  15. 무슬림은 그들이 예배하는 장소를 뭐라고 부르나요?

 


역사
모하메드의 출생:

모하메드는 서기 57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두 달 전에 죽은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구별되는 아랍 부족 중 하나인 "코레이쉬족"에 속해 있었다. 아직 청년시절이었던 때, 모하메드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하여 일상노동의 필요에서 해방되었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종교적 명상에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유대교와 기독교가 중부 아랍 부족에 의해 받아들여졌지만, 우상숭배가 그들의 고대 제의를 대신했을 뿐이었다.

모하메드는 명상과 기도를 위해 매년 히라 산으로 가곤 했다. 산에서부터 돌아온 지 1년만에 모하메드는 자신을 신의 선택된 예언자로 선언했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산의 동굴에 있는 동안 첫번째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메카로 돌아오자, 그는 9년 동안 자신의 메시지를 설교했으며,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하나가 태동하면, 이것은 다른 기존의 신앙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법이다. 결국, 612년에 그는 자신의 추종자에게서 적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경고를 받고 도망가야만 했다. 이러한 피신이 이슬람 달력의 시초가 되었고 헤지라(Hejirat) 1년이 되었다. (헤지라는 "도망 또는 이주 후"라는 의미이다.) 그의 도망으로 그는 추종자들을 얻었고 630년에는 코레이쉬족의 손아귀로부터 메카를 빼앗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그 후 모든 아라비아에서 "예언자"로 인정을 받았다.

모하메드는 메카로 돌아온 후 2년만에 사망했으며, 그의 일생 동안 그의 추종자들은 조심스레 그의 말과 환상들을 필사했는데, 이것은 그 자신은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645년에 즉. 그가 죽은 지 10년 후에 알리(모하메드의 의형제)와 다른 지도자들은 이러한 모든 필사본들을 모아 합쳐서 "코란"(Qur'an)을 만들었는데, 114개의 장과 6236개의 절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슬람 신자들에게 성경처럼 되었다.

이슬람 형성의 세월:

모하메드의 시기 이후에, 무슬림 공동체는 여러 집단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는 신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것만큼 정치적인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가 중요했다. 이슬람 사상의 발전에 있어 형성기는 사상의 흥미진진한 전쟁터였으며, 결국 정통 수니파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분파로 귀결되었는데, 이 "수니파"(Sunni)는 대다수 무슬림들이 따르는 확립된 교조가 되었다. 주요 이슈는 믿음과 행위, 운명예정과 자유의지, 계시와 이성, 신의 유일성이 함축하는 것, 코란의 영원성,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모하메드가 622년 9월에 메디나로 도망을 간 것이 이슬람 시대의 기원을 이루었고, 632년 6월의 그의 죽음은 상당한 권력과 명예를 갖는 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케 했다. 이 짧은 10년의 기간 동안, 사막에 거주하는 아랍의 베두윈 부족들 대부분은 이슬람의 예언자와 동맹을 맺겠다고 서약했으며, 이것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알라신의 새로운 신앙을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죽음은 유아기의 이슬람 공동체에 첫번째 주요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어지는 위기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필경 수니파와 시아파로 영원히 나뉘도록 한 것의 시초가 되었다.

첫번째 주요 위기:

모하메드가 살아있는 동안, 무슬림들은 그가 이슬람의 계시된 메시지에 따라 가장 훌륭한 지시를 내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가 메디나에서 죽자, (적어도 다수파의 관점에서 보면) 예언자가 그의 후계자에 대한 형식적 지시나 유언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심각한 혼란상태에 빠졌다. 계속되는 토론 가운데서, 단 한 가지 점에서는 즉각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신의 계시를 통하여 모하메드는 "예언자들의 봉인"(Seal of the Prophets)이라는 것이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예언자의 후계자는 또 하나의 예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효과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이슬람 공동체와 국가의 지속성을 확실히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질서롭게 선출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논쟁 가운데, 이슬람 최초의 개종자들 중 한 사람이자 모하메드에게서 신뢰받던 동료인 아부 바크르(Abu Bakr)가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그는 "칼리파트 라술 알라"(Khalifat Rasul Allah, 신의 사자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받았으며 이 호칭은 곧 칼리파트(영어로는 "칼리프")로 단순화되었다. 이처럼 예언자의 첫번째 후계자가 선출됨으로써, 이슬람의 독특한 칼리프 제도가 또한 생긴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시초에서부터, 칼리프직은 공동체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력을 함께 통합시켰다. 초기 무슬림들은 종교와 국가, 종교적인 권위나 조직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 사실, 질서에 대한 엄격한 신정주의적인 구상은 이슬람이 단순히 종교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영적인 통치수단이자 사회적, 정치적 것으로서 신이 위임한 완전한 체계라는 것인데, 이러한 구상은 모하메드의 언행을 통합한 것이었다.

아부 바크르의 칼리프직은 2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634년에 그가 죽기 전에 그는 개인적으로 우마르('Umar)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644년에 암살당한 우마르는 자신의 후계자의 선출을 위한 새로운 절차를 도입했는데, 그것은 초기 동료 6명의 위원회에서 그들 가운데 새로운 칼리프를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머지 않아, 중요한 메카인 씨족 중의 한 사람인 우트만 브 아판('Uthman b 'Affan)이 선출되어 3대 칼리프가 되었다.

시아파 이슬람의 시작:

그러는 동안, 모하메드가 죽자 마자, 메디나에서는 모하메드의 사촌이자 사위(모하메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인 알리 브 아비 탈리브('Ali b Abi Talib)가 아부 바크르나 다른 어떤 후보자보다도 예언자의 뒤를 잇기 위해 가장 자질이 있다고 믿는 소수 집단이 나타났다.이 소수집단은 "시아트 알리"(Shi'at 'Ali)로 알려졌고 "시아"(Shi'a)로 다시 단순화되었다. 알리의 후계자 승계는 메디나에 있던 그의 일당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곧 시아파는 교리를 만들었으며 그들의 교리는 보다 폭넓은 인식을 받아들였다.

시아파는 모하메드가 사실은 후계자를 지명했으며 그 사람은 바로 알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후계자를 영적인 지도자로 부르기를 좋아하여 "이맘"(imam)이라고 하였다.) 알리와 그의 동료들은 선거제를 통하여 예언자의 후계자를 선출하는 행위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것이 무슬림 다수파로부터 시아파를 분리시키게 된 바로 그러한 반란이었다.

정당한 질서에 대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4명의 칼리프들 (알 쿨라파 알 라시둔(al-khulafa' al-rashidun) 또는 "정통 칼리프"로 알려짐) 은 코란에 담긴 계시의 내용대로 이슬람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모든 포괄적인 규율의 정통 보존자로 여겨졌다. (수니파 이슬람으로 알려진 것은 이러한 정통파였다.)

시아파의 교리에 따르면 이맘들(알리와 그의 직계 후손들)은 종교적인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으며, 가장 중요한 논점은 이슬람의 교리와 종교적 주장의 해석에 관계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코란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성스러운 율법 ("샤리아", Shari'a)이 인간을 뛰어넘는 곳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인간 이성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슬람 계시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맘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권위자가 필요하다고 시아파들은 인식했다.

알리는 마침내 4대 칼리프로 계승했지만, 시아파는 그가 첫번째 진짜 칼리프라고 믿고 있으며 11명의 다른 칼리프들이 뒤를 이었다. 시아파의 눈에, 알리의 후계자로서의 독특한 자질은, 모하메드의 유언을 통해 표현된 대로 신의 명령에 의해 임명되었다고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차원을 갖는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알리는 또한 신적인 영감을 갖고 있으며 오류와 죄가 무결하고, 따라서 그의 지식에서나 예언자의 뒤를 이은 가르치는 권위자로서나 그는 완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믿음 때문에, 시아파는 ""12인""(twelvers, 이맘의 수에 근거하고 있다)이라고 알려졌다. 12번째 이맘이 878년에 신비하게 사라지자, 이맘직은 끝이 나고 "울레마"(ulema)라고 하는 시아파 종교학자들의 집단조직이 그의 직위를 대신했고 그가 다시 '정당하게 지명된 자(rightly guided one)'로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아야톨라"(Ayatollahs, 신의 표적)는 자신들을 역사 끝에 오게 될 이맘의 지위를 공동 관리하는 자로서 인식한다.

하지만, 후계자 계승이 모든 시아파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었고 또 다른 집단이 떨어져 나와 ""7인"(seveners)"이라고도 하는 "이스마엘파"(Ismaelis)가 되었다. 이유는 정당한 7대 이맘 (그래서 마지막 이맘)은 무사 알 카짐(Musa al Kazim)이 아니라 어릴 때 죽은 그의 형 이스마일이라는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열"의 결과로 대체로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겠다. 정통 수니파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코란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며 더이상의 계시는 없다고 믿는다. 시아파 이슬람은 정당한 이맘은 코란의 메시지를 추가할 수 있는 신적인 영감과 알라의 권위를 함께 갖는다고 믿는다. 이처럼 시아파 이슬람은 2개의 주요 분파 중 보다 급진적이고, 여러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차기 "이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특별한 주의로 무슬림들을 재통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불행히도 이것은 "지하드"(Jihad, 이교도에 대한 성전)로 자주 표출되었다.

분열과 또 다른 작은 분열:

이러한 초기 시절에는 더 많은 분열이 무슬림 공동체에서 있었다.

무슬림은 무엇을 믿는가?

무슬림들은 자기들의 구원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 개인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하며, 특히 우상숭배에 대하여 회개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모하메드는 그의 사자라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이것을 다 하고 나면, 개인의 구원은 부활의 날에 자신의 죄의 무게가 선행의 무게와 얼마만큼 비교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무슬림들은 자신이 구원될 것이라는 아무런 확신 없이 살다가 죽으며, 죄를 능가할 정도로 선행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신인 알라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개인적인 행복 따위에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용서에 대하여도 거의 알지 못한다. 아마 로마서 10:2-3의 말씀이 그들에게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목차로

 

이슬람 세계를 향한 기독교의 선교

역사적으로, 무슬림 세계로 간 기독교 선교사들은 사역하기에 훨씬 더 어렵고 더 결실이 적은 곳에서 사역하고 있어서, 대부분이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무엘 젬메르는 아마도 무슬림에게 파송된 가장 유명한 선교사인 듯한데, 40년간 12명도 안되는 개종자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현대 개신교 사역자들이 갈 수 있는 문을 열었다. 윌리엄 캐리의 영향력도 또한 언급되어야 하겠는데, 그는 힌두 세계로 간 선교사였지만, 벵갈어로 그의 사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1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있는 무슬림 공동체의 문을 열었다.

다음의 내용은 무슬림 세계의 선교사에서 우뚝 서있는 몇몇 이름들을 살펴본 것이다.

주요 이슬람 종족들

무슬림을 위하여 기도하는 방법

사탄은 무슬림들이 복음에 문을 열지 않도록 많은 장벽들을 세워놓았다. 역사를 통틀뀌 정치적, 민족적 장애물이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 만들어졌다. 11세기와 13세기의 십자군이 깊고 지속적인 쓰라린 상처들을 더욱 곪게 하였다.

라마단(람잔) 기간 동안, 이슬람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다른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에게 동참하라.
의로운 자들의 충만한 기도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퀴즈 정답

  1. 10억 (일 단위까지 정확히 맞출 필요는 없겠죠.)
  2. 모하메드 (여자 이름을 대는 사람은 대체 뭐야...사오정인가.)
  3. 6명 (역시 완전수 7에는 못미치는군요.)
  4. 복종의 방법 또는 순종 ("무슬림"은 "신에게 바쳐진"이란 뜻. 중동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자칭 "예수 무슬림"이라는데..)
  5.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나이지리아 (중동 국가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다니 놀랍지 않아요?)
  6. 코란 또는 꾸란 (이걸 몰랐다면 너무 무관심했군요..)
  7. 아랍어 (히브리어라고 대답한 엉뚱이는 제발 없기를 소망합니다.)
  8. 카쉬미르 (파키스탄과 인도 중간에 끼인 뜨거운 감자)
  9. 알라와 모하메드를 시인하는 것, 기도의식, 자선, 라마단(람잔) 준수, 메카로의 순례여행 (이걸 다 맞췄다면 이슬람에 대해 한 지식 하는군요.)
  10. 수리남 (무슬림은 24%, 그러나 기독교 인구는 45%)
  11. 메카 (예루살렘이라고 답한 사람은 희망사항입니까, 아님 무지한 건가요? 전자이면 당장 보따리 싸서 선교하러 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후자라면...)
  12. 사우디아라비아
  13.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러시아란 말에 속은 사람.. 흥분을 가라앉힙시다. 그리고 유고가 쪼개지는 바람에 영문판의 정답은 오답이 되었음을 공지합니다.)
  14. 수니파와 시아파 (여기도 이단 분쟁이 치열하군요...)
  15. 모스크 (기냥 이슬람 사원, 이슬람 교회라고 해도 되죠, 뭐)


그 밖의 읽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