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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창조론과 종말론

Joyfule 2016. 8. 22. 12:22

 

   이슬람의 창조론과 종말론  
- 기독교신학의 관점에서 - 이광호  

 

3. 이슬람의 종말론

 

   (1) 심판

       이슬람의 종말론은 신의 심판을 강조한다. 그 심판으로 인해 모든 인간들은 천국 혹은 지옥을 배당 받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슬람에서 말세론은 개념상 소말세와 대말세로 구분한다. 소말세란 말세의 징조를 말하며 대말세는 종말에 일어나게 될 구체적인 현상을 의미하고 있다. 소말세 때가 되면 사회의 부정, 고리대금, 간음, 대로에서의 범죄 등과 같은 것으로 말세의 징조가 나타난다. 한편 대말세가 되면 연기가 온 세상을 뒤덮을 것이며 짐승처럼 흉악한 인간들과 사기꾼들이 출현하고 예수그리스도(이사 알마시흐)가 재림하며 태양이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는 등 이상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 예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그는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선언한 후 세상 사람들에게 이슬람교로 개종하라고 촉구하게 된다.  

  인간은 각기 이 세상에서 가졌던 자기의 신앙과 행위에 따라 적절한 보답/보응을 받는다. 이슬람의 인간에게는 이 세상이 하나의 시험장소이다. 심판날은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며 무슬림들은 그 날을 준비하며 그 날을 위해 산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에서 인간은 원래부터 종말론적이다. 알라신의 심판은 스스로 창조한 피조 세계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며41) 알라는 그것을 창조때부터 준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들에게는 양어깨 부근에 두 천사들이 따라 다니는 데 그 천사들은 그 인간이 행한 모든 선한 행위들과 악한 행위들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코란은 그들을 ‘고귀한 서기관들’ 이라 부르고 있다.42) 그들이 인간들의 선악간 행동을 기록하는 것은 알라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심판날 신 앞에서 내어놓고 그것들을 심판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이슬람에 있어서 이것은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데 이는 이슬람의 인간관은 종말론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심판에 있어서 이슬람의 죄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와 틀린다. 그들은 아담의 범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원죄를 용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신과 인간의 화해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담의 죄와 관계없이 각개인의 선행과 악행을 기준으로 하여 죄의 경중이 드러날 따름이다.  

 
     (2) 인간의 죽음

        이슬람은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알라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43) 이는 인간의 끝은 신에게로 회귀한다는 사상인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연사상과도 통하는 개념이다. 인간이 죽으면 자연으로 혹은 우주로 돌아간다는 사상과 통하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이 종교 실재(實在)가 아니라 이념적 사상을 가진 종교라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슬람에서 인간의 죽음의 때는 운명론적이다. 인간은 운명이 다할 때 이를 단 한 시간도 연기하거나 앞당길 수 없다. 모든 인간들의 수명은 알라의 경전에 다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44)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죽음에 대해 지나친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알라의 뜻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사고나 질병에 의해 갑작스럽게 죽는다 해도 독실한 무슬림이라면 그에 대해 그다지 애처롭게 생각지 않는다. 알라의 명령이 없이는 아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45)

  사람이 죽으면 지옥의 불길이 치솟는 위로 칼날같이 날카롭고 머리털 보다 가는 다리를 지나 낙원이 있는 곳으로 건너가게 된다. 거기에서 떨어지면 곧바로 지옥행이다.46) 코란의 어떤 구절에 의하면 낙원과 지옥 사이에는 벽이 가로놓여 있어서 완전히 차단된 영역이다.47)     

  그리고 이슬람에서 운명적이지 않은 특별한 죽음이 있다. 그것은 지하드, 곧 성전(聖戰)에서의 죽음이다. 그들은 알라가 정한 운명의 기한대로 살지 못하고 알라를 위해 원수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므로 그들의 죽음은 특히 값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알라의 심판을 거칠 필요가 없이 곧바로 낙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알라를 위해 죽고 싶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신의 길에서 살해당했거나 죽었다면 신으로부터 관용과 자비가 있을지니 이는 생전에 축적한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너희가 죽었거나 살해당했다면 너희는 신에게로 돌아가니라”(surah3:158,159).

  이슬람에는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는 천사인 이즈라일(Izrail)이 있으며, 문카르(Munkar)와 니키르(Nikir)는 사람들이 죽어 장례식이 끝남과 동시에 그 사람의 생전의 행실을 살피기 위해 시체가 묻혀있는 무덤을 방문하여 마지막 점검을 하게 된다.48)  

 
   (3) 종말에 등장 할 인물

      이슬람의 종말론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무함마드의 역할이 없다는 점이다. 그 대신 이사 알 마시흐(Isa al-Masih,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며 하디스에는 알 마흐디(al-Mahdi)49)가 등장한다.  

     

      ① 이사 알마시흐(Isa al-Masih)50)

        이슬람에서 이사 알마시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코란에는 ‘알 마시흐’라는 단어가 11번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항상 이사(예수)라는 이름과 연계되어 사용된다. 코란은 예수가 다른 인간과는 달리 아버지 없이 특별히 창조된 자이다. 이는 아담이 부모없이 지어진 것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51) 이슬람에서 그는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인물로 인식되지만 외적 인식만 그럴 따름이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무함마드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이슬람 태동 당시에는 예수가 사실상 최고의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진행되면서 무함마드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종말론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함마드가 죽어서 메디나(Medina)에 묻힌 것에 비해 예수는 지금도 그의 육체와 영혼이 하늘에 있다. 그는 일시적으로 십자가에 달렸으나 신이 그를 죽음에서 구해 하늘로 들어 올렸던 것이다. 이슬람에서 이사 알마시흐가 현재 있는 곳은 기독교의 천당(heaven)52)과는 다른 개념의 하늘이다. 그 하늘에 칠 층의 하늘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도 극한 종말의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이사 알마시흐)가 하늘로부터 재림하게 된다. “실로 예수의 재림은 심판이 다가옴을 예시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일러 가로되 그 시각에 대하여 의심치 말고 나를 따르라”(surah43:62).

  그의 재림의 방법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다수의 무슬림들은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어떤 무슬림들은 예수가 인간의 몸을 통해 출생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는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처럼 인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오게 되는데 초기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그의 때가 되면 등장하게 되어 이슬람을 위해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재림하여 하는 일은 코란의 법을 따라 인류를 공의로 심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개념인데 이슬람에서 그대로 교리화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원래 이슬람에서는 알라 이외에는 심판자가 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심판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슬람의 종말사상에도 적그리스도(Dajjal)의 개념이 있다. 예수가 재림할 때 즈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는데 재림한 예수는 그 적그리스도를 파멸시키게 된다. 예수는 종말의 어느 날, 다마스커스(Damascus) 가까운 모스크(Mosque)에 오후 기도시간일 때 내려오게 된다. 그는 40년 동안 살면서 알라가 부여한 특별한 사명을 행한 후 메디나에 준비된 그의 무덤에 묻히게 된다.53)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슬람에서 ‘이사 알마시흐’는 본질상 신과는 무관한 인간존재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다른 인간과는 달라서 신이 특별히 아버지 없이 창조한 존재라고 한다.   


      ② 알 마흐디(al-Mahdi)

         알 마흐디 사상은 쉬아파에서 주로 나타나는 개념이다. 이 사상은 ‘숨은 이맘’(hidden Imam) 사상으로 알라가 특정 이맘을 숨겨두어 종말이 되면 그를 세상으로 다시 보내 이슬람 세력을 확립케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쉬아파 이슬람의 메시야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쉬아파에서는 서로 다른 분파운동이 일어났으며 역사 가운데는 알 마흐디를 자처하는 소위 이슬람의 이단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다.54)

  원래 알 마흐디 사상은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초기에 형성되었다. 이 사상은 655년 칼리프 우스만의 암살과 681년 후세인의 암살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을 통해 발전된 개념이다. 후세인 암살사건은 686년 쉬아파의 반란과 함께 쉬아파의 독자노선을 확실히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문서에서 처음으로 알 마흐디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55) 그러므로 알 마흐디 사상이 쉬아파 이슬람에서 명료하게 사용되고 있음은 자연스럽다. 쉬아파에게 마흐디는 종말론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는 지상에서의 삶을 이미 살았고 알라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다가 종말의 심판날이 임박하여 공의를 회복하기 위해 무슬림들의 지도자로 다시올 존재이다. 일부 쉬아파 무슬림들은 마흐디가 다시 인간의 몸을 입고(reincarnation) 이 세상에 온다고 믿는다.56) 이는 숨은 이맘이 현재 인간의 상태가 아니라 초월적 상태로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흐디에 관한 정통적 견해는 그가 ‘전쟁의 사람’이며 종말 때의 그의 길은 ‘불신자들의 피’로 인한 붉은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57) 이는 종말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비폭력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지는 것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4) 부활사상

       코란은 종말의 때에 있을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58)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기독교와 동일한 설명은 심판날이 되면 ‘무덤이 파헤쳐 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독교적 의미는 실체적 상징이다. 즉 그런 일이 있되 죽은 사람들이 원래의 인간 모습대로 벌떡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즉 원래 인간이 가졌던 형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인간의 몸이 부활할 때의 모습은 현재 인간의 모습과는 다름을 말해주고 있다(고린도전서15:35-44).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부활사상을 실체적 실제로 이해하고 있다. 즉 죽은 사람이 원래 인간의 모습 그대로 부활하는 것이다.59) 그러므로 죽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이다.


   (5) 내세 / 낙원과 지옥

      이슬람의 낙원은 최상의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낙원에는 요단강이 흐르고 거기 흐르는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포도주와 우유, 그리고 꿀이다.60) 요단강 주변에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많이 있어서 남성들에게 술시중을 든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강이 요단강이라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요단강이 언급되는 것은 그 사상이 어디서 왔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슬람 지역에도 강들이 있지만 그들은 낙원에는 요단강을 비롯한 여러 강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독교의 천국은 실존하는 곳이지만 이슬람의 낙원은 종교적이며 관념적인 가상공간이다.  

  흔히 이슬람의 낙원을 황금빛의 풍요로운 곳으로, 기독교의 천국을 하나님의 평화가 깃든 푸른색으로 묘사하는데,61) 이는 이슬람의 낙원이 현세지향적임을 보여준다. 즉 낙원의 즐거움도 현세의 즐거움에 비견되는 것이다. 이슬람의 낙원은 현세에서의 부족분에 대한 충족, 부, 즐거움 등이 있는 곳으로 이야기 한다. 낙원에는 술, 우유, 꿀 등이 흐르는 강과 주변에는 온갖 열매맺는 나무와 물이 넘치는 동산들로 가득한 오아시스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62) 그리고 이슬람의 낙원은 황금으로 가득차 있다.63) 또한 천국에는 청순한 아내를 얻을 수 있으며,64) 눈을 아래로 깔고 커다란 눈을 가진 아리땁고 순결한 여성들이 가득하다.65)

  이슬람의 낙원의 특이성은 결혼과 성생활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에서 낙원에 들어가는 자는 그곳에서 다시 아리땁고 순결한 여성들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며 살게 된다.66)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결혼을 하여 성생활을 하며 살아도 자녀를 낳게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이슬람의 낙원은 쾌락을 추구하며 낙원이 쾌락의 극치를 예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의 낙원에서 있을 결혼과 성생활에 대한 개념은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기독교는,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 것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마태복음22:30; 마가복음12:25).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새로운 가정이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낙원에는 여성들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67) 그러므로 독실한 이슬람 여성들은 미래가 불안하다. 낙원에서는 남편을 아리따운 다른 여성에게 빼앗기게 되고 자신은 결국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이슬람 여성들은 알라로 부터의 더욱 큰 은총을 기다리기도 한다. 알라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므로 달리 여성들을 위한 공간을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68)    

  이슬람의 낙원에 대한 개념은, 기독교의 천국이 회복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개념이라는 점과 크게 대비된다. 기독교의 천국은 인간의 쾌락과 연관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영역이다.

  한편 이슬람에서 지옥은 항상 불과 연관되어 설명된다. 낙원이 시원한 물과 연관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는 무함마드 당시의 사막에서의 기후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더위와 목마름은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라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는 자들은 뜨거운 불 가운데 있으면서도 끓는 물을 마셔야 하는 끔찍한 고통에 놓이게 된다고 믿는다.69) 나아가 지옥의 땔감은 인간과 불이라고 말하고 있다.70)

  그렇지만 이슬람에도 기독교의 만인구원설과 영혼멸절설 같은 주장이 있다. 즉 지옥은 인간을 영원토록 고통에 빠뜨려 두는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일시적인 고통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낙원은 영원하지만 지옥은 그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71) 그렇게 볼 때, 지옥에 관해서는 영혼 멸절성 보다는 일시적 고통을 지난 후 얻게되는 만인구원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4. 결론

 

  이슬람의 창조론과 종말론에 있어서는 기독교 교리가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외관상으로 보아 기독교와 이슬람의 창조론과 종말론에는 유사점이 많다. 양 종교 사이에 유사성이 보이는 것은 이슬람이 기독교 진리의 일부를 모방하여 교리화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유사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양자를 동등선상에 놓고 비교 해석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의 영역에 해당된다. 특히 창조기간 엿새에 있어서의 ‘날’의 개념과 첫째날의 빛과 넷째날의 태양의 빛,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는 ‘날’의 개념은 그렇다.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의 ‘날’이 하루 즉 24시간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적잖은 논란의 대상이다. 그리고 창세기 1,2장에서 창조에 대한 중복적 설명도 신비의 영역에 속한다.  

  신학에 있어서 종말론은 창조론에 근거한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기독교의 창조론이 ‘실재’를 바탕으로 한다면 이슬람의 창조론은 기독교의 신학을 부분적으로 모방한 ‘관념’에 근거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종말과 심판,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은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종말론은 그야말로 이론에 그치게 될 수 밖에 없다.

  기독교의 종말론의 핵심은 역시 인간의 죄로 인해 망가뜨려진 하나님의 영광의 완성이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궁극적으로 심판하시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 기독교의 천국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영역이 아니며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끌어들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은 죄를 심판하시게 되는데 그것이 그의 공의이다. 그리고 창세 전에 미리 선택하신 자기백성을 의의 자리로 불러 모음으로써 그의 영광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의 영역에 해당된다. 천년왕국설이라든지 7년 대환란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슬람에 있어서의 종말론은 혼합적이다. 종말에 활동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이사 알마시흐와 알마흐디의 관계 및 역할에서도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종말론에서 기독교적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 또한 기독교의 교리를 부분적으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에서 가장 근접한 부분은 역시 창조론과 종말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교의학에 있는 구원론이나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등이 이슬람에는 없거나 전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데 반해 창조론과 종말론에 있어서는 기독교에서 차용해간 내용들을 상당부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창조와 종말에 관한 이슬람의 이론을 통해 무슬림들의 종교사상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내용이 그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기 위한 대화의 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이 논문은 2002년 10월 29일, 숭실대학교 개교 105주년을 기념한 제12회 기독교 문화 및 신학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