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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극장 - 황정순

Joyfule 2012. 11. 5. 10:08

 

 

자동차 극장 - 황정순

   수도권 외곽 순환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동차 극장이 있다. 4계절중  유일하게 겨울이면 자동차 극장을  설치 할 수 있다. 그곳을 지날 때  도로변의  야트막하고 두루뭉술한 산은 나에게 극장이 되어 준다. 나는 그 극장에  네모난 액자를 끼워 넣어 무대를 설치한다.   조명을 켠다. 배우는 겨울나무들이다. 


  그들은 옷을 벗었다. 벗은 나무는 자유롭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치렁치렁한 옷을 걸치고 있었으니 얼마나 무거웠으랴. 그 때는  배우의 몸매며 ,키며, 성격 등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나뭇가지의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목으로 서 있을 때의  배우는  빼어난 몸매와 늘씬한 허리 ,곧은 성격,  힘찬 도약의 정신으로 관객인 내 앞에 무희로 나타난다. 아니 그들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관객이 되어  그들을 찾아가고 있다. 배우는  화사한 색상도 아니요, 푸른 색상도 아닌 거무튀튀한 색상의 피부색이지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개와 날카로운 손끝은, 어느 배우도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타고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그  배우의  이름은 참나무다.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관계인 나무라고 한다. 20세의 청년에 비할까. 푸른 옷을 걸쳤을 때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냥 너풀너풀한 활엽수일 뿐이다. 잡목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 곳에 모여 무리를 이루면 달라진다. 그것은  오로지 옷을 벗었을 때만이  알 수가 있다. 


  겨울이 되면 배우는 알몸의 두려움도 없다. 치렁거리는 옷을 벗어 던지는 순간 야수와 같은 예술행위가 나타난다. 나는 밝은 조명과 어두운 조명을 번갈아 가며 무대위에  쏴준다. 조명과  배우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인다.  어께가 서로 맞닿는다.  배우의 성격과 행위가 고스란히 스크린위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무희들의 눈에서 빛이 난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배우 앞에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선다. 그 들은 내 앞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어야 한다’ 고 말하는 듯하다.  툭 불거진 허벅지며  팔을 보라. 군살도 없다. 곡선이 아닌 직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뻣뻣한 듯 하면서도 유연한 허리를 갖고 있다. 남성 배우의  절제미가 있다. 그동안 그들에게 옷이란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푸른 옷은 겨울을 위한 한동안의 가면이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배우들은 옷을 벗었을 때의 자유로움을 안다. 어느 누구에게나  본래의 모습이란 옷을 벗었을 때의 모습이 아니던가. 


  겨울의 북풍한설은 벗은 몸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는다. 그 산등성이 무대위에 차가운 바람이 불고 은백색의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새로운 무대가 꾸며진다. 저 배우들의 벗은 몸이 어찌될까. 싶은 마음은  관객인 나의 기우이다. 배우들은 끄떡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기상이 절절 넘친다.  


   그 나무들은 내가 설치한 무대 위에서  일상의 권태를 벗어 던지고 춤을 춘다. 군무를 하고 있다. 현대무용을 하고 있다. 비보이로 다가오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절제 , 단순한 손과 다리의 뻗침, 균제미 속에 조화의 미학들이 숨어있는 예술 행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로움을 억압하는 규칙을 뿌리치고 새로운 표현 방식과  감정들을 드러내는 춤을 추고 있다.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밀고 당기면서 유장한 우아함을 지니고  경합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며  하늘을 향하여 솟구친다.  치솟은  저 손끝들을 보라.  무엇인가를 향하여  끝없이 손을 내밀고 있다. 고혹적인 그들의 몸짓은 보이지 않는 욕망을 깨우고 있다. 그 속에는  무질서인 듯 하면서도 질서가 있다. 인위성보다는 자연성을,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 춤은 단순한듯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그 위에 또다시  이응로 화백의 ‘군무’가 펼쳐진다. 점이 모여 군상이 된다. 그 군상들이 손을 뻗치고 다리를 올린다. 특별한 소품도 없다. 그저 손과 발의 놀림이다. 손과 발을 하나씩  떼어 내면  별것도 아닌데 모아놓고 보면 무리를 이루며 무엇인가 꼭지점을 향해서 손을 뻗고 있다.  나목만의  예술 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날렵한 몸이 하늘  거린다. 희열이 튀어 오른다.  땅과 접촉하고 있는 벗은 몸의 자유로움이  허공속에서  환희로 승화하는 순간이다. 그들은 나목의 쾌락을  만끽하고  있다. 검은 피부위에 땀방울이 흐른다. 한줄기 바람이 배우들의 몸을 스쳐 지나간다.  
  내 몸에서는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가 쏟아진다. 무대가 점점 멀어진다. 그 사이 자동차가 빠르게 영화관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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