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고등학교 교과서 <세계사>(지학사, 2006) 106쪽에 제시된 「이슬람 제국의 팽창 배경」이라는 제목의 내용이다.
“첫째, 이슬람 교의 철저한 평등주의는 이슬람 팽창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평등주의는... 피정복민의 자발적인 개종을 유도하는 배경이 되었다. 둘째, 정복 지역에 대한 관용적인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였다. 이슬람 제국은 정복지의 이교도에 대해서 인두세(지즈야)와 토지세(하라지)를 납부하면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국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셋째, 이슬람 교도들은 전쟁에서 죽는 것을 가장 거룩한 행위로 여겼으며, 죽은 후에 천국행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말을 언뜻 보게 되면, 이슬람 교도들은 평화롭게 행했으며 이교도들이 이슬람 교에 호의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개종했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거짓말이다. 오늘날 교과서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종류의 이슬람 관련 서적들은 이와 동일하게 가르치며 학생들과 대중들을 세뇌시킨다. 하지만 위 인용문을 가만히 보면, 그들 스스로도 전쟁에 의한 전파라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못한다. 그들은 분명 정복 전쟁에 의해 이슬람 교를 전파했다. 다만 그것이 각 시대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인도와 동남아 등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아무래도 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이슬람의 발상지요, 이슬람 포교가 가장 적극적으로 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교는 A.D. 622년 아라비아 반도 서쪽 해안에 위치한 메카와 메디나에서 무함마드(마호메트)에 의해 발생했다. 622년이란 무함마드가 메카 귀족들에게 쫓겨나 메디나로 피한 해인데, 이때가 이슬람의 기원년이다. 그가 창시한 이 종교는 당시 부족들간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상황 속에서, 그의 정복활동을 통해 확장되어 나갔다. 마호메트는 죽기 전까지 아라비아 반도를 무력 통일했다(632). 그래서 마호메트 생애 가운데 있었던 이슬람 교의 확장 방식은 다음과 같이 몇 단계로 나누어진다.
제1단계 - 메카 시대(610-622년) : 이때는 아직 관용의 시대이다. 아직 무함마드를 따르는 사람들은 몇 없었다. 아무런 정치적, 군사적 힘도 없었으므로 이교도들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코란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종교에 강요는 금물이다. 벌써 옳은 길은 잘못과 구별된다”(코란 2:256). “너희들이 숭배하는 것을 나는 숭배하지 않는다. 내가 숭배하는 것을 너희들은 숭배하지 않는다... 너희들에게는 너희들의 종교가 있고, 내게는 나의 종교가 있다”(109:1-6). “지혜와 선한 권고를 하여 알라의 길에 불러들여라.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들과 의논을 하라”(16:125).
제2단계 - 메디나 시대 초기(622-624년) : 이때부터 전쟁이 시작되는데, 아직까지는 방어적 전쟁이다. 구체적인 이슬람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이 공동체를 공격하는 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는 전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까지 마호메트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선지자 반열에 놓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법한 일을 해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허락되어 있다(침략하는 자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은 허락되어 있다). 알라께선 이렇게 사람들을 돕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코란22:39). “성전(성서)의 백성(유대인, 그리스도인) 중 많은 사람은 자기 질투심 때문에 이미 믿음을 가진 그대들을 따돌려 배신자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벌써 진실을 밝혀졌으니, 용서하고 제멋대로 하게 하라”(2:109).
제3단계 - 메디나 시대 중기(624-630년) : 이때부터 코란은 이슬람의 적들을 공격하라 명령한다. 메디나의 통치권을 얻은후 그는 지하드를 무슬림의 의무로 규정한다. 그때부터 자신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 특히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게 된다. 그들과 전쟁을 선포하고, 이 전쟁을 회피하는 자들을 저주한다. “알라와 사도를 믿고, 알라의 길에 너희들의 재산이나 생명을 걸고 싸우기에 힘써라. 그것이 너희들에게는 최선의 일인 것이다”(61:11). “믿음을 배반한 성전(성서)의 백성(이슬람을 거역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도 다신교도도 지옥의 불 속에 떨어져 거기서 영원히 유하리라. 이것이야 말로 인류 가운데서 가장 악한 자들이다”(98:6).
제4단계 - 아라비아 반도 점령 후(630년 이후) : 이때부터 이슬람은 세계 점령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아라비아를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메카를 장악한 무함마드가 카바 신전 안에 달 신 알라를 제외한 모든 우상들을 없애버린 것도 이 시기이다. 이제 이슬람은 온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물론 전쟁을 통해서 말이다. “소동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모두 알라께로 귀의할 때까지 그들과 싸움을 계속하라”(8:39). “(4개월의) 신성월(神聖月)이 지났으면, 다신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라. 잡아라. 억류하라. 모든 길에 복병을 두고 기다려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여 예배를 지키고 희사(喜捨)를 한다면 방면해 주라. 알라께서는 관용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다”(9:5).
시기별 코란 구절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슬람이 관용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메카에서 힘없을 당시 만들어진 구절들을 근거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세력이 적을 때는 평화의 종교로 다가오고 세력이 강해지면 포악해지는 그들의 모습은 마호메트 때부터 있었던 일이며, 코란의 특성인 것이다. 물론 코란은 메디나 계시를 더 가치있게 여긴다. 왜냐하면 나중 계시가 먼저 계시보다 우월하다는 논리 때문이다. 이를 “만스크” 교리라 한다. 이슬람 교가 전쟁과 상관없다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이슬람 교는 전쟁으로 시작한 종교이다.
마호메트 사후 그의 계승자들(“칼리프”)은 마호메트의 유지를 받들어 정복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갔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원리는 메디나 시기와 칼리프 시기에 당연한 진리였다. 마호메트가 죽고 후계자 문제로 지도부가 어수선한 사이, 마호메트에 의해 억지로 개종했던 일부 무리가 옛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칼리프로 선출된 아부 바크르는 3개월 동안 그러한 무리들을 색출하여 8만 명을 죽였다.
제4대 칼리프 때까지를 “정통 칼리프” 시대라고 하는데, 이때 칼리프 제국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정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옴미아드 왕조 때에는(8세기) 북아프리키와 이베리아 반도까지 점령하였다. 이것은 분명 제국의 확장이지만, 동시에 종교의 확장이기도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때 형성되었다. 이때, 정복은 군사력으로 했지만 종교는 자발적인 개종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무슬림들의 거짓말에 속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문구는 코란에는 없는 구절이라고. 이 말은 중세 유럽의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말인데, 이 말을 기독교인들이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인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인용한 코란 9:5을 보라. “신성월이 지나면” 다신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이라고 한다. 여기서 신성월은 “금지된 달”이라고도 하는데, 비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까지의 유예 기간이다. 즉 유예 기간 동안 개종하지 않으면 죽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이슬람 옹호론자들은, 이것은 단순히 전쟁 상황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쟁 상황에서 죽이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앞 구절인 2절을 보면 “4개월간을 자유로이 나라 안을 여행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전시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정복한 후 그 나라를 4개월 동안 샅샅이 뒤져 이교도가 나오면 죽이라는 말이다.
서두에서 제시한 바 “관용정책”이라는 것도 없다. 물론 관용적 정책을 취한 왕들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15세기 동안 여러 지역들을 통치한 이슬람 왕들 중 그러한 왕이 하나도 없겠는가? 하지만 그 몇몇 “선한” 왕들을 예로 들면서 이슬람의 포교 자체가 관용과 평화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지즈야”(인두세)를 내면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제국이 커지다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없어서 내 놓은 자구책일 뿐이다. 즉 한 나라를 정복을 하긴 했으나, 그 백성들 모두를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 세금이라도 내라고 만든 정책이다. 그리고 시기와 장소에 따라서 그 세금이 막중하여 견디기 힘들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도 많다. 지즈야는 그 자체가 종교차별적 제도이며, 17세기 인도의 무굴 제국에서는 이 지즈야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아라비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인도까지,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이슬람교는 정복활동을 통해 포교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중국 등은 이슬람 상인들의 활동으로 전파되었는데, 이는 전체적인 이슬람의 확장에서 볼 때 예외적인 현상이다. 결국 “칼이냐 코란이냐”라는 슬로건은 코란에서 도출된 지극히 정통적인 이슬람 교리이다. 아무리 학자들이 교과서들을 왜곡하면서까지 대중들을 세뇌시키고 있지만, 그 종교가 칼의 종교라는 사실은 지울 수가 없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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