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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꽃 그늘 - 이해리

Joyfule 2006. 5. 22. 00:48
 

       
      이팝꽃 그늘 - 이해리 
      고소한 뜸 냄새를 풍기며 변함없는 밥솥이 
      더운 김을 내뿜는 아침 
      동구 밖 이팝꽃 흐벅지게 피었다 
      고봉으로 밥 먹은 사람 드문 시대 고봉으로 피었다 
      구름이 퍼먹고 바람이 퍼먹고 못자리가 퍼먹고 나도 
      하얀 쌀밥꽃 남아돈다
      남아도는 쌀밥꽃 길가에 수북 떨어졌다가 
      자동차에 뭉개지고 수챗구멍으로 날아 들어간다 
      팅팅 불은 밥풀들, 쌀이 남아돈다 
      쌀라면을 만들까 쌀로 된 햄버거를 만들까 
      나도 남아 고민중인데 
      주체할 수 없는 잉여는 차라리 슬픔인지
      아프칸의 그 어린 것 아프게 떠오른다 
      제 위장보다 훌쭉한 자루를 들고 포탄이 핥고 간 들판에 
      풀을 캐러 다니던 네 살배기,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백만 명이 고스란히 굶어 죽는다는데 
      북한의 꽃제비들은 한 보시기 밥 때문에 오늘도 사선을 넘어온다 
      내 배부름으로 세상 어딘가에 배고파 야위는 슬픔이 즐비한데 
      새벽 별같이 하얀 쌀이 
      숭고하던 쌀밥이 길바닥에 고봉으로 넘쳐난다 
      두려운 무기처럼 온 마을에 그늘을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